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함-귀여움 섞은 팝아트… “예술 문턱 낮추고 싶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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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무라카미 다카시展’
초기작부터 조각 등 160점 전시
베이컨 삼면화 패러디 등 주목
‘뭐든지 쉽고 가볍게’ 철학 담겨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26일 개막한 개인전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두 손을 든 채 웃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위 사진은 무라카미의 2014년 작품 ‘탄탄보: 감은 눈으로도 볼 수 
있는 불꽃과의 조우’. 오른쪽 아래는 무라카미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꽃 시리즈를 볼 수 있는 전시장. 부산=뉴시스·페로탱갤러리
 제공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26일 개막한 개인전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좀비’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두 손을 든 채 웃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위 사진은 무라카미의 2014년 작품 ‘탄탄보: 감은 눈으로도 볼 수 있는 불꽃과의 조우’. 오른쪽 아래는 무라카미의 트레이드마크 중 하나인 꽃 시리즈를 볼 수 있는 전시장. 부산=뉴시스·페로탱갤러리 제공
만화 속 캐릭터가 그려진 분홍 모자 아래로 삐져나온 구불구불한 머리카락과 수염. 그 아래엔 금빛으로 번쩍이는 목걸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빌리 아일리시, 카녜이 웨스트 등 해외 유명 가수들은 물론이고 루이비통, 수프림 등 각종 브랜드와 협업하며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61)가 부산을 찾았다.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26일 개막한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전을 알리기 위해서다.

● 움직이는 게 돈인 예술 사업가
이날 기자 간담회장에 등장한 무라카미의 모습은 독특했다. 두꺼운 롱코트를 입은 그가 계단을 내려오자, 각종 촬영 장비를 든 관계자들이 그를 에워싸며 걸어왔다. 미술관 관계자는 “무라카미가 운영하는 카이카이키키 스튜디오 직원들”이라며 “무라카미가 자신의 모든 활동을 영상으로 기록하기에 그가 움직일 때마다 돈이 배로 든다”고 혀를 내둘렀다.

전시장으로 이동해 취재진이 사진을 찍는 순간, 무라카미는 한쪽 발을 들고 양손을 얼굴 옆으로 펼친 뒤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흔히 떠올리는 예술가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전시 투어가 끝난 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롱코트를 벗고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노란 재킷을 입고 다시 등장했다. 예술가인가, 사업가인가, 연예인인가…. 헷갈리게 만드는 그 자체가 무라카미의 캐릭터였다.

부산시립미술관 본관 2층 대전시실과 이우환 공간 1층에서 열리는 전시는 무라카미의 초기작부터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 160여 점을 소개한다. 가수 지드래곤과 탑이 소장한 무라카미 작품도 전시됐다. 전시는 귀여움, 기괴함, 덧없음, 원상(円相) 등 크게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 뭐든지 쉽고 가볍게
그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전시장 입구에서 볼 수 있는 ‘미스터 도브’(Mr. DOB)다. 국제적 사랑을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도라에몽과 소닉을 결합한 것이다. 지드래곤이 소장한 ‘727 드래곤’(2019년)에도 도브가 등장한다. 이 밖에 꽃을 캐릭터한 ‘꽃’ 시리즈도 귀여움 섹션에서 볼 수 있다. 화려한 색감의 꽃잎에 활짝 웃는 미소를 더한 꽃 시리즈는 한국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무라카미의 작품이다. 이들 캐릭터는 깊은 의미보다 대중이 좋아할 쉽고 가벼운 것을 찾아 나선 무라카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절정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삼면화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무라카미는 베이컨의 작품을 패러디하며 본래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표현됐던 부분을 펄이 들어간 물감을 칠해 반짝이는 장난감처럼 만들어버렸다. “미술대학에 들어가려 2년이나 재수를 했지만, 현대미술에서는 그림을 잘 그리는 기능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다”는 그의 말에서 ‘뭐든지 쉽고 가볍게’ 만들자고 생각한 작가의 철학이 읽혔다.

이번 전시의 가장 따끈한 신작은 조각 ‘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2022년)다. 실물 크기의 무라카미 형상은 배 속을 열어 장기가 보이게 만들었고, 반려견 폼이 좀비처럼 변한 모습을 담았다. 무라카미는 “처음엔 제 몸을 디지털 프린트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워 시작했다가, 좀 더 재밌게 하기 위해 몸 속 내장을 흩트려 보며 탄생한 것”이라며 “특별한 콘셉트를 갖고 시작한 게 아니라 드문 방식으로 접근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없이 가벼워지고 싶은 작품들을 보고 나면 마음 한편에서 ‘이게 예술이 맞나’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무라카미는 “내가 예술의 문턱을 낮추는 데 공헌했다고 생각하지만, 현대 미술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좋지 않은 풍토를 퍼뜨렸다고 비판한다”며 “나는 그저 관객의 판단을 기다리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3월 12일까지. 무료.


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무라카미 다카시展#무라카미 다카시#예술#부산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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