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을 별” 故 강수연, 영화계 눈물의 배웅 속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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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년 5월 11일 11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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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월드 스타 고(故) 강수연 씨가 영화계 선후배의 배웅 속에 영면에 들었다.

11일 오전 10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진 고인의 영결식에는 유지태가 사회를 맡았고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임권택 감독, 연상호 감독, 그리고 설경구와 문소리가 추도사를 맡았다.

김동호 장례위원장은 “오늘 우리 영화인들은 믿기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황당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을 떠나보내고자 한다”고 먹먹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우리가 자주 다니던 만둣집에서 만난 지 채 한 달도 안 되었는데, 건강해 보였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며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지 33년이 지났다. 그동안 아버지와 딸처럼, 오빠와 동생처럼 지냈는데 나보다 먼저 떠날 수 있나”고 한탄했다.

이어 “당신은 참 힘들게 살아왔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늘 명예롭게 잘 견디며 살아왔다”면서도 “당신은 억세고 지혜롭고 강한 가장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부모님과 큰오빠를 지극정성으로 모셔왔고 잘 이끌어왔다”고 말했다.

김 장례위원장은 “범접할 수 없는 미모와 위용을 가지며 남자 못지않은 강한 리더십과 포용력으로 후배들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이끌었다”며 “오랜 침묵 끝에 새로운 영화로, 타고난 연기로, 새롭게 도약하는 강수연의 모습을 믿었다. 그 영화가 유작이 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응급실에서, 중환자실에서 비록 인공호흡기를 장착하고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당신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며 “강수연 씨 부디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영결식의 사회를 맡은 유지태는 “아직 실감이 안 난다. 그저 영화 속 장면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권택 감독은 “수연아, 친구처럼 동생처럼 네가 곁에 있어 늘 든든했는데 뭐가 그리 바빠 서둘러 떠났니. 편히 쉬어라”고 애통한 마음을 전했다.

후배 설경구는 “오랜만에 통화하며 할 이야기가 많아 빨리 보자고 했는데, 곧 있으면 봐야 할 날이 오는데 현실은 선배의 추도사를 하고 있으니 너무 서럽고 비통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너무 비현실적이고 영화 속 한 장면이라도 할지라도 찍기 싫은 한 장면”이라고 말했다.

영화 ‘송어’(1999)를 통해 강수연과 인연을 맺었다는 설경구는 “영화의 경험이 없던 나를 여기까지 세세히 이끌어줬다”며 “막내부터 버스 기사님까지 주기적으로 모든 스태프를 챙겨주던 선배가 기억난다. 선배의 조수였던 것이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너무 안타깝다. 그러나 선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별이 돼 빛을 줄 것이다”라며 “너무 보고 싶다. 당신의 영원한 조수 설경구”라며 추도사를 전했다.

문소리 역시 “언니 잘가시길 바란다. 언니의 한국 영화를 향한 마음 잊지 않을 것이다”며 “언니의 가오도 목소리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다음에 우리 만나면 같이 영화하자”고 눈물을 쏟았다.

고인과 유작을 함께한 연상호 감독은 “강수연 선배 그 자체가 한국 영화다”라며 “무거운 멍에를 강수연 선배는 무거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정이’를 준비할 때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두려움도 컸다”며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배우가 강수연이었다. 용기를 내 강수연 선배에게 역할을 제안했고 ‘한 번 해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든든한 백이 생긴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이 영결식이 끝나고 강수연 선배와 영원한 작별을 한 후 다시 편집실로 돌아가 강수연 선배의 얼굴과 마주할 것이다”며 “배우 강수연의 연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선배의 마지막 영화를 함께하며 선배의 마지막 영화를 동행하게 됐다. 선배의 마지막 백이 되어주겠다”고 울먹였다.

고인은 5일 오전 자택에서 두통을 호소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의식을 찾지 못하고 7일 사망했다.

고인은 초등학교 때 어린이 드라마 ‘번개돌이’, ‘똘똘이의 모험’에 출연하며 아역스타로 떠올랐다. ‘핏줄’(1976)으로 영화에 데뷔했고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에 옥녀 역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한국배우 최초로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1989년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 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감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등 1980, 90년대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드라마 ‘여인천하’(2001년)의 정난정 역, 2007년 드라마 ‘문희’의 문희 역으로 열연했다. 가장 최근 출연한 영화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정이’를 제외하면 2013년 단편영화 ‘주리’다. 마지막 장편영화는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인 ‘달빛 길어올리기’(2010년)였다.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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