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정받지 못한 ‘황금손’ 그리고 빼앗긴 DNA 연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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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구조 X선 촬영에 헌신한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
사진 가져간 동료들 노벨상 영예… 본인은 난소암으로 37세에 사망
◇생명의 비밀/하워드 마르켈 지음·이윤지 옮김/672쪽·3만5000원·늘봄

DNA 이중나선 구조의 결정적 근거를 가장 먼저 발견한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현미경으로 X선 사진의 회절 무늬를 분석하고 
있다(위쪽 사진). 1953년 DNA 이중나선 모형 앞에 선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두 
사람의 연구 성과는 프랭클린이 촬영한 X선 사진에 빚진 것이었다. 늘봄 제공
DNA 이중나선 구조의 결정적 근거를 가장 먼저 발견한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현미경으로 X선 사진의 회절 무늬를 분석하고 있다(위쪽 사진). 1953년 DNA 이중나선 모형 앞에 선 제임스 왓슨(왼쪽)과 프랜시스 크릭.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두 사람의 연구 성과는 프랭클린이 촬영한 X선 사진에 빚진 것이었다. 늘봄 제공
위대한 발견을 했지만 가려진 여성이 있다. ‘생명의 비밀’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유대계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1920∼1958)이다. 1953년 2월 28일은 인류사에 전환점이 된 순간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물리학연구소의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95)과 물리학자 프랜시스 크릭(1916∼2004)이 DNA의 구조를 밝히면서 ‘생명은 무엇인가’라는 수수께끼의 핵심 문제 중 하나가 풀렸다. 이중나선 구조인 DNA의 자기 복제를 통해 유전정보가 전달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이다.

미국 미시간대 의학사센터 소장인 저자는 1950년대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배경으로 한 DNA 구조 발견의 역사를 다양한 사료에 근거해 되살렸다. 왓슨과 크릭, 물리학자 겸 생물학자인 모리스 윌킨스(1916∼2004) 등이 과학의 발전을 추구한 여정과 함께 그 과정에서 드러난 여성 차별, 연구윤리 위반을 충실히 파헤쳤다. 저자는 특히 젊은 남성 과학자들 틈 속에서 유일한 여성이자 자신의 공헌을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난소암으로 37세에 요절한 프랭클린에게 주목했다.

프랭클린이 공부한 케임브리지대는 1869년까지 여학생을, 1871년까지는 유대인을 받지 않았다. 여학생들은 1947년까지도 케임브리지 대신 소속 칼리지의 학생으로 기록됐다. 수업 때는 교실 좌석의 맨 앞줄 등 분리된 구역에 앉아야 했다. 프랭클린은 이 같은 차별적 분위기 속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1950년 킹스칼리지 생물물리학 연구팀에 들어갔다. 그러나 같은 팀의 동료 남성 윌킨스는 프랭클린을 자신의 조수로 여기는 한편으로 외모를 평가하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X선 사진에 드러난 수천 개의 회절 무늬를 일일이 분석하는 도구는 사람의 손과 눈, 계산자였다. 각 단계가 정확하지 않으면 오류가 발생해 잘못된 해답으로 이어졌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황금손’으로 DNA 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느리지만 정확하게 X선 자료를 촬영해 나갔다.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 모형을 발표하자 영국 학계에서는 “DNA 구조를 훔친 것과 다름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왓슨과 크릭은 1953년 킹스칼리지를 떠나는 프랭클린의 ‘51번 X선 회절 사진’을 동의 없이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왓슨과 크릭의 발견은 당시 세계적 X선 결정학자였던 프랭클린의 이 사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프랭클린의 사진을 왓슨과 크릭에게 보여준 윌킨스는 1962년 DNA의 이중나선 구조와 기능을 밝혀낸 공로로 왓슨, 크릭과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저자는 난소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프랭클린이 평생 감당했던 부담과 위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주 작은 계산 실수라도 하면 그녀가 짠 실험이라는 직물에 큰 구멍이 생겼고, 남성 경쟁자들은 기꺼이 밟고 올라갔다. 이런 역학 관계는 프랭클린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가로막았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dna 연구#여성 과학자#로잘린드 프랭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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