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치도 흉기가 된다[임용한의 전쟁사]〈184〉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1-10-26 03:00수정 2021-10-26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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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앞바다에 아이기나라는 섬이 있다. 산에 오르면 아이기나섬이 빤히 보인다. 피레우스 항구에서 여객선을 타면 30∼40분 정도면 도착한다. 우리나라 관광객들에게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테네 사람들은 주말 피크닉 장소나 피서지로 좋아한다고 한다.

지금은 평화롭지만 아테네 성장기에 두 도시는 해상무역 패권을 두고 국운을 건 대결을 벌였다. 해상무역으로 먼저 앞서 나간 곳은 아이기나였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의하면 전쟁이 벌어진 것은 신전에 있는 신상 때문이었다. 그 신상은 아테네의 올리브 나무로 만들었는데, 아테네인들이 자신들 것이라고 무단으로 가져가려다가 전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에게해에서는 오래전부터 무역선과 해적선의 구분이 애매했다. 아이기나의 삼단노선도 종종 아테네 근방 마을을 습격했던 것 같다. 해적질과 보복으로 비슷한 사건이 수도 없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아테네 병력은 전멸하고 단 한 사람만 살아 돌아갔다. 그러자 희생자의 부인들이 그를 에워쌌다. 그가 혼자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격분한 아내들은 옷을 여미는 브로치로 그 남자를 찔렀다. 아마 청동제였을 이때 브로치는 지금보다 크고 흉기에 가까웠을 거다. 그는 브로치에 찔려 죽었다. 부인들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이런 보복이 정당한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남성 우위 사회로 잘 알려진 아테네 남성들도 차마 이 여인들을 처벌하지 못했다. 이미 죽은 사람은 포기하고 새로운 희생자를 방지하기로 했다. 그들은 그리스 전통 의상을 단숨에 버리고, 브로치 없이 입을 수 있는 소아시아식 의상을 도입했다.

이 어이없는 일화가 주는 교훈은 뭘까? 전통을 쉽게 바꿀 수 없고 바꿔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목숨이 걸리면? 전통 불변을 주장하는 사람은 브로치도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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