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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우크라이나의 유로비전 우승 소식에 놀라신 분[광복이 외신클럽]

입력 2022-05-20 14:52업데이트 2022-05-2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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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읽기가 어렵다구요? 국제부 기자 어깨너머에서 외신을 본 경력만 3년. 광복이가 놓치기 아쉬운 훌륭한 외신만 엄선해 전해드릴게요. 바쁜 일상 속 짬을 내 [광복이 외신클럽]을 완독해내신 당신을 위해 매 회 귀염뽀짝한 동아일보 인턴기자 광복이의 일상도 함께 공개합니다!

※‘광복이’는 생생한 글로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매주 한 번씩 등장하는 국제부 임보미 기자의 반려견(부캐)입니다
2022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칼루시 오케스트라. 토리노=AP 뉴시스
유럽 축구에 ‘챔피언스리그’(유럽 각국 리그 최상위 32개 팀이 유럽 축구 최강 팀을 겨루는 대회)가 있다면, 유럽 음악에는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유럽 방송 연합이 주최하는 유럽지역 국가대항 가요제)가 있습니다. 특히 14일 열린 올해 유로비전 결선에서는 전쟁을 겪고 있는 가운데 출전한 우크라이나 랩·포크 밴드 ‘칼루시 오케스트라’가 우승을 차지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www.youtube.com/watch?v=UiEGVYOruLk
유로비전 2022 파이널 칼루시 오케스트라의 ‘스테파니아’ 공연.
(멜로디 중독성 매우 높음 주의)

칼루시 오케스트라는 우크라이나 민속 음악에 힙합을 접목시킨 밴드입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이날치 같은 느낌이겠죠. 우승곡 ‘스테파니아’는 그룹의 리더 올레흐 프시우크가 어머니를 위해 쓴 헌정곡인데요. ‘넌 내게서 의지를 앗아갈 수 없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거거든’ ‘길이 망가진대도 난 늘 집으로 가는 길을 찾아낼 거야’ 등의 가사는 이번 전쟁을 거치며 조국 우크라이나에 바치는 의미로 재해석 됐습니다.

리더 프시우크는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어머니에게 “자랑스럽다”는 문자가 왔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특히 올해 우크라이나의 우승의 의미는 남다르다. 지금 우크라이나의 문화는 공격을 받고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문화와 우크라이나의 음악이 살아있고, 우리만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왔다”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동아일보의 음악전문 임희윤 기자는 이들의 무대를 보고 “힙합 비트와 랩, 우크라이나 민속음악을 섞어 중독성이 강하다. 특히 수시로 끼어드는 우크라이나 전통 관악기 텔렌카 연주 장면이 압권이다. ‘너네 이런 거 본 적 있어?’라고 쿨하게 묻는 듯한 연주…. 첨단을 넘는 전통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감상평을 남겼습니다.

전쟁 통에 제대로 공연 리허설도 못한 우크라이나 팀이 우승을 했다니 신기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사실 유로비전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둬온 음악 강국입니다. 2003년 이 대회에 처음 참여한 우크라이나는 올해까지 총 3차례(2004, 2016, 2022) 우승을 따냈습니다. TOP5 안에 든 것도 여덟 번인데 우크라이나보다 좋은 성적을 낸 나라는 스웨덴(11차례), 러시아(10차례)뿐입니다.

그동안 ‘유럽의 곡창지대’로만 알려졌던 우크라이나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문화적 토양도 비옥한 나라였다는 점이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13일) ‘우크라이나 음악은 위협이 없었을 때는 늘 번창했다(When Ukrainian Music Wasn’t Under Threat, It Thrived)‘라는 기사에서 20세기 압제의 역사 속에서도 우크라이나만의 민족성을 지닌 현대음악을 구축한 작곡가들의 저력을 조명했습니다.

이 기사는 종이신문(15일자)에는 ’우크라이나 음악이 번창했던 한때(When Music From Ukraine Once Thrived)‘라는 제목으로 나갔습니다. 한국과 비슷하게 온라인 버전보다 종이신문용 제목이 조금 더 함축적이고 신경 쓴 티가 납니다.
○억압에 굴하지 않았던 우크라이나 음악가들의 저력
기사는 키이우에서 모더니즘이 만개했던 시기를 다뤘습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뒤 우크라이나는 1920년까지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잠깐의 독립을 누렸는데요. 이때부터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해 억압정책을 펴기 시작한 1930년대 전까지는 볼셰비키가 키이우의 예술을 강하게 규제하지 않았던 시기라고 합니다. 우크라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일종의 회유책이었는데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가 겪었던 문화통치기와 비슷한 분위기였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미콜라 리센코. 출처: 우크라이나라이브클래식
우크라이나 현대음악의 뿌리는 ’우크라이나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콜라 리센코(1842~1912)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리센코는 작품 활동 초기 우크라이나 민속 음악 수집 및 편곡에 집중하며 이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의 민족성을 녹여낸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미콜라 레온토비치. 출처: 우크라이나라이브클래식

이어 리센코의 제자인 미콜라 레온토비치(1877~1921)가 스승의 유산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민요와 우크라이나 민족 시인 타라스 셰우첸코(1814~1861) 등의 시, 산문을 접목시켜 보다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편곡 작품으로는 크리스마스 캐롤로 유명한 ’종들의 노래(Shchedryk)‘가 있습니다. 레온토비치는 우크라이나 전통 현악기인 반두라를 활용한 작품도 만들었는데요. 우크라이나 민족음악학자 마리아 소네비츠키는 이 같은 작업물을 “우크라이나의 음악적 주권을 세우는 중요한 실험이었다”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1930년대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전역의 반두라 연주가들을 “민족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대거 처형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에 등록됐던 반두라 연주자가 300여 명이었는데 1936년 이후에는 단 4명만 남게 될 정도였다고 해요. 레온토비치 역시 우크라이나 민족성을 고취시킨 ’죗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1921년 1월, 그는 잠자던 중 소련 비밀경찰의 총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레온토비치가 살해당한 뒤에도 키이우 예술가들은 두려움에 떨기는커녕 더욱 단결했습니다. 그가 살해당한 지 2주도 되지 않아 키이우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음악가, 비평가, 민속학자들은 그를 기리며 ’레온토비치 음악회‘를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서유럽 전역에서 유행하던 우크라이나식 모더니즘을 탐구했는데요. 작곡가 보리스 랴토신스키(1895~1968)가 이끈 이 음악회는 우크라이나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수백 개의 앙상블, 교육기관을 후원했습니다. 이 곳은 키이우의 많은 젊은 작곡가들이 미학적, 이데올로기적 실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됐습니다.

레온토비치 음학회의 예술적 실험은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비주얼아티스트, 작가, 학계, 감독들과도 활발한 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 중에는 1920~30년대 우크라이나 아방가르드 예술의 선구자였던 레스 쿠르바스(1887~1937) 감독도 있었습니다. 그는 소비에트 연방 전역에서 인기를 얻었던 감독인데요. 하지만 대중적 인기도 스탈린 이데올로기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시대 처형당한 수많은 예술가들처럼 그 역시 1933년 러시아 북부의 강제 노동 수용소에 수감됐다가 1937년 11월 총살당했습니다.

레온토비치 음악회 역시 1928년 모스크바에 기반을 둔 ’현대음악협회‘로 흡수되면서 해체되게 됩니다. 다만 우크라이나 출신 작곡가 니콜라이 로스라베츠(1881~1944)가 10년 가까이 현대음악협회 회장을 맡아 소비에트 연방 아방가르드 세대의 음악적 다양성을 키우는 데 기여했습니다.

당시 모스크바에는 현대음악협회 말고도 ’프롤레타리아음악협회‘라는 단체도 생겼는데요. 다양성을 추구한 현대음악협회와 달리 플로레타리아 음악 협회는 사회주의적 의식을 고양할 수 있는 작곡 기법을 중시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두 단체 모두 1932년 스탈린 정권이 모더니즘 문화를 엄중탄압하면서 해체됐습니다. 당시 소련 당국은 모더니즘 음악을 ’서구의 타락‘이라 비방하며 음악가들을 억압했습니다. 이후 소련에는 프롤레타리아 음악 협회의 뜻을 이은 단체인 ’소비에트 작곡가 조합‘만 남게 됩니다. 로스라베츠는 우즈베키스탄으로 추방당했고 레온토비치 음악회의 개혁적 정신을 이어온 단체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음악의 뿌리를 찾아서
NYT 디지털본 기사 일러스트
뉴욕타임스의 ’우크라이나 음악은 위협이 없었을 때는 늘 번창했다(When Ukrainian Music Wasn‘t Under Threat, It Thrived)’ 기사에 삽입된 일러스트입니다. 현대 우크라이나 음악의 기틀을 닦은 작곡가 미콜라 리센코(왼쪽)와 우크라이나의 민족성을 바탕으로 한 대중적 음악을 발전시킨 미콜라 레온토비치(오른쪽)의 얼굴이 보입니다. 이들의 작품 악보, 우크라이나 전통 악기로 탄압의 대상이 됐던 반두라를 연주하는 음유시인도 있는데요. 이 모든 요소를 우크라이나 국기 배색을 활용해 꾸민 게 인상적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예쁘다고만 느꼈는데 기사를 다 읽고 나니 핵심 메시지가 이 그림 한 장에 다 녹아있었습니다.

1991년 독립을 이뤄내기까지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우크라이나에서는 오늘날까지도 현대 우크라이나 음악까지 이어지는 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클래식음악을 알리기 위한 앱 ‘우크라이나 라이브 클래식’이 대표적입니다.

전쟁을 계기로 세계 곳곳에서 우크라이나 음악계에는 우크라이나 작곡가의 작품 연주 요청, 악보 요청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음악인들은 우크라이나 클래식음악에 대한 정보를 담아 이 앱을 만들었습니다.

앱은 지난 수 세기간 이어져온 우크라이나 고유의 음악 작품의 악보나 음원 등을 서비스하는데요. 덕분에 해외에 있는 음악가, 예술가들이 우크라이나의 음악에 대해 배울 수 있게 됐습니다. (위에 소개된 우크라이나 대표 작곡가 두 명의 일러스트도 이 사이트에서 받아왔습니다!) NYT는 이 앱이 “일종의 우크라이나 음악 역사의 디지털 저장소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기사는 우크라이나 음악 역사에서 ‘서사’가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마무리 됩니다.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왔던 “러시아의 문화는 유서가 깊다”는 통념 역시 국제사회의 정치적 헤게모니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문제의식도 함께 던지면서요.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준 기사의 마지막 부분은 원문과 함께 읽어볼까요.
NYT/ ‘우크라이나 음악은 위협이 없었을 때는 늘 번창했다(When Ukrainian Music Wasn’t Under Threat, It Thrived)‘ 원문 일부 발췌

And narratives matter, perhaps now more than ever. “The idea that ’culture is beyond politics,‘” Morozova, the music critic, said, “has long been promoted by those who put culture at the service of ideology and war crimes.” Performing music by canonical composers like Tchaikovsky or Shostakovich, she suggested, obscures the realities of Putin’s Russia. Instead, she argued, their music has become a sort of “cultural weapon” that serves to “make Russia attractive to Europeans.”

Ukraine‘s absence from stages and scholarship from Wester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is a product of these politics, Sonevytsky, the ethnomusicologist, said. “This is an excellent moment to think about why we attach the term ’greatness‘ to Russian, but not Ukrainian, culture,” she said. “There is a kind of exceptionalism that empires produce and make seem virtuous that smaller countries, depicted as the ’threatening nationalists‘ on the border, are denied. So why do we only know composers who we consider to be ’great Russian‘ composers?”

She paused, letting out a deep sigh, then added: “It’s all Russian soft power on the global stage.”

음악 비평가 모러조바는 “‘문화는 정치를 뛰어 넘는다’는 말은 문화를 이데올로기와 전쟁범죄에 예속시키려는 세력이 퍼뜨렸다. 차이코프스키나 쇼스타코비치 같은 유명 작곡가들의 음악 연주는 푸틴의 러시아라는 현실을 흐릿하게 만든다”며 “이들의 음악이 유럽에서 러시아의 매력도를 높이는 일종의 ‘문화적 무기’로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민족음악학자 소네비츠키 역시 우크라이나 음악가들의 영미권, 유럽 등 국제무대에서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는 데에도 이러한 정치적 이유가 있다며 “왜 유독 ‘대문호’, ‘대작곡가’ 같은 칭호가 러시아 예술가들에게만 붙는지에 대해서도 곱씹어볼 때”라고 말했다.

“강대국들은 인접한 약소국에서는 ‘위협적인 민족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금지했던 활동들을 자신들이 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일종의 예외주의를 만들어내곤 한다. 우리가 ‘대작곡가’로 알고 있는 게 다 러시아인인 이유는 다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지닌 소프트파워 때문이다.”
임광복(푸들·추정나이 12세·중성). 자택에서 광복이외신클럽 집필에 여념이 없습니다. 재택근무 중에도 집중력에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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