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이루지 못한 사랑…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5일 10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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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의 공연 장면. 쇼온컴퍼니 제공
세계가 사랑하는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거장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는 동성애자였다. 사랑을 찬미하는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왔지만 정작 스스로의 사랑은 끝내 감추며 살았다. 19세기 러시아에서 동성애는 중죄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3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콥스키(김경수 박규원 에녹)가 시대적 한계로 이루지 못한 사랑과 삶을 다룬 작품. 그의 비서이자 연인이었던 알료샤(김지온 정재환 김리현)가 전쟁에 나가 목숨을 잃고 서서히 무너진 차이콥스키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예브게니 오네긴’ ‘호두까기 인형’ 등을 작곡하는 과정을 그린다. 문학잡지 편집장 안나(김소향 최서연 최수진)와 민족주의 예술가 세자르(임병근 테이 안재영)를 등장시켜 당대 암울한 사회상도 다룬다.

차이콥스키의 선율을 차용해 만든 넘버로 인해 웅장하고 환상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차이콥스키의 대표작 ‘호두까기 인형’ 등을 담은 넘버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팀파니, 신시사이저, 퍼커션 등 9인조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완성된다. 김소향 테이 에녹 등 가창력으로 유명한 배우들의 노래 실력이 작품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다.

음악이 자아내는 감정에 비해 서사는 심심하다. 극중 차이콥스키는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며 내적 고통을 겪기만 하는 수동적인 주인공에 머무른다. 전쟁과 예술 양극단에서 갈등하는 세자르를 등장시키지만 작품이 다루는 차이콥스키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그려진다. 차이콥스키의 회복을 돕는 인물로 등장하는 안나는 조력자에 그칠 뿐, 작품 제목에 이름이 언급될 정도의 존재감은 뚜렷하지 않다.
30일까지, 4만4000~8만8000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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