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가 쏘아올린 ‘도요샛’ 이름의 비밀은?[전승훈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7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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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나 높이 나는지~. 우리가 얼마나 멀리 날으는지~”
(정광태, 이태원 ‘도요새의 비밀’)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에 실려 궤도에 오른 ‘도요샛’은 무게 10kg에 불과한 초소형 인공위성 ‘큐브샛(Cubesat)’이다. 지구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은 축구장만큼 큰 국제우주정거장(ISS)이나, 1000 kg이 넘는 대형위성에 비교하면 아주 작은 크기다.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초소형위성인 도요샛 4기가 지구 궤도에서 임무 중인 상상도.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초소형위성인 도요샛 4기가 지구 궤도에서 임무 중인 상상도.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초소형 군집위성인 도요샛은 마치 드론처럼 4대의 큐브샛이 함께 나란히, 또는 일렬로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도요샛’은 영어로 스나이프(SNIPE, Scale MagNetospheric and lonspheric Plasma Experiment)라고 불린다. 지구 자기장과 이온 전리층의 플라즈마 실험의 크기를 측정한다는 목표가 담긴 줄임말이 SNIPE다. 그런데 영어로 Snipe는 ‘도요새’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 위성이라는 뜻의 ‘SAT’을 붙여 도요샛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 가장 작고 멀리 나는 새, 도요새의 비밀
도요새라는 이름은 초소형 인공위성에 그야말로 딱 맞는 이름이다. 도요새는 ‘가장 작고, 가장 멀리 나르는 새’로 유명하다. 우리 가요에도 도요새는 많이 등장한다. “마도요! 젊음의 꿈을 찾는 우린 나그네. 머물 수는 없어라~” (조용필 ‘마도요’)

도요새는 지구의 순례자다. 붉은가슴도요새의 다리에 표식을 한 후 12년 만에 포획을 해보니 평생 52만km의 거리를 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필립 후즈라는 과학자는 100g 정도에 불과한 이 새가 날아다닌 여정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38만km)보다 더 길다고 해서 ‘문버드’(Moon Bird)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감동적인 관찰기를 책으로 남겼다.

알락꼬리마도요. 화성환경운동연합 제공


경기 화성호 습지에 많이 찾아오는 ‘알락꼬리마도요’는 화성습지를 찾는 마도요의 40%를 차지하는 종으로 화성시를 상징하는 ‘시조(市鳥)’다. 이 새는 북극권인 시베리아에서 짝짓기와 알을 낳고, 남반구의 끝자락인 호주, 뉴질랜드에서 월동을 한다. 매년 2만7000km가 넘는 거리를 왕복해야하는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새다.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2019년 1월 호주에서 출발한 알락꼬리마도요의 위성추적 데이터.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 2019년 1월 호주에서 출발한 알락꼬리마도요의 위성추적 데이터.


호주에서 긴 월동기간을 보낸 이들은 3~5월이 되면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한다. 자기 몸무게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먹이를 먹어치우며 2주만에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난다. 에너지가 지방으로 저장되는데 출발 직전의 도요새를 만져보면 마치 물풍선처럼 출렁일 정도라고 한다.

날고 있는 알락꼬리마도요. 화성시 제공
대집단을 이루어 출발하는 알락꼬리마도요의 목적지는 한반도 서해안. 태평양을 건너오는 1만km의 구간 동안 먹이는 물론 물 한 모금도 못마시고, 날개를 접고 쉬거나, 잠도 자지 못한다. 오리처럼 물 위에 떠 있을 수 없는 도요새는 물에 빠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피할 곳은 없다. 무리에서 떨어지면 죽음 뿐이다. 이렇게 도착 전에 30%는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서해안에 도착할 때 쯤이면 몸무게가 40%이상 줄어들게 된다. 한 조류학자는 “도요새들은 갯벌에 다리보다 부리가 먼저 닿는다”고 했다. 완전히 탈진한 상태라 먹이를 보충하는 것이 시급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알락꼬리마도요
알락꼬리마도요는 화성의 갯벌에서 긴부리로 칠게나 갯지렁이를 잡아먹으며 체력을 회복한다. 여름에 시베리아로 날아가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9~10월에 다시 한반도 서해안을 찾는다. 그리고 겨울에 다시 호주까지 1만km를 날아가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겨울철 호주에서는 알락꼬리마도요가 돌아올 즈음이면 떠들썩한 축제를 연다. 종을 울리며 무사히 돌아온 도요새를 환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년 4월이면 북반구로 떠나는 알락꼬리마도요 등 여러 도요새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며 모자를 흔들며 휘파람을 불고 기도문을 외우는 도요새 환송식을 진행한다고 한다.

화성습지 갯벌에 있는 알락꼬리마도요
호주 멜버른 국립빅토리아미술관 앞 조형물


지난 3월 호주 멜버른에 갔을 때 국립빅토리아미술관 앞에 알락꼬리마도요와 비슷하게 긴부리를 가진 새의 모습을 표현해놓은 LED조형물을 보았다. 호주가 도요새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 도요샛 3기 ‘다솔’은 어디에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한 도요샛은 총 4기가 ‘완전체’인 군집위성이다. 4기가 우주에서 종대나 횡대로 늘어서 편대 비행을 할 예정이었다. 태양풍에 따른 ‘우주날씨’ 변화를 측정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전날 위성 분리 여부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3호기(다솔)는 아직 교신이 안 됐다. 오전까지 연락이 닿지 않던 4호기(라온)는 수신에 성공했다.

도요샛(SNIPE) 가상도.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도요샛과 같은 큐브샛 인공위성은 1999년 캘리포니아공과대학과 스탠퍼드대학이 교육 목적으로 처음 개발했다. 우주공학교육에 주로 사용됐지만 점차 궤도 내 신기술 실험, 우주 환경시험 등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발전했다. 크고 무거운 대형위성은 개발과 발사에만 수천 억 원의 비용이 들지만, 작은 크기의 큐브샛은 적은 비용으로도 제작과 발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요샛(SNIPE) 가상도.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4대의 각 위성들은 우주 공간에서 10km부터 100km 간격으로 천천히 멀어지며 편대 비행을 할 수 있다. 각 위성의 가스 추력기를 활용해 위성간 비행거리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렇게 4대가 동시 편대 비행을 하며 움직이면 관측대상에 대한 시공간적인 연구가 가능하다는 잇점이 있다. 한 관측 대상을 서로 다른 시간에 관측하는 것 외에도 4대의 위성이 4곳의 지역을 관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동일한 시간에 각 4곳의 공간적 물리량의 분포까지도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차세대소형위성 2호는 앞으로 2년간 태양동기궤도에서 지구를 하루에 약 15바퀴 돌면서 관측 임무를 수행한다.

도요샛(SNIPE) 기술검증모델.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도요샛의 주 임무는 지구 가까운 곳의 자기장과 플라즈마를 관측하는 것이다. 천문연은 지속적으로 3호기와의 교신을 시도할 예정이다. 다만 만에 하나 교신이 계속 안 되더라도 3기로 임무 수행은 대부분 가능하다는 게 천문연의 설명이다.

당초 도요샛 4기는 횡대·종대 비행을 하며 우주 날씨를 관측하도록 설계됐다. 이재진 천문연 우주과학본부장은 “여러 대가 있으면 더 기능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론적으로는 2기 이상이면 편대비행 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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