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인생후반전 준비하는 중장년층

동아일보 입력 2011-02-21 21:10수정 2011-02-2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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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 쯤 오겠지…'라고 생각하며 의자를 많이 준비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준비한 14개의 의자가 다 차고, 새로 가져온 네 개의 의자로도 모자랐다. 17일 오전 11시 홈플러스 서울 영등포구 문래점. 장을 보러 온 주부들이 LG유플러스의 '스마트폰 아카데미' 행사 안내를 보고 즉석에서 몰려들었다. 30대 주부도 있었지만 40~50대 주부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이날 교육에 참석한 주부 이종래 씨(52)는 "아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버스 도착 직전에 정류장에 나가 버스를 타는데 나와 남편은 이 추위에 정류장에 미리 나가 덜덜 떨며 버스를 기다리는 게 한심했다"고 말했다.

● 중장년층 스마트폰 사용 급증


신기술과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스마트폰은 줄곧 20~30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스마트폰 사용실태 조사를 벌이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보면 이는 편견이었다. 지난해 5월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 가운데 77%는 20~39세였지만 하반기 스마트폰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이 연령대의 비중은 48%로 낮아졌다. 반면 40~59세의 비중은 같은 기간 13%에서 36%로 3배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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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결과에서는 60세 이상 스마트폰 사용자는 조사 대상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국내 통신 3사인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60세 이상 스마트폰 가입자를 조사해 봤다. 지난해 6월 말 약 7만7000명이던 60세 이상 가입자는 12월 말 약 27만3000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스마트폰 가입자는 약 294만 명에서 718만 명으로 2.4배 가량 늘었다. 60세 이상 스마트폰 사용자는 전체의 3.8%에 불과하지만 이 연령대 사용자의 증가속도는 평균을 훨씬 넘은 것이다.

●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다

이미 중장년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다양한 형태로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 은행에서 근무하다 15년 전 은퇴한 윤원진(63) 씨는 퇴직 후 풍경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갖게 됐다. 스마트폰은 이런 그에게 좋은 친구다. 여행지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다가 날씨가 꾸물거리면 바로 스마트폰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젊은 시절처럼 무리해서 악천후에 야영을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초 경북 안동 월영교 여행을 갔을 땐 맛있는 간고등어 음식점도 아이폰으로 찾았다"고 자랑했다. 그는 지난해 말 아예 여행사진 블로그도 개설했다.

교사로 일하다 10여 년 전 은퇴한 주부 이희영(59) 씨는 최근 스마트폰을 이용해 호주 여행을 다녀왔다. TV리모컨 사용법 배우기도 어려워 할 정도로 기계를 꺼렸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유명 여행출판사 론리플래닛의 아이폰용 시드니와 멜버른 여행 앱(응용프로그램) 덕을 봤다. 현지 지도와 여행 정보를 얻은 것인데, 스마트폰은 이 씨의 짐도 줄여주고 자유여행에 도전할 용기도 줬다.

경기 평택에 사는 공인중개사 이오만(67) 씨는 LG전자의 스마트폰 '옵티머스원'으로 약 500여 명에 이르는 고객 전화번호를 그룹으로 나눠 관리한다. 수많은 연락처를 척척 찾아내는 게 일반 휴대전화보다 훨씬 좋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그는 "부동산을 안내할 때 지도 앱을 켜서 고객들에게 찾아오는 길을 설명하기도 편하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젊어서도 하지 않았던 배낭여행의 도우미고, 새로운 직업을 도와주는 비서였다.

● "스마트폰은 한글"

곽수일(70) 서울대 명예교수는 스마트폰을 '한글'에 비유했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스마트폰 전도사'로 통한다. 지난해 경기고와 서울대 상과대학 동기회장을 맡으면서 동기들에게 스마트폰을 쓸 것을 누누이 강조했기 때문이다. 동기회에서 그는 60여 년 전 한국전쟁 때 피난지에서 겪었던 일을 동기들에게 소개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대청마루에 나와 있던 옆집 아낙이 저를 불러 종이를 내밀었어요. 국군으로 참전했던 아들의 편지였죠. 편지를 소리 내 읽어줬더니 이번에는 종이와 연필을 내미는 겁니다. '네가 한글을 아니 내 아들에게 내가 부르는 말을 좀 적어다오'라면서요. 전 아직도 그 아낙의 얼굴을 잊지 못해요."

곽 교수는 이 얘기를 동기들에게 들려준 뒤 "너희도 지금 내 말 듣고 스마트폰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너희 손자·손녀에게는 딱 내가 그 한글을 모르던 아낙을 보던 모습으로 비칠 것"이라고 말했다. 곽 교수는 SK텔레콤과 KT에게 부탁해 스마트폰 교육팀을 동기회장으로 초청했다. 이후 수십 명의 친구들이 스마트폰으로 휴대전화를 바꿨다고 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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