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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내게 글쓰기는 기적…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입력 2021-11-29 03:00업데이트 2021-11-2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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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째 파킨슨병 투병 김혜남씨, 열번째 신간 ‘보이지 않는…’ 출간
30분 글쓰고 온종일 누워있었지만 온몸 뒤틀려도 세상 버텨가는 방법
국내 곳곳 여행… 래프팅 도전 계획
“이번이 마지막 책이 될 것 같습니다.”

27일 동아일보와 만난 김혜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62·사진)는 휠체어에 앉아 조곤조곤 말했다. 다음 달 8일 펴내는 열 번째 신간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포르체)가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될 거라는 얘기였다. 그는 “2001년 파킨슨병 진단 후 온몸이 점차 굳어가면서도 끊임없이 글을 썼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며 “모든 집필활동을 그만두고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에세이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갤리온·2008년)를 비롯해 총 9권의 책을 130만 부 이상 판매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는 뇌 신경세포 손상으로 손과 팔에 경련이 일어나고 걷기가 어려워지는 불치병인 파킨슨병과 21년째 싸우고 있다. “파킨슨병에 걸리면 혼자 생활하는 게 불가능하고 항상 간병인이 곁에 있어야 해요. 혼자 움직이려다가 넘어져 팔이 부러지고 눈이 찢어지기도 했어요. 얼마나 아프냐고요? 온몸이 매일 뒤틀리는 기분입니다. 혼자서 끙끙 앓다가 잠들고, 다시 깨고, 또 잠드는 삶이 이어집니다.”

그는 생사의 문턱에서 힘겹게 버텼다. 처음 진단 당시 의사는 길어야 15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더 긴 세월 동안 집필을 이어왔다. 그는 “손가락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어 매일 ‘독수리 타법’으로 간신히 글을 썼다”며 “30분을 쓰면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이토록 힘겹게 글쓰기를 고집한 건 “그것만이 세상을 버텨가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방과 얘기를 하기도 어려운데 책을 쓴 건 내게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신간 에세이에서 심리학을 통해 영화를 분석했다. 30, 40대 정신과 전문의들이 모인 정신분석학회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자신의 글에 최근 쓴 글들을 덧붙였다. 그는 영화 ‘기생충’(2019년)을 분석한 ‘아들아, 가장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란다’에서 투병생활을 언급했다. 부잣집에 기생해 살아가는 기택(송강호)의 가족을 보면서 간병인 없이 생활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 것. 그는 “오랜 간호에 지친 가족들의 짜증 섞인 반응을 볼 때면 내가 가족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존재가 된 게 아닌지 생각했다”며 “인간으로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존엄성이 있어야 한다는 영화 메시지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 빨간 바지 정장을 입고 나왔다. ‘옷이 참 잘 어울린다’는 말을 건네자 그는 씩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내게 여전히 열정이 남아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빨간 옷을 골랐어요. 글쓰기는 그만두지만 삶에 대한 도전은 계속하려고요. 앞으로는 국내 곳곳을 여행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했는데 래프팅이나 스킨스쿠버에도 도전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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