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내 바나나 먹었을 때? 큰 감흥 없었어…예술은 어차피 재활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8일 1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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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인터뷰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 2019. 사진: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 제공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 2019. 사진: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 제공
“도발은 전쟁도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예술이 이렇게 역사를 바꿀 힘을 갖길 바란다.”

미술관 입구에 노숙자 조각을 설치하고, 로비는 비둘기 떼로 점령시킨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에게 “당신은 도발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나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엔 권위에 대해 반골 기질을 가진 내 성향이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 도발로 가득 찬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의 카텔란 개인전 ‘WE’가 화제다. 2주마다 열리는 사전 예약 티켓은 공개 직후 거의 매진된다. 리움미술관 관계자는 “현장 표를 구하려는 관객이 매일 로비부터 입구까지 줄을 서고 있다”며 “하루 평균 2000명이 방문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미술관에 이렇게 음침한 풍경을 만들어 낸 카텔란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서면 인터뷰로 그를 만났다.

먼저 그를 널리 알린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2019)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2019년 아트바젤에서 관객이 당신의 바나나를 먹어 치웠을 때 기뻤나?’고 물었다.

“그 작품을 만들기 전 몇 달 동안 플라스틱, 금속 바나나 모형을 갖고 이리저리 만들어 보다가 결론을 내지 못해 그냥 생바나나를 붙였다. 그 결정이 결국 누군가가 바나나를 먹어서 이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예술은 어차피 전부 재활용이고, 늙은 경주마들의 계주 같은 것 아닌가?”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리움미술관 제공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리움미술관 제공
미술사에서 새로운 작품은 없고, 언제나 과거의 것들을 모방하고 패러디하며 예술이 이어진다는 신랄한 평가를 그는 내렸다. 그러면서 그는 예술의 힘이 도발에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폴란드 침공, 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처럼 예술이 폭발적 힘을 갖길 바란다. 과거 예술은 그런 힘이 있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신을 보는 관점을 바꾸었다. 나는 예술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2016년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정부 당시 백악관이 구겐하임 미술관에 반 고흐 작품 대여를 요청했을 때, 미술관은 카텔란의 18K 황금 변기 작품 ‘아메리카’를 제안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카텔란이 ‘아메리카’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어울린다고 생각할지 궁금했다.

“미술관의 결정에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구겐하임의 큐레이터 낸시 스펙터가 ‘아메리카’를 빌려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물론 내 작품이 미술관을 떠나 백악관처럼 권위 있는 공간에 전시된다면 영광이었을 것이다.”

카텔란의 작품 ‘모두’, 2007. 사진: 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 제공.
카텔란의 작품 ‘모두’, 2007. 사진: 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 제공.


리움미술관은 전시장 2층에 놓인 9개의 대리석 조각 ‘모두’(2007)가 한국인에게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한 카텔란의 생각도 물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작품의 전시 결정은 이태원 참사가 있기 전이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다만 그 작품이 비극을 기억하고 피해자를 존중하는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은연중에 고백했다.

“‘모두’뿐 아니라 내 많은 작품이 죽음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일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작품에서 죽음의 악령을 쫓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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