삼성의 결정적 순간들[횡설수설/박중현]

박중현 논설위원 입력 2020-10-27 03:00수정 2020-10-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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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0년대 초 회사에 거의 나타나지 않자 임직원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퍼졌다. 그렇게 몇 년을 ‘은둔’하던 이 회장은 1993년 6월 독일 출장 중 갑자기 사장, 임원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모아 비상벨을 울렸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꿔야 한다”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그동안 이 회장이 승지원에 머물면서 세계 각지에서 구해 온 다큐멘터리 등 비디오 수천 편을 보며 세계의 변화와 삼성의 미래를 고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삼성전자 소니 히타치 VTR를 동시에 쓰던 이 회장이 유독 자주 고장 나는 삼성 제품을 보며 ‘질 경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말도 나왔다. 장고(長考) 끝에 나온 신경영은 삼성이 ‘글로벌 일류’로 나아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보다 10년 전인 1983년 당시 부회장이던 이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를 설득해 반도체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일본이 까마득히 앞서가는 사업에 투자하는 건 무모하다는 사내외 반대가 컸다. 그해 64K D램을 개발한 삼성전자는 1992년에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내놨고 이후 29년간 세계 D램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마당에 쌓인 휴대전화 15만 대를 보며 임직원들은 ‘설마’ 했다. 애니콜 500억 원어치가 불길에 휩싸이자 직원들은 눈물을 흘렸다. ‘애니콜 화형식’ 이후 휴대전화 품질은 비약적으로 개선됐고 5개월 후 애니콜은 모토로라 노키아를 누르고 한국 시장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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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조개 모양 ‘이건희폰’(SGH-T100) 성공 이후 삼성 휴대전화는 승승장구했다. 애플이 2007년 첫 스마트폰을 내놨을 때 삼성전자 안에선 “일시적 인기에 그칠 것”이란 안이한 판단이 있었다. 시장이 급격히 스마트폰 쪽으로 쏠리자 서둘러 내놓은 옴니아 1, 2는 ‘흑역사’가 됐다. 삼성 특검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 회장은 2010년 복귀하자마자 휴대전화 사업부를 뒤집어 놨다. 그해 3월 등장한 ‘갤럭시S’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 안착했다. ‘패스트 팔로어’로 출발해 세계 1위에 오른 삼성전자와 달리 피처폰 시대 최강자 노키아는 휴대전화 사업을 접었다.

▷도약이 필요하거나 위기를 맞을 때 이 회장은 강렬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내놨다. 워낙 효과적이어서 “메시지 전담 조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관계자는 “이 회장에겐 사물의 핵심 이치를 찾아내고 이를 짧고 압축적인 언어로 정리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고 했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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