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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연개소문이 영웅? 대당 항전은 불가피한 선택”

입력 2017-04-01 03:00업데이트 2017-04-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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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의 백제-신라 정복설은 허구”… 광개토왕릉비 둘러싼 한일 논쟁 등 민족주의 넘어선 고대사 해석
◇한국 고대사 산책/한국역사연구회 지음/464쪽·2만2000원·역사비평사
중국 지린 성 지안 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릉비’. 비석 전면에 걸쳐 광개토왕의 정복 활동이 기록돼 있다. 동아일보DB중국 지린 성 지안 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릉비’. 비석 전면에 걸쳐 광개토왕의 정복 활동이 기록돼 있다. 동아일보DB
지금껏 본 고대사 책들 가운데 가장 과감하고 시원했다.

문헌기록이 절대 부족한 고대사는 해석의 여지가 큰 만큼 논란도 많다. 문헌의 빈자리를 고고 유물에 대한 해석으로 메워야 할 때도 많다. 유독 고대사 분야에서 재야사학과 강단사학의 갈등이 불거지는 이유다. 제국주의 침탈 경험이 있는 한국에서 민족주의를 앞세운 재야사학의 공세는 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 만난 한 고대사 연구자는 “논문을 쓸 때 괜히 식민사학 프레임에 걸려들어 오해를 살까 걱정할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 책 저자들은 민족주의를 악용한 역사왜곡에 대해 과감히 비판한 동시에 학계 스스로 반성해야 할 점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특히 한국사에서 자주성 논란과 관련해 회자되는 ‘연개소문’에 대한 입체적 해석은 주목할 만하다. 흔히 연개소문은 영류왕의 굴욕적인 대당 외교를 비판하고 민족자주를 추구한 영웅으로 종종 그려진다. 그러나 저자는 연개소문이 애초 당나라에 맞설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당 태종이 반역죄 징벌을 명분으로 내걸고 침략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분석한다. 그렇지 않아도 쿠데타로 권력을 독점해 지방귀족들의 반발을 사는 상황에서 당 태종의 선언은 연개소문의 정치적 입지를 뿌리째 뒤흔드는 고도의 ‘이간책’이었다. 결국 연개소문의 대당 항전은 타의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마찬가지로 영류왕의 굴욕적인 외교를 시정하기 위해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켰다는 주장도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일 수 있다. 여러 대에 걸쳐 고위직에 오른 연개소문 가문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던 영류왕의 시도가 도화선이었다는 얘기다. 저자는 “연개소문의 정변은 자신과 가문의 지속적인 권력 장악을 위해 결행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일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광개토왕릉비 중 신묘년 기사(진하게 표시된 부분). 동아일보DB한일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광개토왕릉비 중 신묘년 기사(진하게 표시된 부분). 동아일보DB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인의 기상이 담겼다는 광개토왕릉비 해석도 눈길을 끈다. 앞서 일본학자들은 비석에 ‘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爲臣民’라고 새겨진 이른바 신묘(辛卯)년 기사를 놓고 “왜(倭)가 백제와 신라를 정복해 신민으로 삼았다”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저자는 신묘년 기사는 광개토왕 때 형성된 고구려 중심의 천하(天下)관에 따라 만들어진 허구라고 봤다. 비석에 쓰인 구체적인 정복 활동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정복의 명분과 의미를 살리기 위해 일부 기사에서 왜의 세력을 과장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 시기 왜가 한반도 남부를 점령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어떠한 기록이나 고고학적 증거도 발견된 바 없다. 집권자를 빛내기 위한 역사왜곡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백제의 요서 진출도 도마에 올랐다. 백제 전성기인 근초고왕대 중국 요서지방은 물론 산동지방과 일본 규슈까지 진출했다는 학설은 교과서에도 소개됐다. 그러나 저자는 요서 진출은 문헌기록과 정황에 비춰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만, 산동이나 규슈 진출은 근거가 전혀 없는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한다. 이와 관련해 “왜곡된 사실이 교과서에 오랫동안 실린 것은 허구를 바로잡아야 할 학자들의 책임”이라고 썼다.

비류(온조의 형)가 세운 이른바 ‘비류 백제’가 일본 황실의 뿌리라는 학설은 오히려 식민사학의 덫에 빠질 수 있는 자충수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저자는 “일본과 조선은 같은 조상에서 나온 형제라는 일제강점기의 ‘일선동조론’과 같은 맥락일 수 있다”고 밝혔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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