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의 리우 리포트] 브라질 축구, ‘마라카낭의 비극’ 이제 그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8월 19일 05시 45분


18일(한국시간) 브라질-온두라스의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축구 4강전이 펼쳐진 마라카낭 스타디움. 브라질은 6-0 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랐다. 브라질은 마라카낭에서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꿈에 부풀어있다. 리우데자네이루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18일(한국시간) 브라질-온두라스의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축구 4강전이 펼쳐진 마라카낭 스타디움. 브라질은 6-0 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랐다. 브라질은 마라카낭에서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꿈에 부풀어있다. 리우데자네이루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1950년 월드컵 패배 충격에 4명 사망
1992년엔 스탠드 붕괴로 수십명 중상
독일과 결승…올림픽 첫 金 딸 지 주목

영국의 유명 작가 앤드루 스미스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역사문화 유적지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 스타디움을 꼽았다. 브라질의 축구영웅 펠레가 A매치에 데뷔하고, 개인통산 1000호 골을 뽑은 곳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현장으로 향할 때부터 ‘위시 리스트(Wish List)’ 최상단에 마라카낭을 집어넣었다.

2년 전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월드컵 때도 한국대표팀의 베이스캠프였던 이구아수(세계 최대 폭포로 유명)를 중심으로 아마존 남부 쿠이아바, 슈퍼모델 지젤 번천이 나고 자란 ‘미녀의 도시’ 포르투 알레그리, 브라질의 허브 상파울루 등 주요 도시들을 방문했지만 당시 7경기가 펼쳐진 리우로 향할 기회는 없었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브라질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축구장을 가보지 못했다니….

아쉬움이 남아서였을까. 하루를 넘기는 긴 비행 끝에 리우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긴 곳은 마라카낭이었다. 다만 방문 목적은 축구가 아니었다. 올림픽 개막식이 이곳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간절하면 통한다고 했다. 드디어 오직 축구 관전을 위해 마라카낭을 찾을 기회가 생겼다. 18일(한국시간) 벌어진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4강전. 개최국 브라질과 온두라스의 승부였다. 사실 아쉬움이 있다. 한국이 8강전에서 온두라스에 무릎을 꿇어 ‘브라질축구의 성지’에서 브라질과 자웅을 겨룰 소중한 기회를 놓친 탓이다. 우리가 이기든, 패하든 그 자체로도 엄청난 역사로 남았을 텐데…. 리우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마라카낭이 세계적으로도 유서 깊은 장소인 만큼 대회 개·폐막식과 남녀축구 준결승·결승을 열기로 일찌감치 결정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마라카낭은 브라질인들에게 행복만 주지는 않았다. ‘비극’으로 불린 고통의 시간도 많았다. 1950년 월드컵 결승을 개최하기 위해 1948년 착공된 마라카낭에서 우루과이와 예정(?)대로 결승에서 만났을 때, 10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에 21만여명(추정)이 입장했다. 결과는 1-2 역전패. 2명이 총으로 목숨을 끊었고, 2명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리고 수십여명이 졸도했다.

올림픽 브라질 축구대표팀.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올림픽 브라질 축구대표팀.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비극은 또 있었다. 1992년 축구경기 도중 일부 스탠드의 붕괴로 3명이 죽고, 수십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발을 쿵쿵 구르는 응원이 브라질 팬들의 특징이다. 리우올림픽에서도 축구를 비롯한 여러 종목 경기장에서 발 구르기를 하는 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중이 한 곳에 쏠리면서 스탠드가 무너진 것이다. 이 사고로 규모가 크게 축소돼 7만8000석 형태로 리모델링됐다.

2년 전 월드컵 때도 절망이 되풀이됐다. 누군가 죽고 다치진 않았으나, 충격은 컸다. 그 때도 브라질월드컵 조직위원회는 결승을 마라카낭에서 치르기로 했다. 자국대표팀의 순항을 전제로 대관식을 열 계획이었다. 그러나 꿈으로 끝났다. 벨루오리존치 미네이랑에서 열린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1-7로 대패해 마라카낭 입성에 실패했다.

리우올림픽 축구 일정을 보면 4강전과 결승은 마라카낭, 동메달 결정전은 미네이랑에서 치러진다. 브라질로선 악몽을 깰 절호의 찬스다. 그러나 17일 이곳에서 벌어진 여자축구 4강전에선 브라질이 스웨덴에 승부차기로 무너졌다. 온두라스와 맞선 남자 ‘카나리아 군단’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18일 마라카낭으로 향하던 미디어 셔틀버스에선 ‘만일의 사태’를 걱정하는 외신기자들도 있었다. 브라질이 온두라스에 져서 폭동이 일어나면 늦은 밤까지 숙소로 돌아가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동행한 브라질 기자들이 미소를 지으며 “그럴 일은 없다”고 다독였지만, 정작 자신들도 불편한 기색은 감추지 못했다.

‘다행히’ 기우였다. 슈퍼스타 네이마르(24·FC바르셀로나)가 중심이 된 브라질은 맹공을 퍼부어 6-0 완승을 거두고 21일 같은 장소에서 결승을 치르게 됐다. 네이마르는 전반 14초 만에 골망을 흔들어 역대 하계올림픽 최단시간 득점자가 된 데 이어 후반 추가시간 6번째 쐐기골까지 성공시켰다.

월드컵 통산 4회 우승을 달성한 브라질이지만, 올림픽 정상의 기억은 없다. 상파울루에서 벌어진 또 다른 4강전에서 독일이 나이지리아를 2-0으로 격파해 결승 매치업은 브라질-독일이 됐다. 브라질이 2년 전의 악몽을 딛고 고통으로 점철된 ‘마라카낭의 비극’을 끝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남장현 스포츠1부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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