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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아이 학교 보내자마자 술 꺼내… 이대론 안되겠더라고요”

입력 2021-11-17 03:00업데이트 2021-11-1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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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 저자 박미소씨
기자 접고 전업주부 된 뒤 ‘키친 드링커’로
“알코올 중독도 질병… 숨지 말고 치료를”
박미소 씨는 “한국은 여가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술로 빠르게 스트레스를 푸는 문화가 자리 잡힌 것 같다. 유난히 술에 관대한 분위기에 대해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화창한 올 5월의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 딸을 키우는 박미소 씨(38)는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방에서 술과 술잔을 꺼냈다. 시계는 오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이 ‘지각 있는 애주가’가 아닌 알코올중독자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박 씨는 그 길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시작했다. 퇴직 이후 전업주부의 삶을 산 지 꼭 5년 만이었다. 최근 에세이 ‘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반비)에 자신의 알코올중독 극복기를 담은 그를 15일 만났다.

“혼자 주방에서 홀짝홀짝 술을 마시는 주부를 ‘키친 드링커’라고 합니다. 육아와 가사노동에서 별다른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자 저도 어느새 키친 드링커의 길로 빠지게 됐죠.”

박 씨는 10년간 잡지와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 2016년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전업주부가 됐다. 직업 특성상 자주 술을 접했던 그는 일을 그만둔 뒤에도 스트레스를 술로 풀게 됐다. “자신의 알코올 의존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시간대로 가늠할 수 있어요. 저도 술을 야식에 곁들이는 수준에서 저녁 반주, 낮술, 급기야 아침에 술을 마시게 됐거든요.”

그는 한때 사회생활을 하다 전업주부가 된 경력 단절 여성들은 알코올중독의 유혹에 더욱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소위 ‘능력 있는 여성’은 으레 남성 직원들을 능가하는 주당으로 그려지기 마련이어서 술은 잘 마시고 보는 게 미덕이라는 학습을 하게 되기 때문. 그는 “나 역시도 술자리에서 여성이 술을 거절하면 ‘여자라 안 마시고 뺀다’는 비난이 날아오는 환경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 알코올중독자’에 대한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은 키친 드링커들로 하여금 술을 숨어서 마시게 한다. 그리고 이는 중독을 인지하기까지 시간을 지체시킨다. 박 씨는 알코올중독은 우울증 증세의 하나인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우울증이 부끄러운 병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되는 질병인 것처럼 알코올중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주일에 술을 몇 번 마시냐’는 건강 검진 문진표의 질문이 양심에 찔리시나요? 그때가 바로 자신의 마음을 돌보기 시작해야 할 시기입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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