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조연 아닌 주연으로… “자막 보는 맛에 구독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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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문법-형식 파괴 자막 인기
의성어 활용부터 속마음 전달 등 등장인물 발언 전달 보조 수단 넣어
재미-의미 더하는 콘텐츠로 성장, 제작진 “자막에서 승부 갈려”

웹 예능 ‘해장님’에 출연한 개그맨 이창호가 얼굴을 물로 씻는 장면에서 “푸르frffrfffrr”라는 자막이 달려 있다. 사진 출처 유튜브 채널 ‘M드로메다 스튜디오’
웹 예능 ‘해장님’에 출연한 개그맨 이창호가 얼굴을 물로 씻는 장면에서 “푸르frffrfffrr”라는 자막이 달려 있다. 사진 출처 유튜브 채널 ‘M드로메다 스튜디오’
“이 채널은 자막 보려고 구독합니다.”

유튜브 ‘디스커버리 서바이벌’은 이른바 ‘자막 맛집’으로 유명한 채널이다. 채널 특성상 ‘인간과 자연의 대결’, ‘고독한 생존가’ 등 외국 자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주로 편집해 방송한다. 소수 마니아층이 선호하는 ‘건조한’ 프로그램이 많지만, 채널은 자막의 날개를 달고 구독자가 12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해외 다큐멘터리에서 자막은 출연자의 발언을 전달하는 수단이었지만 이 채널에선 새로운 맛을 입힌다.

영국 출신 탐험가 베어 그릴스가 사냥에 실패해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형, 오늘 분량 부족하다”는 편집자의 속마음을 자막으로 넣는다. 그가 사냥한 물고기를 먹기 전 말없이 웃는 장면에는 하단에 “헿♥”라는 자막을 삽입해 보는 재미와 몰입도를 높인다. 시청자들은 “위험한 상황에서도 자막은 늘 유쾌하다”, “편집자 자막이 프로그램 살렸다”는 반응이다.

자막이 진화하며 프로그램에 재미와 의미를 더하는 독자적 콘텐츠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유튜브 플랫폼은 기존 방송 매체에 비해 심의가 적어 편집자의 재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편이다. 출연자의 숨소리, 먹는 소리부터 실제 편집자의 속마음까지 프로그램과 관련한 모든 게 자막이 될 수 있다.

‘네고왕’에 출연한 방송인 장영란이 떡볶이를 먹는 장면에 달린 “호롭 짭 쭈압 쫩” 자막. 사진 출처 유튜브 채널 ‘달라스튜디오’
‘네고왕’에 출연한 방송인 장영란이 떡볶이를 먹는 장면에 달린 “호롭 짭 쭈압 쫩” 자막. 사진 출처 유튜브 채널 ‘달라스튜디오’
최근 인기를 끄는 유튜브 채널은 자막의 역할이 크다. 특히 의성어 활용이 눈에 띈다. 유튜브 채널 ‘네고왕’에서는 장영란이 떡볶이를 먹는 장면에서 “호롭 짭 쭈압 Z”이란 자막을 쓰거나 “먹어봐↘요”처럼 말의 억양까지도 구현했다. 개그맨 이창호, 이은지가 출연한 웹예능 ‘해장님’에서는 세수하는 장면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푸르frfrrrrfr”라고 표현했다. 웃음은 “으Y하하”라고 적고 술에 취한 연기를 하면서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출연자의 말은 “한 꿔 이ㅏㅏㄹ”라는 식으로 쓴다.

출연자가 한 발언과 전혀 반대의 의미의 자막을 사용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유튜브 채널 ‘하승진 HASEUNGJIN’을 운영 중인 전 농구선수 하승진은 한국 프로농구팀의 회식 문화를 설명하는 콘텐츠를 촬영했다. 그는 “우승한 뒤 갖는 회식 자리는 위계질서가 전혀 없는 날이다. 심지어 감독님한테 형이라고 부르는 애들도 있다”고 한 뒤 “나는 물론 안 그랬지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화면 하단엔 “내가 그랬어”로 자막이 나갔다. 시청자들은 “속마음을 읽는 자막”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영국 탐험가 베어 그릴스가 생선을 먹기 전 흐뭇해하는 속마음이 “헿♥”이라는 자막으로 표현됐다. 사진 출처 유튜브 채널 ‘디스커버리 서바이벌’
영국 탐험가 베어 그릴스가 생선을 먹기 전 흐뭇해하는 속마음이 “헿♥”이라는 자막으로 표현됐다. 사진 출처 유튜브 채널 ‘디스커버리 서바이벌’
형식, 문법에도 제약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과거 출연자의 얼굴 모양을 활용하는 자막이 인기를 끌다 최근에는 신체 여러 부위도 활용된다. 출연자의 웃음소리를 형상화한 글자가 화면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는 효과도 구현한다. ‘워크맨’은 숫자, 기호, 이미지도 자막으로 활용해 인기가 높은 채널이다.

유튜브는 물론 방송사 제작진도 자막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한 지상파 예능 PD는 “유튜브 콘텐츠는 자막에서 승부가 난다고 할 정도로 재기 넘치는 자막 편집이 돋보인다”며 “자막이 화제가 되는 콘텐츠를 공유하며 논의하고 시청자들의 댓글도 면밀히 살펴보며 참신하고 재미있는 자막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콘텐츠#자막#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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