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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그림 속 빠져드는 듯…자연주의 철학 담긴 알록달록 예술 공원 [전승훈의 아트로드]

입력 2022-06-25 16:00업데이트 2022-06-25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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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섬 속의 섬, 우도(牛島)는 누워 있는 소의 모습과 닮았다. 섬에서 가장 높은 우도봉(해발 126.8m)은 소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우두봉, 쇠머리오름이라고 불린다. 우도봉을 오르는 길은 완만한 경사지만, 우도봉 아래쪽에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톨칸이 해변은 바로 소의 여물통에 해당한다. 톨칸이는 제주도 방언으로 촐까니라고도 불린다. ‘촐’은 소에게 먹이는 ‘꼴(건초)’이고, ‘까니’는 소에게 먹이를 주는 큰 그릇이다. 톨칸이 해변에 퇴적암이 층층이 쌓인 기암절벽은 마치 큰 바위 얼굴처럼 보일 정도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제주도는 안도 다다오, 이타미 준, 마리오 보타, 김중업, 정기용과 같은 대가들의 건축물로도 유명한데, 우도에 자연을 테마로 한 세계적 예술가의 뮤지엄이 올해 3월 개관했다.

●우도의 자연과 어우러진 예술 공원, 훈데르트바서

톨칸이 해변 맞은편에 양파돔이 올려져 있는 알록달록한 예술 건축물. 우도의 자연을 그대로 살린 낮은 구릉 같은 형태로 지어진 훈데르트바서 파크를 걷노라면 한 작가의 그림 속에 빠져드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하나인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테마로 한 ‘훈데르트바서 파크(Hundertwasser Park)’다. 훈데르트바서(1928~2000)는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와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3대 화가로 꼽힌다. 스페인의 가우디를 방불케 하는 곡선의 미학을 선보인 독창적인 건축가였던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다.




10여 년 전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여행할 때 깜짝 놀라 돌아다본 건물이 있었다. 콘크리트 건물과 도로가 있는 도심 한복판에 동화책에서 튀어나왔을 법한 노랑, 빨강, 파랑으로 칠해진 궁전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이 바로 쓰레기 소각장이라는 사실이 더 놀랐다. 훈데르트바서가 리모델링한 빈의 아파트 단지에 난방을 공급하는 친환경 시설이자 연간 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이었다.





독일에서 제작해 공수해 온 알록달록한 78개의 세라믹 기둥, 3개의 양파돔, 131개의 개성 있는 창문으로 지어진 파크는 곳곳이 인증샷 명소다. 파크는 훈데르트바서의 일생과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훈데르트바서 뮤지엄’과 미술관인 ‘우도갤러리’, 카페 ‘레겐탁’ 등으로 이뤄져 있다. 쌍둥이 분수인 ‘쯔블링 분수’, 우도갤러리의 세라믹 기둥, 톨칸이 카페에서 바라보는 큰 바위 얼굴을 품은 해안 절경은 압도적이다.





그런데 천천히 파크를 돌아보다 보면 “당신은 자연에 잠깐 들른 손님입니다. 예의를 갖추세요”라고 말한 훈데르트바서의 자연주의 건축 철학과 미학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나무 세입자
“나무 세입자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화폐로 월세를 지불합니다. 나무 세입자는 산소를 공급하고, 사막과도 같은 도시에 습기를 공급합니다. 도시의 진공청소기로서 먼지를 빨아들이고, 소음의 울림 현상을 감소시켜 조용한 도시를 만듭니다. 나무 세입자는 아낌없이 주는 사람입니다….”

훈데르트바서가 1980년에 주창한 ‘나무 세입자’론이다. 그는 메마른 도시의 건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건축물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힘쓴 ‘건축 치료사(Architecture doctor)’다. 그는 인간이 집을 짓는 과정에서 뽑힌 나무들을 지붕과 창문 주변에 ‘나무 세입자’로 심는 것을 설계에 넣곤 했다. 그래서 훈데르트바서 파크의 창문 베란다마다 살아 있는 나뭇가지들이 밖으로 나와 있다. 그의 철학에 따라 우도에 파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생하고 있던 1600여 그루의 나무들은 모두 그대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훈데르트바서의 이름은 ‘백 개(Hundert)의 강(Wasser)’이란 뜻이다. 그는 물을 사랑했다. 뮤지엄에 전시돼 있는 그의 판화는 ‘비 오는 날(Regentag)’ 시리즈다. 그는 “비 오는 날 세상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비 오는 날 나는 행복에 흠뻑 젖는다”고 했다. 비 오는 날, 자연의 모든 색이 선명하게 떠오르면 훈데르트바서는 곡선으로 떨어지는 자연 앞에 경배하며 그림을 그렸다. 훈데르트바서 파크 안에도 우도에서 빗물이 고이는 샘인 ‘각시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물이 귀했던 우도에 생긴 최초의 연못에 대해 이러한 전설이 내려온다.



“우도의 땅의 기운이 남자라서, 샘에서 물이 나오려면 서쪽 어두운 곳의 ‘색시물’을 구해 와야 했다. 동네 사람들은 수소문 끝에 구좌읍 하도리와 종달리 사이에 있는 ‘서느랭이굴’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를 발견해 정성껏 제를 지내고 새 각시를 모셔오듯 물을 항아리에 담아 샘물통에 부었다. 메말랐던 흙 속에서 숨기가 차기 시작하더니 물이 솟아났다.”

이후로 ‘각시물통’이라는 지명이 탄생했으며, 이 각시물에서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자손이 번창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나선(The Spiral)
“나선은 삶과 죽음의 상징이다. 나선은 무생물이 생명으로 변화하는 바로 그 지점에 존재한다. 진화는 언제나 나선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창조 행위에는 나선의 본성이 담겨 있다고 확신한다. 멀리 있는 별들은 나선 형태로 배열돼 있으며, 보이지 않는 분자들 역시 그렇다. 우리의 삶조차도 나선 형태로 진행된다.”




파란색 양파 모양 돔이 있는 훈데르트바서 뮤지엄에 들어서면 기둥과 계단이 온통 물결치는 곡선이다. 나선 모양으로 돌아 올라가는 계단의 바닥도 구불구불하다. ‘직선은 신(神)의 부재를 뜻한다’는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에서 나온 건축이다. 자연에는 곡선만 있듯이, 전시돼 있는 그의 그림과 건축은 온통 곡선의 향연이다.





뮤지엄에 전시돼 있는 독일 다름슈타트의 ‘나선의 숲’ 건축물 모형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나선형으로 지어져 있어 낮은 구릉을 오르듯 지붕 위로 산책할 수 있게 돼 있다.




양파 모양의 나선형 동심원은 훈데르트바서 건축의 상징물이다. 뮤지엄 옥상에서 톨칸이 해변을 바라볼 때 보이는 비너스, 다비드상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훈데르트바서는 생전에 “황금의 양파첨탑은 거주자의 신분을 왕의 지위로 끌어올린다”고 말했다.



●창문권
“집은 벽이 아니라 창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은 눈과 같다. 일반적인 평이한 창문들은 슬프다. 창문들은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

훈데르트바서는 오스트리아 빈의 공공주택 훈데르트바서하우스를 완공한 뒤 세입자 계약서에 창문을 꾸밀 권리인 ‘창문권’ 권리 조항을 넣었다. “모든 세입자가 자신의 창문을 어떤 색깔로도 칠할 수 있고, 장식물을 달 수 있으며 색색의 타일로 장식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거주공간이 인간을 획일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우도의 훈데르트바서 파크 건축물에도 총 131개 창문이 있다. 뮤지엄에서 크고 작은 유리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우도의 풍경은 어떤 그림보다도 더 감동적이다.



창문을 장식하는 세라믹 타일은 현장에서 인부들이 창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장 독특한 타일 문양은 화장실에서 발견된다. 세면대를 꾸민 푸른색, 빨간색, 흰색 타일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화장실을 만들어냈다.



해질 녘. 톨칸이 해변에서 우도의 노을을 바라보면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분홍색이다. 바다 건너 성산일출봉뿐 아니라 한라산까지 붉게 물든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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