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 허덕일때 “대출 갚아라”… 폭우속 中企 우산 뺏는 은행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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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시도 中企대출 8800억 줄어


인천 남동공단에서 제조업을 하는 ‘피비아이코리아’의 대표 장석원 씨는 대출 만기가 돌아온 6월 말 한 시중은행을 찾았다. “만기가 연장되지 않으면 회사가 부도난다”며 빌었지만 5년째 거래하던 은행에선 “연장은 불가능하다. 부도를 낼 거면 내라”는 답만 돌아왔다. 장 씨가 사채를 이용해 신용등급이 낮아진 데다 이미 만기를 연장했다는 게 거절의 이유였다.

결국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은행 영업점 직원이 본점을 겨우 설득해 만기를 늦췄다. 하지만 연장된 만기도 고작 한 달이었다. 그는 “자금난이 심각한 중소기업에 대출을 한 달마다 거둬들이는 건 가혹하다”며 “40년 사업 인생 중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도 힘든 최악의 시기를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장 씨는 최근 스리랑카와 5700만 원 규모의 수출 계약까지 맺었지만 자금이 부족해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경기 침체와 최저임금 인상, 대출금리 상승 등의 악재를 ‘폭우’처럼 맞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출을 거두는 은행권의 ‘우산 빼앗기’가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은행들이 기업대출은 회피하고 손쉬운 가계대출로 돈을 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위기 지역에서 대출 회수

1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 가계대출은 5월 말 현재 677조4600억 원으로 2013년 말에 비해 40.8% 급증했다. 반면 기업대출은 같은 기간 29.9%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지방 중소기업에 대한 우산 뺏기가 심각했다. 금융감독원이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낸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지방은행과 KDB산업, IBK기업, 수출입은행 등 특수은행들이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중소기업 대출을 줄인 지역은 5곳에 이른다.

전남(―4097억 원), 대구(―1687억 원), 전북(―1542억 원), 울산(―1248억 원), 충남(―273억 원) 등 총 8847억 원 규모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등의 직격탄을 맞은 위기 지역을 중심으로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 조이기에 나선 것이다.

전남 광양시의 제조기업 A사는 대기업과 장기 납품 계약을 맺을 정도로 건실한 기업이지만 최근 자금난에 빠졌다. A사 대표 이모 씨는 “직원 월급을 주려고 신용대출과 카드론까지 쓰다 보니 신용등급이 떨어져 은행 대출 금리가 10%대까지 올랐다”며 “순수하게 사업자금으로 빌린 대출인데 금리를 이렇게 올리는 건 너무하다”고 하소연했다.

인천의 자동차 부품업체 SMC테크는 60억 원 상당의 공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그동안 밀린 4대 보험료와 임금 등을 지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은행에선 “담보 여력은 되지만 기존에 대출을 연체한 적이 있어 담보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 회사 대표는 “연체가 있더라도 담보 가치가 괜찮다면 대출을 통해 중소기업의 숨통을 틔워줬으면 좋겠다”며 “그러면 자금난에 빠진 많은 기업들이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말했다.

○ “성장 가능성 따져 대출 나서야”

은행들은 부실 관리를 위해 기업에 대한 대출 심사를 깐깐히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이 가계대출에만 치중하지 말고 중소기업의 기술력과 미래 가치를 따져 성장 가능성이 있으면 자금을 융통해주는 ‘생산적 금융’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피비아이코리아도 7개의 디자인 특허를 갖고 있다. 장 대표는 “자금난이 너무 심해 세금이 밀렸는데도 기술금융 지원을 받으려면 무조건 국세 완납 증명서를 가져오라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요구다”라고 주장했다.

성장 잠재력은 보지 않고 무조건 담보대출만 요구하는 은행에 대한 불만도 높다. 수도권의 포장기 제조업체 B사 대표는 “회사 장래성을 고려해 대출 심사를 하는 은행은 거의 없다”며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에 일정 금액을 과감하게 지원해 성장 과정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분석하는 데 게으른 은행들이 무조건 대출을 회수한다”며 “기업의 기술력을 잘 살펴 담보가 없어도 대출할 수 있는 생산적 금융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박희영 인턴기자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과 졸업
#중소기업#은행#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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