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사회 참여 이끈 월주스님 입적 “내 모든 생애가 임종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2일 16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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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행 현장과 염화실(拈華室·조실이나 방장스님이 거처하는 방)은 사회와 지구촌의 구석진 곳이다. 나는 늘 그곳에 서 있을 것이다.”

22일 입적한 월주 스님은 2012년 동아일보에 53회에 걸쳐 연재한 회고록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를 끝내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언급했다.

세상과 함께 하는 불교를 꿈꿔온 월주 스님은 한국 현대 불교사의 산증인이었다. 1954년 속리산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1961년 26세 때 금산사 주지가 됐다. 조계종 본사(本寺) 주지로는 최연소였고, 지금도 바뀌지 않은 기록이다.

1950, 60년대 비구와 대처승의 대립으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월주 스님은 불교사 격랑의 한복판에 줄곧 서 있었다. 정치권력에 의한 불교계 최대 수난인 1980년 10·27 법난(法難) 때는 종단 행정의 책임자인 제17대 총무원장 직을 맡고 있었다. 그날 오전 당시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됐고, 가사와 장삼 대신 푸른 수인복을 입고 23일간 조사를 받은 뒤 원장 직에서 물러났다. 신군부의 이른바 불교정화 작전명은 ‘45계획’이었다. 조계사 주소인 서울 종로구 견지동 45번지를 딴 것이다. 이후 월주 스님은 미국 등지에 머무르며 한국 불교의 나아갈 길을 고민한 끝에 깨달음의 사회화를 불교의 시대적 책무로 설정했다. 1994년 서의현 총무원장이 3선 연임 강행 끝에 종단 안팎의 반발로 사퇴한 뒤 그해 치러진 선거를 통해 월주 스님은 제28대 총무원장으로 복귀했다.

총무원장으로 있던 1995년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선언했다. 이후 종단 차원에서 노동과 인권, 복지, 환경, 통일 사업에 나섰으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을 설립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가톨릭의 김수환 추기경, 개신교의 강원룡 목사와 함께 금 모으기와 실업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종교계의 트로이카’로 불렸다. 이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 자체가 종교간 화합이자 자신이 속한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 넘는 사회적 실천의 상징이 됐다. 160㎝가 조금 넘는 키에 둥그런 테 안경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스님은 한때 80여 개가 넘는 직함을 가졌다.

“이제는 국내를 벗어나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내게는 ‘제2의 출가’였다. ‘나’의 좁은 우물을 벗어나 모든 이가 함께 나눌 수 있는 큰 우물을 만들어야 한다.”

2004년 국제개발구호 비정부기구(NGO)인 지구촌공생회를 창립하던 시기에 대한 회고다. 이 단체는 캄보디아를 비롯한 5개국에 2000개가 넘는 우물을 팠고, 네팔과 라오스 등 8개국에 60개가 넘는 학교를 준공했다.

스님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또 다른 그릇은 ‘사람’이다. 은사인 금오 스님을 비롯해 불교계의 큰 봉우리였던 탄허, 청담, 성철 스님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서옹 서암 월하 혜암 스님 등 역대 종정 스님과 고산, 법장, 정대, 지관 스님 등 역대 총무원장들과는 불교개혁 과정에서 같은 배를 타기도 했고, 때로 불가피하게 갈등을 빚기도 했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유명해 메모 없이도 시점까지 언급하며 특정 사건과 인물에 대해 세세하게 이야기할 정도였다. 종교계 뿐 아니라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최고 권력자를 비롯해 소설가 조정래, 국악인 안숙선 씨 등과도 인연을 맺었다. 도영(전 조계종 포교원장), 도법(실상사 회주), 원행(조계종 총무원장), 성우(동국대 이사장) 일원(금산사 주지) 스님이 월주 스님의 제자들이다.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 토각귀모(兎角龜毛). 불교에서 이른바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남들은 깨달음을 찾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지만 자신은 세상에서 토끼의 뿔을 찾아다녔다는 월주 스님은 이런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천지본태공(天地本太空) 일체역여래(一切亦如來) 유아전생애(唯我全生涯) 즉시임종게(卽是臨終偈) 할(喝!)·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이구나.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 할!”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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