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소리 나는 주전부리… 대기업 간식비만 한달에 1억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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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만 타먹던 탕비실 잊어라”
주문부터 배달-세팅까지 OK… 간식 큐레이션업체가 도맡아
아이시스-박카스-우유 등 상위… 맛밤-견과-훈제란 꾸준히 인기
“이젠 AI가 개인별 취향 분석”

스낵24 제공
스낵24 제공
“오늘은 무슨 간식을 먹을까?”

차량 공유업체 쏘카에 입사한 지 5개월 차인 김가람 매니저(28)는 출근이 즐겁다. 원하던 직장에 다니게 된 것도 기쁜 일이지만 이 회사의 유별난 간식 메뉴는 출근길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과자 몇 개에 믹스커피 정도 타먹을 수 있는 탕비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예 간식 전문 큐레이션 업체가 시리얼, 요거트, 너트 등 다양한 주전부리를 준비해준다. 김 매니저는 “간식 그 자체도 좋지만 처음 접하는 간식을 주제로 동료들이 아이스브레이킹(긴장 풀기)을 하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고 말했다.

○ ‘억 소리’ 나는 간식비
간식 큐레이션 서비스가 기업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카카오, 현대자동차, KB국민은행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기업들은 이미 간식 큐레이션 서비스를 채택했다. 스낵24, 스낵포, 오피스스낵킹 등이 대표적인 업체들이다. 스낵24는 2018년 3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640개 기업이, 스낵포는 2017년 7월 서비스를 출시한 이래 400개 기업이 이용 중이다. 정기적으로 방문해 간식을 가져다주고 세팅까지 해주는 데 드는 비용은 월 최소 15만∼50만 원. 그 이하의 금액은 큐레이션된 간식을 택배로 보내준다. 간식을 많이 소비하는 기업은 한 달에 1억 원 가까이 지출하기도 한다.

간식 큐레이션 서비스를 가장 원하는, 그러면서도 가장 수혜를 보는 사람은 단연 간식을 준비해온 경영지원팀, 인사팀, 총무팀 소속 담당자다. 간식 수요를 파악하고, 마트에 가고, 간식을 사고, 이를 운반하고, 회사에서 진열하고, 뒷정리까지…. 이런 번거로운 일을 간식 큐레이션 업체가 도맡아 해준다. 외국계 정보기술(IT) 기업에서 간식을 담당하는 한 직원은 “우리 회사에는 다른 문화, 인종을 가진 직원이 많은데 이들의 입맛까지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혼자서 200분 걸리던 일을 전문업체를 통해 20분으로 단축했다”고 말했다.

한 게임회사의 경영지원팀장은 “간식 주문부터 배달까지 자체 팀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어 대표에게 담당 인력 충원을 건의할 정도였다”며 “경영지원 업무를 위해 많은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정작 직원 간식 준비에 치여 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긍정적이다. 간식 큐레이션 업체들은 제조사에서 싼값에 대량의 물건을 들여와 자체 물류센터에 확보한 뒤 배송해준다. 이 때문에 편의점 대비 5∼30% 저렴하다는 게 간식 큐레이션 업체들의 설명이다. 이들 업체는 고객사에 간식을 비치하는 선반이나 냉장고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비인기 간식은 교환하거나 비용에서 일부 차감해주기도 한다.

○ 김 부장 새우깡 뜯을 때, 박 주임 에너지바 집어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어떤 간식들을 선호할까. 스낵24에 따르면 6월 현재 아이시스, 박카스, 서울우유, 헛개차, 씨그램탄산수 등이 상위 톱5에 올랐다. 때 이른 무더위에 음료수를 집어 드는 사람이 많아졌다. 스낵포에 따르면 꾸준히 잘나가는 간식은 상반기(1∼6월) 기준 맛밤, 하루견과, 훈제란, 간식용 소시지, 프링글스 미니컵 등이다. 건강을 챙기는 요즘 직장인들의 세태에 맞게 과자보다는 견과류 간식을 많이 찾는다는 설명이다.

세대별로 입맛은 천차만별이었다. 주임, 대리급인 20대가 선호하는 간식은 미주라통밀도넛, 에너지바, 분말 셰이크와 같은 건강식이 단연 앞선다. 차·부장급인 50대는 새우깡, 홈런볼 같은 익숙한 과자들을 선호했다. 고구마 말랭이 같은 추억을 소환하는 간식도 눈에 띄었다. 일부 기업은 임원을 위해 간식 큐레이션 업체에 과일을 요청하기도 한다.

한 IT 회사 직원은 “야근과 철야 작업이 많은 IT 산업의 특징을 배려해 간식과 음료부터 야식까지 다양한 간식을 마련해주는 회사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 간식 넘어 조식, AI 큐레이션까지
간식 큐레이션 업체들은 간식으로 시작했지만 조식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스낵24와 오피스스낵킹은 샌드위치나 샐러드, 컵과일 같은 아침식사를 새벽 배송해준다. 나아가 직원들이 직접 생일 선물을 고를 수 있도록 돕고, 각종 사무기기를 렌털해주는 서비스까지 외연을 넓히고 있다. 김대현 스낵24 마케팅 이사는 “간식 서비스를 이용하던 고객들이 역으로 제안을 많이 해오면서 자연스럽게 생일 선물 큐레이션, 사무용품 렌털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동화 큐레이션 시스템 구축을 진행 중인 곳도 있다. 스낵포는 고객들이 선호하는 간식 데이터를 직원들이 일일이 분석해 인기가 높을 만한 간식을 채워 주곤 했는데 이제는 이 과정을 AI에 맡기기로 했다. 전체 직원의 25% 정도가 큐레이션 과정에 매진했는데 AI가 도입되면 효율성이 빠르게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웅희 스낵포 대표는 “사람의 큐레이션과 AI의 큐레이션의 정확도를 검증하고 있는 단계”라며 “이르면 8월 AI를 도입하게 되면 고객사 확장을 빠르게 늘려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무경 기자 yes@donga.com
#간식 큐레이션 서비스#스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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