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를 생각한다’ 임명묵이 골라낸 귀경길 ‘웹툰 5選’

임명묵 작가 입력 2021-09-21 12:05수정 2021-09-2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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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묵의 웹툰] 만화는 폰으로 봐야 제맛! 웹툰이 이렇게까지 성공하리라고는 업계 종사자도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웹툰은 청년층이 주도하는 혁신적 문화 콘텐츠이자, 소설과 드라마 등 인접 장르를 매개하는 허브로 자리 잡았다. 수출에 성공하며 세계화라는 과업에서도 성취를 거두고 있다. 웹툰의 핵심 성공 요인은 ‘한국인의 욕망’을 연료로 사용한 점이 아닐까. 케이팝(K-pop)이나 웹소설, 드라마의 성공과 통하는 점이기도 하다. 콘텐츠 공급자가 보라고 ‘권하는’ 작품이 아닌, 수요자인 대중이 ‘갈망하는’ 작품을 만들었기에 오늘날의 신화를 쓸 수 있었다. 즐겁게 본 작품을 위주로 웹툰과 한국인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인생존망’
글·박태준/그림·전선욱, 네이버웹툰
인생존망.
학창 시절 악명 높은 일진이던 장안철은 격투기 선수를 지내며 승승장구하다 과거 별생각 없이 괴롭혔던 동창생 김진우의 몸에 빙의된다. 하필 시기도 김진우가 자신에게 한창 괴롭힘을 당하던 고교 시절이다. 과거 장안철은 ‘네 가지 사건’을 통해 김진우의 일생을 망가뜨렸다. 자신의 몸으로 되돌아오려면 기억나지 않는 네 가지 ‘인생존망’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한국 대중 콘텐츠에 담긴 핵심적 욕망인 ‘위계 거스르기’가 능수능란하게 나타난다. 전직 격투기 선수의 영혼이 모범생 몸에 들어가면서 학교 위계질서를 전복하는 내용은 위계 인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특히 ‘시원한’ 감각을 준다. 한국 학교를 리얼하게 묘사한 작화도 작품에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템빨’
글·이동욱/그림·Team Argo, 카카오페이지
템빨.
동명의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템빨’은 웹소설과 웹툰의 활발한 교류를 대표한다. 템빨 역시 기본적으로 위계질서가 깨질 때 오는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신영우는 말초적 탐욕만 추구하는 단순한 인물로, 독자조차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는 가상현실게임 ‘SATISFY’에 몰입하며 현실에서 도피하지만 이곳에서조차 무시당하기 일쑤다. 앙심과 좌절감만 키우던 그는 우연히 전설 속 대장장이의 후예가 되면서 정반대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영웅과는 거리가 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찌질한’ 주인공이 성장해가면서 게임과 세계의 위계를 적극적으로 뒤집어버리는 감각적 전개가 일품이다.

‘하렘생존기’
오리발, 카카오웹툰
하렘생존기.
한국 웹소설이나 웹툰의 주요 특징은 ‘적대적 세계에서 펼치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작품 속 세계는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압박감을 주는 공간이지, 따뜻하게 품어주는 곳이 아니다. 현실을 벗어나고자 다른 공간으로 도피하더라도, 그곳 역시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임이 밝혀질 정도다. 17세기 오스만제국의 화려한 수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 ‘하렘생존기’도 마찬가지다. 궁정 노예로 잡혀온 주인공이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궁정 하렘에서 살아남으려면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 우정을 나눈 친구조차 믿기 어렵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긴장감 높은 연출 덕분에 독자들은 17세기 이스탄불이라는 생소한 시공간적 배경에도 스토리에 빠져든다. ‘적대적 세계에서 생존’은 시공간을 초월해 한국인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세계 인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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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세계’
모랑지, 네이버웹툰
소녀의 세계.
투쟁을 통한 생존이나 위계질서 전복만큼 인상적인 주제가 ‘인간관계’다. 한국 콘텐츠에는 등장인물 사이에 관계 그물망이 복잡하게 펼쳐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들은 학교·회사·가정에서 얽히고설킨 관계망과 위계질서를 판별할 것을 요구받는다. 사소한 실수는 우호관계와 적대관계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오해가 쌓이면서 갈등이 폭발하고, 그러다 오해를 풀어 갈등이 해소되기도 한다. 때로는 여론을 동원해 적을 제압하며 카타르시스도 준다. 여고생들의 우정을 다룬 ‘소녀의 세계’는 이런 점에서 감동적인 우정 이야기이면서도 관계를 다루는 치열한 정치 서사다. 주인공이 복잡하게 얽힌 세 친구와 관계를 풀어나가는 1부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적대적 세계와 정치적 관계에 몰입하는 우리는 반대로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진짜 우정’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과녁’
고태호, 네이버웹툰

당신의 과녁.
최근 웹툰에 대해 “말초적, 상업 지향적 작품만 범람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비판이 정당한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도 작가 고유의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누명을 쓰고 17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주인공의 출소 후 이야기를 담은 ‘당신의 과녁’도 그런 작품이다. 작가는 인간의 고통과 선악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파고든다. 등장인물들이 주인공의 고통에 대해 보이는 행동과 표정, 거기서 나타나는 심리묘사는 작가의 연출력에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주인공이 복수했으면 하는 욕망, 과거를 잊고 남은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 사이에서 독자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어떤 전개가 더 괜찮은 걸까’라는 의문에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가치가 돋보인다.

임명묵 작가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06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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