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번 주에도 시간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 기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무선 전보 기술이 발달해서 통신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사진 전송도 가능하게 되었다. 영국 ‘데일리 메일’ 신문사에서는 무선 전송기를 설치하고 100야드(약 91미터) 거리 떨어진 곳에서 무선 수신기를 설치했는데 3분 만에 흑백 사진 1장을 전송했다는 것이다. 비록 시험 성적이 아직 불완전하지만 놀랄 만한 성적이며,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전송하는 것도 멀지 않은 것 같다”는 게 영국 신문사의 설명입니다. 100년 전에 무선망으로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를 전송했다는 소식에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 제가 신문사에 입사했던 해가 1996년인데 그때 신문사 사진기자들은 필름 스캐너를 들고 다니며 필름을 스캔한 후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약 3메가바이트 정도의 jpg 파일을 노트북에 저장해 신문사의 메인 컴퓨터로 보냈습니다. 내 컴퓨터와 회사 컴퓨터 사이에는 유선 전화선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atdt 01440을 명령어로 쳐서 전화선 모뎀을 통해 내 노트북과 회사 컴퓨터에 접속했습니다. 중간에 회사 기사사진수집 프로그램을 구동시켰구요. 접속 후, 디지털화 된 사진 한 장을 보내는데 걸리는 시간은 빠르면 2분, 늦으면 10분 이상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 기술력만 해도 선배들에 비해서는 아주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A4용지 크기의 필름 스캐너 대신에 아주 큰 전송기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날로그 방식이었기 때문에 외국 출장을 가서 사진을 보내려면, 호텔에서 국제 전화를 이용해 사진을 보내야 했는데 칼라 사진 한 장을 보내는데 30분이 걸렸다는 사례는 수 없이 많았습니다. 출장비 중 통신비를 따로 신청해야 할 정도로 국제전화비로 큰 돈이 들었습니다.
국내 출장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사진을 보내려면 전송기를 이용하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이었습니다. 한 장 보내는데 걸리는 시간과 그에 따른 시외전화요금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지방에서 큰 뉴스가 발생하면 현장에 파견된 사진기자가 필름을 가까운 기차역으로 가서 서울행 기차에 탁송을 의뢰했습니다. 그러면 서울 본사에서 막내 기자나 사환들이 서울역에서 필름을 찾아와 현상해서 신문에 게재하곤 했습니다. 급할 경우 신문사 헬기가 지방에서 서울로 날아와 초등학교 운동장에 필름 가방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 유선 전화선을 통해 노트북과 회사 컴퓨터를 연결해서 사진을 보내던 방식은 2000년대 초반 SK텔레콤에서 CDMA 기술을 시험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세대교체 되었습니다. 휴대폰을 노트북에 연결시키면서 ‘무선 전송’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처음으로 휴대폰과 노트북을 연결하던 그 감격을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설악산 정상에서도, 독도 앞바다에서도 기지국이 근처에만 있으면 사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선 전화선을 찾으러 관공서나 영업하는 가게를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는 현장 사진기자에게는 축복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 물론 이제 사진은 핸드폰 5G 속도의 덕택으로 촬영과 거의 동시에 회사 컴퓨터로 전송됩니다. 원하면 내 노트북을 펼치지 않고 카메라에서 바로 회사 컴퓨터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카톡으로도 사진을 보낼 수 있는 만큼 회사에 통신비를 따로 신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북한 또는 남극이나 북극 지방에서 사진을 보내려면 별도의 통신 방식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인거죠. 그만큼 현장 기자도 편하고 회사도 컨텐츠를 수집하는데 비용이 줄어들어드는 윈윈(win-win)의 상황이 된 겁니다.
▶ 무선 통신을 통한 사진 전송이 100년 전에 가능했다는 소식에 묘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 기술이 빨리 상용화되었다면 저를 비롯한 사진기자들의 수고로움이 훨씬 줄어들었을텐데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시장성이 없어서 무선사진전송 기술이 한참동안 발전하지 않으면서 현대의 사진기자들이 본사 데스크의 방해를 덜 받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사실 요즘은 현장에서 찍힌 사진을 서울 사무실에서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주문 생산해야 하는 사진’이 아주 많습니다. 전송이 어렵다면 그냥 놔두었을 사진을 ‘이렇게 저렇게 주문’하는 경우가 많은 겁니다. 출장지에서 누릴 수 있는 여유 자체가 없는 거지요. 그러고 보니 사진 속 쌍꺼풀의 영국 황태자의 얼굴에도 묘한 미소가 보입니다. 제가 느낀 묘한 배신감을 100년 전에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말입니다.
▶여러분은 100년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