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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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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문’ 완결판 낸 최원 편집자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만화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에 등장한 세일러 전사들은 악당을 물리칠 때마다 이 명대사를 외친다. 일본에서 1991년 12월부터 연재된 이 작품은 전 세계 누적 판매 3000만 부를 기록한 히트작이다. 애니메이션도 40개 국가에 방영됐다. 한국에서도 1997, 1998년에 걸쳐 KBS에서 애니메이션이 방영돼 흥행했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로 시작하는 애니메이션 삽입곡을 흥얼거려 봤다면 한 번쯤은 세일러 전사들을 봤다는 이야기다.

총 10권짜리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세미콜론) 완전판을 15일 펴낸 최원 편집자(40·사진)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21일 만났다. 그는 “세일러 문은 이제 명작을 넘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라고 했다. 짧은 제복 치마를 입은 소녀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을 현재 시선에서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첫 연재 당시엔 악당에게 납치된 여성을 남성 주인공들이 구하는 기존 만화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작품에 동성 커플이 등장하며 젠더 중립성도 반영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만화에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는 마법 소녀들이 등장한 흐름도 세일러 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세일러 문의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1990년대 한국에 출판된 초판은 중고 시장에서 희귀품으로 거래된다. 세트는 기존 가격인 20여만 원보다 많게는 3배에 이르는 60여만 원에 팔리기도 한다. 완전판도 출간된 뒤 일주일 만에 3000세트가 팔렸다. 권수로 치면 3만 권이다. 어린 시절 세일러 문을 보고 자란 30, 40대 팬들이 “추억을 다시 되살리고 싶다”, “어린 아이와 함께 보고 싶다”며 책을 사고 있는 것이다. 최 편집자는 “추억과 꿈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 행복하다는 독자들의 반응 덕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세미콜론은 완전판을 한국에 들여오기 위해 일본 출판사와 2012년부터 협의를 했다. 오랜 협의 끝에 2019년부터 한국 완전판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 완전판에선 과거 애니메이션에서 영어로 불렀던 캐릭터들의 이름을 모두 일본어로 바꿨다. 일본 완전판과 차별화하는 ‘현지화’에도 공을 들였다. 일본 완전판은 모두 세로쓰기로 돼 있지만 한국 완전판은 가로쓰기를 택한 것. 가로쓰기에 맞게 달 모양이 그려진 한국 제목 역시 새롭게 디자인했다.

번역할 때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식이 달라진 부분을 감안했다. 일본 완전판에선 주인공이 복도에서 도시락을 먹자 소꿉친구가 “여자가 도시락 까먹기라니”라고 놀리는 장면이 나온다. 한국 완전판은 “복도에서 도시락 까먹기라니”라고 번역했다. 최 편집자는 “음식을 밖에서 먹는 행위를 지적하는 발언을 성별에 한정하면 성차별이 될 수 있다고 번역자가 판단해 다르게 번역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성인지 감수성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지 번역자와 편집자들이 회의를 거듭하며 수정했다. 최 편집자는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과 함께 볼 때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세일러문#편집자#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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