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열심히 한 대로 보상받는다’는 말은 거짓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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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 지음·함규진 옮김/420쪽·1만8000원·와이즈베리

하버드대 대형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마이클 샌델. 그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열린 세계에서의 성공은 교육, 즉 세계 경제환경에서 경쟁하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달려 있다”며 “각국 정부가 교육 기회를 반드시 균등하게 관리해야 함을 뜻한다”고 역설한다. 김영사 제공
하버드대 대형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마이클 샌델. 그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열린 세계에서의 성공은 교육, 즉 세계 경제환경에서 경쟁하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달려 있다”며 “각국 정부가 교육 기회를 반드시 균등하게 관리해야 함을 뜻한다”고 역설한다. 김영사 제공
지난해 초 끝난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열심히 한 대로 보상받는다는 능력주의가 허물어지는 한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뤘다. 드라마 속 ‘입시 코디네이터’는 성적 관리는 물론이고 아이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거리낌 없이 각종 부정행위를 저지른다. ‘사모님들’은 재력과 권력을 동원해 아이들 명문대 보내기에 나선다. 현실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씁쓸하기보단 좌절이 먼저 밀려온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의 키워드를 뽑자면 공정이 아닐까 싶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은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공정’이란 말이 자주 들리는 요즘”이라는 추천사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면 이 책을 읽으며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2010년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당신은 고장 난 기차를 운전하고 있다. 5명이 있는 A선로와 1명이 있는 B선로 중 어떤 방향으로 기차를 틀 것인가’라는 잔인한 딜레마로 한국 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킨 저자가 이번에는 공정이라는 주제로 다시 한번 논쟁거리를 던진다.

저자가 공정을 다루기로 한 건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이 미국에서도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힘든 가정형편이나 제도적 지원 부족으로 백인 노동자층 자녀가 대학에 가지 못하고 수입이 줄면서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그는 본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는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정치인들이 한 가지 놓친 점은 능력주의 중심 사회에 내재한 모욕의 감정”이라며 “정말 학위가 없고 성공하지 못한 자는 업신여김 받아 마땅한가”라고 저자를 대신해 묻는다.

저자는 ‘미국판 스카이캐슬’로 알려진 미국 명문대 부정 입학 사건을 중심으로 능력주의의 환상을 부순다. 유명 입시 상담사 윌리엄 싱어가 할리우드 스타들의 자녀를 위해 시험 감독관들에게 돈을 찔러주고 답안지를 조작한 사건이다.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입학하는 ‘뒷문’에 더해 부정 입학이라는 ‘옆문’이 널리 퍼진 현실은 공정이 무너진 미국의 단면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공정성 관점에서는 뒷문과 옆문을 구분하기 어렵다. 둘 다 부자 부모를 둔 청소년이 더 나은 지원자가 되게끔 했으며 능력보다 돈이 앞선 사례”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특히 엘리트층에 대한 분노가 민주주의를 위험하게 만들 때 능력에 대한 환상을 더 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환호하는 승리자와 ‘지원받지 못해 실패했다’고 분노하는 패배자가 양극화하면서 포퓰리즘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세계화의 패자들이 왜 그토록 악에 받쳤는지, 왜 그토록 권위적인 포퓰리스트에게 빠져들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삶을 새롭게 정립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결속력과 존중의 힘이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며 독자에게 해법을 촉구한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공정 논쟁의 해법 역시 한국 독자들이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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