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채권에 투자” 유혹하고 ‘펀드 쪼개기’로 규모 키워

김형민 기자 입력 2020-10-24 03:00수정 2020-10-24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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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사모펀드 시장 민낯 보여준 옵티머스-라임 사건 전말
옵티머스 치밀한 사기극
《사모펀드를 운영한 옵티머스자산운용과 라임자산운용 사태가 연일 정국을 흔들고 있다. 펀드 환매 연기에서 시작돼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옵티머스와 라임 사태. 라임은 투자 부실을 속이려고 펀드 간 자산 ‘돌려막기’를 벌이며 망가졌다. 옵티머스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내세워 시장을 농락했다. 두 사건에선 로비 의혹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한국 금융시장의 민낯을 보여준 두 대형 금융사기의 전말을 정리했다.》

옵티머스 치밀한 사기극


2015년 10월 25일 한국 사모펀드 시장이 날개를 달았다. 금융위원회가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한 첫날이었다. 규제 완화는 파격적이었다. 사모펀드 운용사 설립이 허가제에서 누구나 등록만 하면 할 수 있는 등록제로 바뀌었다. 최소 자기자본 요건도 60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내려갔다. 최소 투자 금액은 5억 원에서 1억 원(현재는 3억 원)으로 떨어졌다. 사모펀드 진입과 투자 문턱이 동시에 대폭 낮아진 것이다.

규제 완화 이튿날인 10월 26일 부동산 투자사업을 하던 이혁진 에스크베리타스(AV)자산운용 대표가 금융 당국을 찾아갔다. 그는 “사모펀드 운용사를 하겠다”며 회사 등록을 마치고 자산운용 업무를 시작했다. AV자산운용은 투자자 1166명, 피해 금액 5109억 원 규모의 금융사기를 일으킨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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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사기의 출발: 투자자, 어떻게 유혹했나

AV자산운용은 2017년 6월 사명을 옵티머스자산운용으로 바꿨다. 경영권 분쟁으로 이 대표가 물러나고 김재현 이사가 새 대표가 됐다. 이후 양호 전 나라은행장, 옵티머스 2대 주주 이모 씨, 옵티머스 사내이사인 윤모 변호사의 아내 이모 전 청와대 행정관 등이 지분을 취득하며 현재의 주주 구성을 완성했다.


김 대표 취임 이후 옵티머스는 기존에 없던 새 펀드를 만든다. 옵티머스 사태의 발단이 된 공공기관 매출채권 펀드다. 공공기관 발주 사업을 수행한 건설사의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해놓고는 실제론 사모사채 등에 투자했다. 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공공기관 채권 투자는 투자자에겐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손실이 날 수 없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상품 구성”이라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규모가 작았던 옵티머스의 상품을 팔아줄 금융사는 많지 않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김 대표가 시중은행을 돌며 제안서를 냈지만 대부분 거절당했다”고 했다. 판로를 찾지 못한 옵티머스에 도약의 발판이 된 건 공공기관인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전파진흥원)이었다.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옵티머스가 받은 최초 투자 13건 중 전파진흥원이 7건, 570억 원으로 금액 기준 94.5%를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옵티머스가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판 펀드는 총 1조5000억 원어치다. NH투자증권이 옵티머스 펀드 판매에 나선 게 결정적이었다. 옵티머스는 고문단이라는 이름으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채동욱 전 검찰총장, 김진훈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 등 정관계에서 명망이 높은 유력 인사를 영입했다. 일부 고문은 옵티머스 펀드 판매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옵티머스 환매 중단 펀드 중 4300억 원 이상을 판 NH투자증권의 정영채 사장은 옵티머스 고문인 김진훈 전 이사장의 요청을 받고 김 대표를 펀드 판매 담당자에게 연결해준 사실이 드러났다.

○ 돈세탁의 과정: 어떻게 돈을 빼돌렸나

사모펀드 규제 완화 이후 2014년 10곳에 불과했던 전문 사모운용사는 2019년 말 기준 217곳으로 불어났다. 동시에 감시망은 느슨해졌다. 회사 보유 자산의 처분, 전환사채 발생, 다른 회사 지분 취득, 자산 양·수도 등의 펀드를 감시할 수 있는 항목이 사모펀드 공시 대상에서 제외됐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규제는 풀고 감시 수단을 없애자 사기꾼들이 자본시장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50인 미만이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운용한 옵티머스의 피해자들은 1000명이 넘는다. 공모펀드 규제는 피하면서 많은 투자자를 끌어모으려고 ‘사모펀드 쪼개기’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한다고 속인 ‘옵티머스크리에이터’ 1호 펀드는 2019년 6월 19일 315억 원 규모로 설정됐다. 이후 150억 원 안팎의 후속 펀드들이 줄을 이었고 6개월간 이 이름을 단 펀드가 28호까지 나왔다.

검찰은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한다고 끌어들인 투자자들의 돈이 옵티머스 주주들과 연관된 비상장 회사나 부동산 투자 회사 등을 거쳐 60여 곳의 2차 투자처로 흘러 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옵티머스 관계사인 트러스트올 셉틸리언 등은 투자자 돈이 고이는 ‘저수지’ 역할을 했다. 이 돈은 해덕파워웨이, 씨피엔에스, 아트리파라다이스 등을 거쳐 다시 옵티머스에 투자되고 또 다른 회사로 이동하는 등 3, 4단계 과정을 거치며 증발되다시피 했다. 옵티머스 관계사 14곳이 다시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하는 식의 자전거래 규모만 1000억 원에 이른다. 현재 약 5000억 원의 펀드 자금이 환매 중단된 상황이고 이 돈의 행방을 찾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로비와 꼬리 자르기 의혹: ‘펀드 하자 치유 문건’

김 대표와 윤 이사 등 옵티머스 핵심 인물들이 검찰 수사 등에 대비해 역할 분담을 하고 ‘도주 시나리오’를 준비한 정황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다. 김 대표가 금감원 조사를 받던 2020년 5월 작성했다는 ‘펀드 하자 치유 문건’이 공개되며 정관계 로비 의혹도 점화됐다. 이 문건에는 펀드 부실의 원인과 향후 계획 등이 적혀 있다. 문건 마지막 부분에 ‘정부 및 여당 관계자들이 프로젝트 수익자로 일부 참여돼 있고 권력형 비리로 호도될 우려가 있다’는 문구가 있다.

여권 등에서는 김 대표가 금감원 조사를 피하기 위해 문건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윤석헌 금감원장 역시 ‘문서가 조작된 느낌을 받는다’고 언급했다. 반면 야당은 로비 의혹을 밝히기 위한 특검을 주장하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여당은 특검을 거부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야당도 특검에서 의혹이 밝혀지지 않으면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셈법이 복잡하다”고 했다.

투자자 손해배상 문제도 난제다. 금감원과 NH투자증권 등은 회수 가능 금액을 파악하기 위해 삼일회계법인을 통해 옵티머스에 대한 자산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회수 가능 금액이 파악돼야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를 열고 판매사와 투자자 간의 배상 문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옵티머스-라임 사태#사모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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