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째 행방불명…‘5월에 사라진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2일 19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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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태 전남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12일 연구실에서 24년 동안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암매장 추정장소 발굴과 행방불명자 유전자 확인작업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5·18 유가족들의 한과 아픔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형주기자 peneye09@donga.com
박종태 전남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12일 연구실에서 24년 동안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암매장 추정장소 발굴과 행방불명자 유전자 확인작업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 교수는 시간이 갈수록 5·18 유가족들의 한과 아픔이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형주기자 peneye09@donga.com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1년이 흘렸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기간 동안에 숨진 사람은 165명이다. 5·18 당시 사라져 행방을 알 수 없다고 가족들이 신고한 사람은 448명. 하지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행방불명자는 84명뿐이다.

광주 북구 망월동 묘역에는 5·18 당시 희생자 가운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1명이 묻혔다. 2001년 국립 5·18민주묘지가 조성돼 이들의 유골이 이장하며 유전자 검사를 통해 6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공식 인정 행방불명자 가운데 78명은 지금껏 시신이 없거나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5·18 때 사라진 사람들을 찾기 위해 가족들은 41년째 흔적을 쫒고 있다. 그들의 한과 아픔,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한 법의학자 등을 3회에 걸쳐 전한다.

박종태 전남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61)에게 ‘광주 5·18’은 꼭 맞춰야 할 ‘역사 퍼즐’이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집단발포 명령자와 암매장에 대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박 교수가 24년째 5·18 희생자 암매장 추정 장소를 발굴하고 행방불명자 신원 확인작업을 돕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박 교수는 1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5·18 희생자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5월 단체가 요청하면 언제든 현장으로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5·18과 인연은.

“1997년 5월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가 완공될 때부터다. 인근 망월동 묘역에 안장됐던 당시 희생자들의 유골을 이장하면서 유족들이 40여 명의 사망 원인을 밝혀달라고 요청해 법의학 감정을 했다. 유골을 보고 사인을 확인했던 인연이 24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5·18 유가족의 한과 아픔을 느끼고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몇 군데를 발굴했나.

“5·18 희생자 암매장 장소로 추정되는 광주 광산구 삼도·소촌동, 서구 상록회관 맨홀은 물론 광주 북구 문예회관 주변, 효령동, 서구 화정동 광주국군통합병원 인근 등 10곳에서 발굴 작업을 했다. 가장 최근에는 5년 전 충남 천안과 아산의 공동묘지를 파보았다. 하지만 5·18 암매장으로 확인된 곳은 없었다.”

―자원봉자로 발굴 작업을 한다고 들었다.

“정부나 광주시에서 5·18 암매장 장소 발굴을 의뢰할 때는 예산이 집행된다. 하지만 5·18 단체 회원들이 요청하면 대가없이 발굴을 돕는다. 굳이 자원봉사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한다. 광주 시민이자 학자로서 당연해 해야 야 할 일을 한 것이다.”

―행방불명자 신원을 확인하려면 유전자 확보가 중요할 텐데….

“2000년부터 5·18 행방불명자 가족 유전자(혈액)을 확보하는 일을 시작해 현재 366명의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20년 전보다 분자생물학이 많이 발전해 기술차가 현저하게 난다. 기술이 발전한 만큼 5·18 행방불명자 가족들이 유전자 확보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한다.”

―유전자 검사기법이 어떻게 달라졌나.

“2000년 당시에는 유전자를 비교분석하는 에스티아르(SRT) 기법이 쓰였다. 최근에는 염기 1개로 부모와 형제뿐 아니라 방계(삼촌, 조카 등)까지도 확인할 수 에스엔피(SNP) 기법이 활용되고 있다. 각종 자료가 부족한 상황을 보완하기 위해 SNP를 이용하지만 SRT로 최종 검증을 거쳐야 한다.”

―발굴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희생자가 있나.

“2001년 망월동 묘역에 있던 11명의 유골을 5·18민주묘지로 이장하면서 6명의 신원을 확인했지만 나머지 5명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 중 어린 남자아이가 있었다. 유골이 비닐 양곡부대에 싸여 있었는데 아주 작았다. 5·18 당시 검시조서에는 시신이 많이 부패돼 있었고 체격은 4살 정도라고 적혀 있었다. 희생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데 아직까지 가족들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무명열사 3명의 유전자를 다시 채취한 이유는.

“5·18민주묘지에 있는 무명열사 묘는 5기다. 법의학교실에서 이들의 뼛조각을 보관하고 있는데 그동안 유전자 분석을 할 때마다 3명이 유골이 조금씩 닳아져 지난해 11월 다리뼈 5㎝ 정도에서 유전자를 추가로 확보했다. 40년 넘게 쓸쓸히 잠들어있던 5·18민주화운동 무명열사의 가족을 찾으려는 시도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학자로서 가장 큰 보람은.

“1993년부터 전남대 의대에서 병리학, 법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전공은 유전자 분석, 심혈관 연구. 부검이다. 전국에 법의학자 60명이 있는데 6명이 제자다. 법의학자 10%를 가르친 셈이다. 의술을 익힌 제자들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해주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자 보람이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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