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리그 “유일하게 셧다운 없는, 한국 공연계 부러움의 대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일 14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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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이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죠. 오랜 기간 브로드웨이가 문을 닫은 건 사상 처음일 겁니다.” (최윤하 PD)

토니상 주최 기관이자 공연제작자·극장주 협회인 ‘브로드웨이 리그(The Broadway League·BL)’의 국제위원회원들은 11월 10일(현지시간) ‘코로나19 현황과 대응 방안’을 주제로 열린 화상회의를 열었다. 3월부터 모든 공연장 간판을 내린 뒤 최소 내년 5월30일까지 문을 닫는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한 긴급회의였다. 코로나19가 BL 회의 안건이 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국내 유일의 BL 회원사인 CJ ENM의 뉴욕 주재원으로 회의에 참가한 최윤하 PD는 “공연계는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정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고 전했다.

브로드웨이의 경우 경제대공황 중에도 극장 40%는 문을 닫지 않았다. 2001년 9.11 테러 때도 이틀 간 문을 닫았다가 삼일 째부터 문을 열었다. 테러에 굴하지 않고 ‘공연은 계속된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최 PD는 “지금 세계 공연계의 심리·경제적 충격은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샬럿 세인트 마틴 BL회장도 앞서 “9만 7000여 명의 생계노동자와 연간 148억 달러의 경제파급력을 가진 브로드웨이가 위기를 딛고 최대한 빨리 공연을 재개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BL 회의에서 ‘셧다운’ 없이 유일하게 공연을 지속하는 한국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롤모델이었다. 현지 인기작 위주로 진행하던 회의 판도가 달라진 것. 최 PD는 “늘 새로움을 찾는 브로드웨이는 방탄소년단, 영화 ‘기생충’의 활약에 이어 애틀랜타서 열린 국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한국 콘텐츠의 입소문이 퍼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방역에 선방하며 공연을 지속하는 비결이 활발히 논의됐다. 해외 참가자들은 IT 기술, 마스크 착용, 정부의 빠른 초기 대응 등을 요인으로 들며 한국의 모범사례를 이미 분석해놓은 상태였다. 최 PD는 “패널들은 한국에서라도 이어지는 공연을 지켜보며 대리만족하고 있다. 나는 위기에 똘똘 뭉치는 스태프들의 협동심도 ‘선방 비결’로 꼽았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해외 공연계는 여전히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은 극장 셧다운 이후 5000명 미만 공연장에서 좌석 거리두기 해제를 실험 중이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예술활동 소비를 장려하는 정부 의도가 반영됐다. 팬데믹 피해가 큰 멕시코 및 중남미의 경우 상황은 더 암담하다. 멕시코 최대 공연 제작사 오세사(Ocesa)의 줄리에타 곤잘레스 대표이사는 “뮤지컬 ‘알라딘’은 1년 연기됐으며 직원의 45%는 무급 휴직 상태다. 팬데믹 확산세를 잡기 어렵다. 정부보다 개별 제작사나 개인의 방역 노력에 의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유럽 최대 공연 제작사인 스테이지 엔터테인먼트는 국가별 대응 정책을 소개했다. 팬데믹을 비교적 선방한 독일은 작품 내용에 ‘코로나 프로토콜’을 반영할 예정이다. 배우 간 키스 장면과 깨무는 장면이 금지된다. 뱀파이어 소재의 ‘Dance of Vampire’를 준비하는 제작진은 장면 수정을 고민하고 있다. 무대 뒤에서도 제작 인원을 최소화하고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코로나 버전’을 준비한다.

철저한 방역 및 봉쇄정책을 펼친 호주는 좌석 거리두기 없이 내년 공연을 열 예정이다. 뮤지컬 ‘겨울왕국’ 오디션이 진행 중이며 ‘물랑루즈’ ‘해리포터’ ‘해밀턴’ 등 대작들이 관객과 만날 준비 중이다. 최 PD는 “현재 확진자수가 급격히 줄어든 호주가 주요 공연시장으로 급부상 중”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불거진 위기가 브로드웨이 및 세계 공연계 풍토를 뒤바꿔 놓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최 PD는 “감염병과 흑인인권운동의 확산은 백인 위주로 흘러가던 공연계 문제를 건드렸다. 수면 아래 잠겨있던 숙제가 터져 나온 브로드웨이는 변혁 중”이라고 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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