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숨 멎어서도 방아쇠는…’ 항일 시가전 호외

정경준 기자 입력 2020-11-21 11:40수정 2020-11-2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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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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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매체가 많은 요즘엔 발행할 일이 거의 없지만 신문사는 정상적으로 인쇄해 배달하기를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일이 일어나면 호외를 냈습니다. 100년 신문 동아일보도 수많은 호외를 찍었는데, 1923년 초 발행한 두 번의 호외는 그야말로 히트작이었습니다. 두 호외의 주인공은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1923년 1월 12일 밤 김상옥이 던진 폭탄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종로경찰서. 위아래 사진 ‘X’표시가 된 유리창을 통해 날아든 폭탄은 행인 7명을 다치게 하는 데 그쳤지만 일제 경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해 1월 12일 밤 8시 10분 경성 한복판 종로경찰서에 ‘쾅!’ 소리를 내며 폭탄이 터졌습니다. 당시 경성에는 경기도 경찰부 산하에 종로, 동대문, 용산, 서대문 등 4개의 경찰서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종로서 고등계는 독립운동 탄압과 고문의 본거지로 악명이 높았죠. 경찰서 서쪽 모퉁이 길에서 날아든 폭탄이 폭발하면서 주변에 있던 행인 7명이 다쳤고, 경찰서 유리창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창 옆에 걸어둔 순사복들은 벌집이 됐지요.

지금으로 서울경찰청장쯤 되는 우마노 경기도 경찰부장은 “폭탄이야 뭐 세상에 흔한 것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은 척했지만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총독부 고관 및 친일파 귀족들을 총살하고 주요 관공서를 폭파하기 위해 폭탄과 육혈포를 가진 배일파(排日派)가 경성에 잠입했다는 소문이 돌던 와중에 일본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이토 총독이 경성을 출발할 날짜가 며칠 앞으로 다가온 터에 경찰의 심장부가 뚫렸으니까요. 동아일보는 분초를 다퉈가며 그날 밤늦게 호외를 발행했습니다.
중국 상해 망명시절의 김상옥. 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의 경성 방문을 계기로 사이토 총독을 처단하고 무력봉기를 하려는 계획이 탄로나 상해로 피신한 그는 이시영 조소앙 등 임시정부 요인들과 가깝게 지냈으며, 김원봉의 의열단에 공감했다.

경찰은 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의 경성 방문을 기해 무력 항일전을 벌이려다 사전에 발각되는 바람에 중국 상해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던 의열단원 김상옥을 종로서 폭탄투척의 범인으로 지목하고 1월 17일 그가 숨어 있던 삼판통(지금의 후암동) 김상옥의 매부 집으로 날랜 순사 14명을 보냅니다. 하지만 김상옥은 1명을 사살하고 2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잠적합니다.
1923년 1월 22일 김상옥이 수백 명의 일제 경찰과 대치하며 3시간 넘게 총격전을 벌였던 경성 효제동 73번지 일대. 상황종료 후에도 경계하는 순사들이 보인다. 5일 전 급습한 경찰의 포위를 뚫고 이곳에 몸을 숨긴 김상옥은 최후를 맞은 뒤에도 방아쇠에 건 손가락을 펴지 않았다.

그로부터 5일 뒤인 1월 22일 김상옥은 최후의 일전을 치릅니다. 일경은 효제동 동지의 집에 은신한 김상옥을 찾아내고는 수백 명의 병력으로 에워쌌습니다. 김상옥은 숨어 있던 벽장의 흙벽을 손가락으로 파내 탈출한 뒤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며 일기당천(一騎當千)으로 3시간 넘게 교전하죠. 경찰은 힘도, 총탄도 다 떨어진 김상옥에게 집요하게 항복을 권했지만 그는 상해를 떠나올 때 동지들에게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다”고 약속한 것처럼 피투성이가 돼 순국합니다.
1923년 1월 26일 김상옥의 상여가 이문동 공동묘지로 향하고 있다. 삼엄한 감시를 피해 몰래 집에 들를 때도 밥 한 술 뜨기는커녕 앉지도 못했던 김상옥은 순국한 뒤에야 노모와 부인 등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총독부는 이 일이 알려지면 민심이 크게 동요할까봐 엄격히 보도를 통제하고, 발생 거의 두 달 뒤인 3월 15일에야 게재금지를 해제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조선 천지를 진동케 한’ 거사를 알리는 데 다음날까지 기다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당일 발행한 양면 호외 1면 중 ‘김상옥의 최후 1막’은 ‘숨이 멎은 뒤에도 육혈포에 건 손가락을 펴지 않고 (방아쇠) 당기는 시늉을 했다’고 김상옥의 장렬한 최후를 묘사했습니다. 2면은 김상옥의 일생과 그의 모친 인터뷰로 채웠는데, 김상옥은 거사를 앞두고 어머니와 짧게 만난 자리에서 “이번에는 나 마지막 보는 줄 아시오. 아주 단판씨름을 하러 왔소”라며 굳은 결심을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순국 75년 만인 1998년 5월 동아일보사 후원으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건립된 김상옥의 동상. 석조 받침대엔 ‘…비굴한 삶을 잇느니 장렬한 의거로 죽음을 택한 대한인 김상옥…’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동아일보와 김상옥과의 인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인 1924년 한식 즈음인 4월 8일자에 아들의 묘 앞에서 통곡하는 노모의 아픔을 그렸고, 1927년 4월 20일자에는 김상옥 사후 쇠락해 채권자에게 집마저 뺏긴 그의 가족을 동정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30년 김상옥의 아들 태용 씨를 특채한 데 이어 순국 75년을 맞은 1998년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김상옥 동상 건립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는 김상옥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

주요기사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원문


銃殺(총살)의 因(인)으로 銃殺(총살)의 果(과)를 結(결)한
癸亥(계해) 劈頭(벽두)의 大(대) 事件(사건) 眞相(진상)
主謀者(주모자) 金相玉(김상옥)이 被殺(피살)된 以後(이후)
連累者(연루자) 八(팔) 名(명)은 被捉(피착)되야 起訴(기소)

지난 일월 십칠일 새벽에 경성시내 삼판통(三坂通·삼판통) 삼백사 번디 고봉근(高奉根·고봉근)의 집에서 경관의 포위를 당하고 륙혈포로써 대항하야 종로서의 뎐촌 형사(鍾路署 田村 刑事·종로서 전촌 형사)를 총살하고 기타의 매뎐(梅田·매전) 금뢰(今瀨·금뢰) 양 경부를 즁상케 하고 도주한 사건이 생긴 이래 그달 이십이일 새벽에 시내 효뎨동(孝悌洞·효제동) 칠십이 번디에 잠복하야 잇는 범인을 수백의 경관이 에워싸고 잡으랴 하다가 마츰내 범인을 춍살한 사건에 대하야는 사건 발생 당시부터 당국의 게재금지 명령이 엄혹하야 이때까지 그 자셰한 진상을 보도할 자유가 업섯더니 금 십오일 오젼에 총독부 경무국에서 그 사건에 대한 게재금지를 해졔하얏기로 본사에서 신속히 보도하기 위하야 즉시 호외를 발행하는 바이라.(십오일 정오)



被殺者(피살자)는 金相玉(김상옥)
련루자 여달 명은 임의 긔소

일월 십칠일 새벽에 시내 삼판통(三坂通·삼판통)에서 뎐촌 형사(田村 刑事·전촌 형사)를 총살하고 그달 이십이일에 시내 효뎨동(孝悌洞·효제동)에서 순사대의 총을 마저 죽은 사건의 범인은 경성부 창신동 사백팔십칠 번디(京城府 昌信洞 四八七·경성부 창신동 사팔칠)에서 텰물상을 하든 김상옥(金相玉·김상옥)(三四·삼사)이오,

그가 죽은 후 그와 한 가지 일을 하든 동지는 모다 경찰의 손에 잡히어 임의 경성디방법원 검사국에서 심리를 맛치고 관계자 중 여달 명은 지난 십삼일에 긔소되얏더라.



金相玉(김상옥)의 指揮(지휘)에 依(의)하야
피고 김한 등 여덜 명의 비밀활동
만록춍 중 일뎜홍 격의 리혜수 양
=十三日(십삼일) 京城地方法院(경성지방법원) 檢事局(검사국) 發表(발표)=

本籍(본적) 京城府(경성부) 仁義洞(인의동) 五一(오일)
住所(주소) 同上(동상)
大正(대정) 八年(팔년) 制令(제령) 第七號(제칠호) 違反(위반) 强盜(강도) 豫備(예비)
京城郵便局(경성우편국) 人夫(인부) 全宇鎭(전우진)(四一·사일)

本籍(본적) 咸南(함남) 咸興郡(함흥군) 州內面(주내면) 豊南里(풍남리)
住所(주소) 不定(부정) 無職(무직)
同上(동상) 安弘翰(안홍한)(二一·이일)

本籍(본적) 未詳(미상)
住所(주소) 京城府(경성부) 觀水洞(관수동) 四七(사칠)
著述業(저술업) 無産者同盟會(무산자동맹회) 委員(위원)
同上(동상) 金翰(김한)(三七·삼칠)

本籍(본적) 京城府(경성부) 孝悌洞(효제동) 七三(칠삼)
住所(주소) 同上(동상)
大正(대정) 八年(팔년) 制令(제령) 第七號(제칠호) 違反(위반) 强盜(강도) 豫備(예비)
李惠受(이혜수)(二八·이팔)

本籍(본적) 京城府(경성부) 樂園洞(낙원동) 二六(이육)
住所(주소) 同上(동상)
大正(대정) 八年(팔년) 制令(제령) 第七號(제칠호) 違反(위반) 强盜(강도) 豫備(예비)
印章彫刻業(인장조각업) 徐丙斗(서병두)(四四·사사)

本籍(본적) 忠南(충남) 洪城郡(홍성군) 廣川面(광천면) 內竹里(내죽리) 三三(삼삼)
住所(주소) 京城府(경성부) 鳳翼洞(봉익동) 一七(일칠)
徽文高等普通學校(휘문고등보통학교) 生徒(생도)
同上(동상) 鄭卨敎(정설교)(二七·이칠)

本籍(본적) 慶南(경남) 固城郡(고성군) 永吾面(영오면) 五西里(오서리) 六三(육삼)
住所(주소) 京城府(경성부) 唐珠洞(당주동) 一六(일육)
佛敎學院(불교학원) 學生(학생)
同上(동상) 申華秀(신화수)(二七·이칠)

本籍(본적) 忠南(충남) 洪城郡(홍성군) 長大上面(장대상면) 花溪里(화계리) 一八○(일팔○)
住所(주소) 同郡(동군) 廣川面(광천면) 廣川里(광천리) 一七八(일칠팔)
東亞日報(동아일보) 洪城分局長(홍성분국장)
同上(동상) 尹益重(윤익중)(二八·이팔)

피고 김한(金翰·김한)은 일즉이 상해가정부의 법무국댱(法務局長·법무국장)이엇든 일이 잇고 그 정부의 위원(委員·위원)인 리시영(李始榮·이시영) 김원봉(金元鳳·김원봉) 등과는 아는 터인대 현재 무산자동맹회(無産者同盟會·무산자동맹회)의 위원이 되어 정치의 변혁(變革·변혁)을 도모하고 잇든 사람인대 전긔 김원봉 등은 조선독립 자금을 변통하기 위하야 조선 안에 폭탄을 비밀히 수입하야 그것을 가지고 인심을 소란식히어 돈을 강탈하기를 도모하고 대정 십일년 칠팔월 중에 리응명(李應明·이응명)이란 사람을 특파하야 피고 김한에게 그 사연을 말하고 몰내 보내인 폭탄을 바든 후 상해에서 파견할 사람에게 교부하기를 의뢰하얏더니 피고 김한은 그 계획에 찬동하야 그럿케 하기를 승낙하고 경성부 인사동 칠 번디 숙옥 영업하는 리수영(李遂榮·이수영)의 집을 통신소(通信所·통신소)로 뎡하야 통신을 하고 그해

구월 중슌에 김원봉이가 특파한 박선(朴善·박선)이라는 사람에게서 폭탄을 안동현까지 갓다두엇슨 즉 일주일 후에는 도달하리라는 보도를 어덧스나 그 후 소식이 업슴으로 사람을 그곳에 보내서 그 상황을 탐색케 하고 한편으로 뒤를 이어 김원봉(金元鳳·김원봉)에게 그 뜻을 통신하고 폭탄을 음밀히 보내주기와 파견된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잇는 중 일즉이 대정 구년 팔월에 미국위원단 일행이 경성에 오는 것을 긔회로 암살단(暗殺團·암살단)을 조직하야 폭탄을 사용할 일을 계획하다가 일이 발각되여 상해에 도주하얏든

김상옥이란 사람이 대정 십일년 십일월 중에 김원봉 등에게서 조선에 잠입하야 피고 김한에게 면회하고 전긔 계획을 실행할 취지로 지휘를 밧고 이전부터 알든 피고 안홍한에게 그 뜻을 말하고 함끠 그달 중순경에 륙혈포 네 자루와 불온문셔 등을 담은 나무상자 한 개를 휴대하고 상해를 출발하야 그 이듬달 즉 십이월 일일에 가마니 경성에 드러와서 곳 이전부터 김상옥의 경력과 목뎍을 아는 피고 전우진의 집을 방문하고 그 온 뜻을 말하엿더니 전우진은 피고 안홍한을 피고 정설교에게 소개하야 그 집에 류숙하게 하고 또 김상옥 등이

상해에서 가지고 온 륙혈포 등을 자긔(전우진)의 집에 숨기어 보관하고 또 피고 전우진과 피고 안홍한은 김상옥의 명령대로 폭탄에 대하야 전후 세 번이나 피고 김한의 집에 가서 면회하고 김상옥도 역시 금년 일월 중순경까지의 사이에 두어 번이나 피고 김한을 방문하매 김한은 경성부 관수동(觀水洞·관수동) 무산자동맹회 사무소에서 김상옥을 면회하고 폭탄에 대하야 협의하엿스나 김원봉에게서 보내인 폭탄이 아즉 도착치 아니하기 때문에 폭탄을 주고 밧기 전에 일이 발각된 것이라.

피고 정설교는 피고 안홍한을 자긔 집에 긔숙식히고 또 김상옥에게서 독립운동 자금으로 돈 오백 원을 변통하야 달나는 의뢰를 바드매 이를 승락하고 또 김상옥의 명령대로 십일년 십이월 십칠팔일경에 운동자금을 변통하기 위하야 전긔 암살단과 한편인 피고 윤익중(尹益重·윤익중) 피고 신화수(申華秀·신화수)에게 대하야 지급히 경성으로 오라는 뜻으로 편지를 한 즉 피고

윤익중과 신화수 역시 이에 응하야 상경하야 광화문통(光化門通·광화문통) 최모(崔某·최모)의 집과 또 피고 리혜수(李惠受·이혜수)의 집에서 김상옥과 피고 정설교 등에게 면회를 하고 김상옥의 계획을 듯고 이에 찬동하얏고 또 독립자금으로 각각 돈 일천 원식을 변통하기를 승낙하고 피고 윤익중은 즉시 돈 오십 원을 내이고 그 후 피고 리혜수의 손을 것치어 돈 백 원을 김상옥에게 주고 또 김상옥의 의뢰에 의지하야 경성부 안에 배부할 불온문서와 독립자금 령수증의 인쇄와 이에 사용하는 도장 색이는 것을 피고 서병두(徐丙斗·서병두)에게 의뢰한 즉

서병두는 전긔 사정을 알면서 이를 승낙하고 그달 이십삼일에 불온문서와 독립자금 령수서의 모형과 인장 색인 것 등을 피고 전우진에게서 밧고 또 도장 색이는 비용으로 이십 원을 그달 이십칠팔일경에 피고 윤익중에게서 바닷는대 피고 등은 정치변혁을 목뎍하고 치안을 방해하려 한 것이라.

또 피고 리혜수는 전긔와 가치 김상옥 등의 계획을 알면서 피고 윤익중에게서 독립자금으로 김상옥에게 보내는 돈 백 원을 바다다 주고 또 김상옥이가 전긔와 가치 죄를 범한 것과 그해 일월 십칠일에 경성부 삼판통(三坂通·삼판통) 고봉근(高峰根·고봉근)의 집에서 순사 전촌댱칠(田村長七·전촌장칠)을 살해하고 경부 금뢰태랑(今瀨太郞·금뢰태랑) 등을 상해한 범인인 줄 알면서 그달 이십이일 아츰에 이르기까지 자긔 집에 숨기어 둔 것이라.

검안(檢案·검안)하건대 피고 전우진 안홍한 김한 리혜수 서병두 정설교 신화수 윤익중 등 여덜 명에 대한 범죄 사실은 모다 그 증거가 충분하다고 인뎡함으로 경성디방법원 공판에 붓친다 하엿고 그 외의 관련된 사람 네 명은 모다 증거가 충분치 못하다 하야 면소 방면되얏더라.

總督(총독) 暗殺(암살)을 계획(計劃) 중(中)
삼판통 집에서 포위를 당하야
김상옥은 일산 방면으로 입경

세상에서 전하기는 김상옥이가 원산 편으로 국경 방면을 넘어서 경성으로 드러왓다는 말이 잇스나 경찰당국의 말은 김상옥은 십이월 상순경에 륙혈포 몃 자루와 폭발탄 몃 개를 가지고 압록강의 어름을 타고 국경을 건너서서 몃십 리를 거러서 오다가 평안북도 경의선(京義線·경의선) 모 정거장에서 차를 타고 오다가 경의선 일산(一山·일산) 역에서 내리어 거러서 경성까지 드러왓다 하며 경성에 드러온 후에는 일즉이 친하든 모모 친구의 집에 류숙하며 긔회를 기다리는 그때부터 경찰당국에서는 이 계획을 탐지하고 각처에 수색이 심함으로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잇지 못하고 혹 이일식 혹 삼일식 각처로 도라다니며 류숙하다가 일월 십이일 저녁에 종로경찰서에 폭발탄이 터진 이후로 시내의 수색이 더욱 엄중하매 일월 십삼일 저녁에 남대문밧 삼판통(三坂通·삼판통) 자긔 누의의 집인 삼백사 번디 고봉근(高奉根·고봉근)의 집에 가서 류숙하엿는대 원래 모험을 하는 사람이라 누의의 집에서라도 자긔의 본색을 말하면 재이지 아니할가 념려함인지 싀골서 피물(皮物·피물) 장사를 하다가 왓노라 말하고 잠복하야 잇스며 동경의회에 건너가는 재등 총독을 암살코자 때때로 남대문 정거장에 배회하다가 총독이 떠나든 날 즉 일월 십칠일 새벽에 종로경찰서에서는 그의 잠복한 것을 탐지하고 형사 중에 가장 날내인 형사 십사 명을 뽑아서 전부 륙혈포를 가지고 고봉근의 집을 텰통가치 포위하고 잡으려 하엿더라.



三坂通(삼판통) 衝突(충돌)의 刹那(찰나)
뎐촌 형사를 죽이고 피신

그러나 대문이 걸니엇슴으로 형사들은 담을 넘어가서 그가 자는 건넌방 문을 열녀하니 그는 문을 걸고 잠으로 문을 열나고 여러 번 재촉하얏스나 아모 대답이 업서서 형사들은 수각이 황망한 중 종로경찰서에 유도(柔道·유도) 이단(二段·이단)이요 날내이기로 유명한 뎐촌댱칠(田村長七·전촌장칠)이가 앞장을 서서 거른 문을 잡아 낙구치니 벼락가치 문이 떨어지자 김상옥은 어느 틈에 예비하얏든지 나는 새 가치 전촌의 목에 총을 놋코 다라나려 하매 종로경찰서 금뢰(今瀨·금뢰) 경부가 붓잡으려 하니 역시 그에게 총을 노아 걱구럿트리고 또 동대문경찰서 매뎐(梅田·매전) 경부보가 뒤로 붓잡으매 억개에 총을 노아 너머트리고 급히 도망하니 이 사이가 실로 수 분간이라 륙혈포를 가지고 섯든 형사들도 잠시 엇지할 줄을 몰느고 놋치엇더라.

雪中(설중)의 南山(남산) 包圍(포위)
경찰대는 각처로 활동 개시
김상옥의 친족은 모다 인치

김상옥을 일흔 형사는 즉시 호각을 부러 중대 범인을 놋치인 경호를 자조하며 즉시 각 경찰서 정복 순사 천여 명을 푸러 그가 도망한 남산을 나는 새도 빠지지 못하게 에워싸고 눈싸힌 남산 전부를 수색하고 일변 수백명 경관은 왕십리(往十里·왕십리) 일대와 광희뎡(光熙町) 일대를 수색하며 긔마순사가 총금을 번적이며 삼판통 일대를 경계하니 실로 금시에 경성시내 일대는 전시상태와 가치 되엿스며 일면 김상옥의 누의와 고봉근과 그의 친족까지 전부 경긔도 경찰부로 인치하얏더라.


僧庵(승암)의 生米飯(생미반)으로
첫 아츰을 어이고
십구일 저녁 때에
효뎨동으로

김상옥은 백여 명 경관의 포위를 버서나서 광희문 밧 어느 암자로 가니 원래 뛰여나올 때에 맨발로 갓는지라 돌사닥다리 험한 산길이요 또 눈과 어름이 사면에 잇서 발바당이 만창이 되엿슴으로 할 수 업시 문밧 어느 암자에 가서 애걸하야 양말 한 켜레를 어더 신고 아츰밥을 좀 달나하니 밤이 밋처 되지 아니하야 끌치도 아니한 생 쌀밥 한 술을 랭수에 풀어 드리마시고 다시 왕십리 모처에 가서 하로 저녁을 자고 십구일 저녁 때 시내 효뎨동(孝悌洞·효제동) 칠십삼 번디 리태성(李泰晟·이태성)의 집에 가서 전영진(全永鎭·전영진)이란 일홈으로 류숙하게 되엿다.



金相玉(김상옥)의
最後(최후) 一幕(일막)
시내 효대동의
졉젼하든 참극

이 중에 경찰당국에서는 범인이 양주(楊州·양주)로 도주하엿다는 말이 잇슴으로 수십 명 경관을 푸러서 망우리(忘憂里·망우리) 고개를 수색하고 일변 김상옥의 친족이 사는 포천(抱川·포천) 읍내(邑內·읍내) 김응집(金應集·김응집) 외에 여러 사람의 집을 수색 후 경계하얏스며 일변 사복형사를 수백 명이나 느러노아

동대문 밧 김상옥의 집 근처와 동대문 안 모모처와 왕십리 광희뎡 일대를 경계하며 일변 김상옥의 가족은 물론 먼 촌 친족까지 불너서 엄중 취조하고 일변 혐의자를 톄포 취조하는 동시에 김상옥의 수하로 일하든 전우진 외 몃 명을 잡아서 엄중히 심문하니 전우진은 김상옥을 효뎨동 리태성의 집에 소개하든 사람이라 엇지하다가 누구의 입에서 김상옥이 리태성의 집에 잇다는 말이 나왓스나 경찰서에서 전번 경험이 잇는지라 그 전과 가치 어설피게 하지 아니하려 하엿든지 수백 명 무장경관을 풀어 효뎨동 주위를 수십 겹씩 둘너싸고 마야(馬野·마야) 경찰부댱이 총지휘관으로 등본(藤本·등본) 보안과댱이 부지휘관으로

리태성의 집을 에워싸고 지붕을 넘어 드러가서 륙혈포를 노으며 김상옥에게 항북을 권고하고 일변 집안 사람의 가슴에 륙혈포를 대이며 김상옥을 끄러내이라 하매 김상옥도 륙혈포를 가젓는지라 끄러내일 수 업다 하매 동대문경찰서 률전(栗田·율전) 경부보가 륙혈포를 노으며 선두로 드러가다가 김상옥의 륙혈포에 마저 너머지매 김상옥은 여러 형사가 주저하는 틈에 다락 속에 잇는 널반지를 뚤코 나가서 세집으로 쫏겨다니며 세 시간 이상을 격렬히 싸왓스나 필경 수십 명 경관의 일제 사격으로 비발 가튼 탄환 속에 마저 죽게 되니 김상옥은 이 중에 총을 놋타가 엽집에 드러가 『나를 이불을 좀 주시오』 이불을 주시면 그것을 쓰고 탄환을 좀 피하야 몃 명 더 노아죽이고 죽을 터이니』하얏스나 주인이 말을 안 드러서 그대로 싸호다가 죽는대

춍을 마자 숨이 진한 후에도 륙혈포에 건 손가락을 쥐고 펴지 아니하고 숨이 넘어가면서도 손가락으로는 놋는 시늉을 하엿다는대 김상옥은 원래 날새이어 일즉이 모 청년회의 운동부댱 노릇을 한 일도 잇셧더라.

爆彈(폭탄) 事件(사건)과의 關係(관계)는
아즉 판명되지 안햇다고
警務局(경무국) 山口(산구) 高等課長(고등과장) 談(담)

김상옥(金相玉·김상옥)의 사건은 별항에 긔록한 바와 갓거니와 이에 대하야 경무국(警務局) 산구 고등과댱(山口 高等課長·산구 고등과장)은 말하되 사건이 발생한 지는 임의 오래이나 그동안에 신문의 긔재를 금지한 것은 범인을 수색하는 관계상에 장애가 잇슴으로 지금까지 발표를 못하얏슴니다. 종로경찰서(鍾路警察署·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더진 범인이라면 김상옥인지 안인지는 아직까지 판명치 못하얏스나 초심에는 김상옥이가 더진 듯한 형적이 잇섯스나 김상옥이는 임의 사망한 까닭에 확실한 증거를 발견치 못하얏다고 말하더라.


官公署(관공서) 爆破(폭파) 計劃(계획) 發覺(발각)
北京義烈團(북경의열단), 兩處(양처)에서 被捉(피착)
경성 내에서도 금조 련루자 수 명 톄포
동시에 폭탄 십여 개와 권총까지 압수

북경의열단(北京義烈團·북경의열단) 일파가 조선 안에 잇는 관공서를 폭탄으로 파궤하야 인심을 동요케 할 계획이 잇다는 정보를 듯고 경무국에서는 그 후 비밀 중에 수색하든 바 안동현경찰서(安東縣警察署·안동현경찰서)와 신의주경찰서가 협력하야 국경 방면을 감시하든 즁, 작일 밤 국경 방면에서 범인 수 명을 톄포하고 폭탄 십여 개와 불온문서를 만히 압수하고 경긔도 경찰부에서도 오늘 아참 미명에 경성부 내 모처에서 그 련루 범인 수 명을 톄포하고 폭탄 수십 개와 권춍 탄환 기타를 다수히 압수하엿더라.(십오일 경무국 발포)

현대문

총살의 씨앗으로 총살의 열매를 맺은
계해년 벽두의 대 사건 진상
주모자 김상옥이 피살된 후
연루자 8명은 체포돼 기소

지난 1월 17일 새벽 경성시내 삼판통 304번지 고봉근의 집에서 경관의 포위를 당한 데 맞서 권총으로 대항해 종로경찰서 타무라 형사를 총살하고 이어 우메다, 이마세 두 경부에 중상을 입히고 도주한 사건이 생긴 이래 같은 달 22일 새벽 시내 효제동 72번지에 잠복해 있는 범인을 경관 수백 명이 에워싸고 잡으려하다 마침내 범인을 총살한 사건에 대해 사건 발생 당시부터 당국이 엄혹한 게재금지 명령을 내려 지금까지 자세한 진상을 보도할 자유가 없었는데, 15일 오전 총독부 경무국에서 그 사건에 대한 게재금지 조치를 해제해 본사는 이를 신속하게 보도하기 위해 즉시 호외를 발행하는 바이다.(15일 정오)

피살자는 김상옥
연루자 8명은 이미 기소

1월 17일 새벽 시내 삼판통에서 다무라 형사를 총살하고 그 달 22일 시내 효제동에서 순사대의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의 범인은 경성부 창신동 487번지에서 철물상을 하던 김상옥(34)이요,

그가 죽은 후 그와 함께 일하던 동지는 모두 경찰에 잡혀 이미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심리를 마치고 관계자 중 8명은 지난 13일 기소됐다.

김상옥의 지휘에 따라
피고 김한 등 8명 비밀 활동
만록총 중 홍일점 격의 이혜수 양
=13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발표=

본적 경성부 인의동 51
주소 상동
1919년 제령 제7호 위반 강도 예비
경성우편국 인부 전우진(41)

본적 함남 함흥군 주내면 풍남리
주소 부정
무직
상동 안홍한(21)
본적 미상
주소 경성부 관수동 47
저술업 무산자동맹회 위원
상동 김한(37)

본적 경성부 효제동 73
주소 상동
1919년 제령 제7호 위반 강도 예비
이혜수(28)

본적 경성부 낙원동 26
주소 상동
1919년 제령 제7호 위반 강도 예비
인장조각업 서병두(44)

본적 충남 홍성군 광천면 내죽리 33
주소 경성부 봉익동 17
휘문고등보통학교 생도
상동 정설교(27)

본적 경남 고성군 영오면 오서리 63
주소 경성부 당주동 16
불교학원 학생
상동 신화수(27)

본적 충남 홍성군 장대상면 화계리 180
주소 동군 광천면 광천리 178
동아일보 홍성분국장
상동 윤익중(28)

일찍이 상해임시정부의 법무국장이었던 피고 김한은 임시정부 위원인 이시영 김원봉 등과는 아는 터인데 현재 무산자동맹회의 위원이 돼 정치 변혁을 도모하고 있던 사람이다. 앞의 김원봉 등은 조선독립자금을 변통하기 위해 조선에 폭탄을 몰래 들여와 그것으로 인심을 소란케 해 돈을 강탈할 것을 꾀하고 1922년 7, 8월 중 이응명이란 사람을 특파해 피고 김한에게 그 사연을 말하고 몰래 보낸 폭탄을 받은 후 상해에서 파견할 사람에게 건네주기를 의뢰했다.

피고 김한은 계획에 찬동해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하고 경성부 인사동 7번지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이수영의 집을 통신소로 정해 연락을 하고 그 해 9월 중순 김원봉이 특파한 박선이라는 사람에게서 “폭탄을 만주 안동현에 갖다 뒀으니 1주일 뒤에는 도착할 것”이라는 기별을 받았으나 그 후 소식이 없어 사람을 그곳에 보내 상황을 살펴보게 하는 한편 김원봉에게 뜻을 전해 은밀히 폭탄을 보내주기를 기다리는 동시에 파견된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

일찍이 1919년 8월 미국 위원단 일행이 경성에 오는 것을 기회로 암살단을 조직해 폭탄을 사용할 것을 계획하다 일이 발각돼 상해에 도주했던 김상옥이란 사람이 1922년 11월 중 김원봉 등으로부터 조선에 잠입해 피고 김한을 면회하고 위 계획을 실행할 취지로 지휘를 받고, 전부터 알던 피고 안홍한에게 그 뜻을 말하고 함께 그달 중순경 권총 4자루와 불온문서 등을 담은 나무상자 1개를 휴대하고 상해를 출발해 다음달, 즉 12월 1일에 몰래 경성에 들어와 이전부터 김상옥의 경력과 목적을 아는 피고 전우진의 집을 방문해 자기가 온 뜻을 말했더니 전우진은 피고 안홍한을 피고 정설교에게 소개해 그 집에 유숙하게 하고, 도 김상옥 등이 상해에서 갖고 온 권총 등을 자기(전우진) 집에 숨겨 보관하고,

또 피고 전우진과 피고 안홍한은 김상옥의 명령대로 폭탄에 대해 전후 세 번이나 피고 김한의 집에 가서 그를 만나고, 김상옥 역시 금년 1월 중순경까지 사이에 두어 번이나 피고 김한을 방문하니 김한은 경성부 관수동 무산자동맹회 사무소에서 김상옥을 면회하고 폭탄에 대해 협의했으나 김원봉이 보낸 폭탄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폭탄을 주고받기 전에 일이 발각된 것이다.

피고 정설교는 피고 안홍한을 자기 집에 기숙시키고 또 김상옥에게서 독립운동자금 500원을 변통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이를 승낙하고, 또 김상옥의 명령대로 1922년 12월 17, 18일경 운동자금을 변통하기 위해 앞의 암살단과 한편인 피고 윤익중, 피고 신화수에게 급히 경성으로 오라는 편지를 했다.

피고 윤익중과 신화수 역시 이에 응해 경성에 와 광화문통 최모의 집과 피고 이혜수의 집에서 김상옥과 피고 정설교 등을 만나 김상옥의 계획을 듣고 이에 찬동했고, 또 독립자금으로 각각 1000원씩을 변통하겠다고 승낙한 뒤 피고 윤익중은 즉시 50원을 내고, 그 후 피고 이혜수를 통해 100원을 김상옥에게 주고, 또 김상옥의 의뢰에 따라 경성부 내에 배부할 불온문서와 독립자금 영수증의 인쇄에 쓸 도장 새기는 것을 피고 서병두에게 의뢰한 즉

서병두는 그런 사정을 알면서 이를 승낙하고 같은 달 23일 불온문서와 독립자금 영수증 모형, 인장 새긴 것 등을 피고 전우진에게서 받고, 또 도장 새기는 비용으로 20원을 그 달 27, 28일경 피고 윤익중으로부터 받았는데, 피고 등은 정치변혁을 목적으로 하고 치안을 방해하려 한 것이다.

또 피고 이혜수는 위에 적은 것처럼 김상옥 등의 계획을 알면서 피고 윤익중에게서 독립자금으로 김상옥에게 보내는 돈 100원을 받아다 주고, 김상옥이 앞의 죄를 범한 것과 그 해 1월 17일 경성부 삼판통 고봉근의 집에서 순사 다무라 초시치를 살해하고 경부 이마세 타로 등을 상해한 범인인 줄 알면서 같은 달 22일 아침까지 자기 집에 순겨준 것이다.

사안을 검토하건대 피고 전우진, 안홍한, 김한, 이혜수, 서병두, 정설교, 신화수, 윤익중 등 8명에 대한 범죄사실은 모두 증거가 충분하다고 인정할 수 있으므로 경성지방법원 공판에 부친다 했고, 그 외 관련자 4명은 증거가 불충분해 기소를 면하고 방면됐다.

총독 암살을 계획 중
삼판통 집에서 포위당해
김상옥은 일산 방면에서 입경

세상에 전하기로는 김상옥이 원산 쪽으로 국경을 넘어 경성으로 들어왔다는 말이 있으나 경찰당국의 얘기로는 김상옥은 12월 상순경 권총 몇 자루와 폭탄 몇 개를 가지고 압록강 얼음을 타고 국경을 건너 몇 십 리를 걸어오다 평안북도 경의선 모 정거장에서 기차를 타고 경의선 일산역에서 내려 도보로 경성까지 들어왔다 한다.

경성에 들어온 뒤로는 일찍이 친하던 모모 친구의 집에 머물며 기회를 기다렸는데, 이때부터 경찰당국에서는 이 계획을 탐지하고 곳곳에서 수색을 심하게 하므로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혹은 2일, 혹은 3일씩 각처를 돌아다니며 유숙하다 1월 12일 저녁 종로경찰서에 폭탄이 터진 후 시내의 수색이 더욱 엄중해지자 1월 13일 저녁 남대문 밖 삼판통 자기 누나의 집인 304번지 고봉근의 집에서 머물렀다.

김상옥은 원래 모험을 하는 성격이라 누이의 집에서도 자기 본색을 그대로 말하면 재워주지 않을까 염려해선지 시골에서 가죽장사를 하다 왔노라고 하고 잠복해 있으며 의회 참석 차 도쿄로 건너가는 사이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때때로 남대문 역을 배회하다 총독이 출발하던 날, 즉 1월 17일 새벽에 종로경찰서에서는 그가 잠복한 것을 탐지하고 형사 중 가장 날랜 14명을 뽑아 모두 권총을 가지고 고봉근의 집을 철통같이 포위하고 김상옥을 잡으려 했다.

삼판통 충돌의 찰나
다무라 형사를 죽이고 피신

그러나 대문이 걸려있어 형사들은 담을 넘어 그가 자는 건넌방 문을 열려고 했으나 김상옥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잤으므로 문을 열라고 여러 번 재촉했다. 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어 형사들은 팔다리가 허둥지둥한 사이 종로경찰서에서 유도 2단에 날래기로 이름난 다무라 초시치가 앞장서 걸어 잠근 문을 잡아 낚아채 문이 벼락같이 떨어지자 김상옥은 어느 틈에 대비했던지 나는 새 같이 다무라의 목에 총을 발사하고 달아나려 했다.

이어 김상옥은 자신을 붙잡으려 한 종로경찰서 이마세 경부에게도 총을 쏘아 거꾸러뜨리고, 다시 동대문경찰서 우메다 경부가 붙잡으려고 달려드니 어깨에 총을 발사해 넘어뜨리고 급히 도망하니 이 일이 발생한 사이가 실로 몇 분에 지나지 않아 권총을 갖고 있던 다른 형사들도 잠시 어찌할 줄 모르고 김상옥을 놓쳤다.



눈 속의 남산 포위
경찰대는 곳곳으로 활동 개시
김상옥의 친족은 모두 강제구인

김상옥을 잃은 형사는 즉시 호루라기를 불어 중대 범인을 놓쳤다는 경계신호를 자주 하며, 즉시 각 경찰서 정복 순사 1000여 명을 풀어 그가 도망한 남산 일대를 나는 새도 벗어나지 못하게 에워싸고 눈 쌓인 남산을 전부 수색했다.

한편 경관 수백 명은 왕십리 일대와 광희정 일대를 수색하며, 총검을 번쩍이는 기마 순사들은 삼판통 일대를 경계하니 실로 경성시내 일대는 금세 전시 상태를 방불케 했으며, 김상옥의 누이와 그의 친족까지 전부 경기도 경찰부로 강제로 끌고 갔다.


스님 암자의 생쌀로
첫 아침을 때우고
19일 저녁에
효제동으로

김상옥은 100여 명 경관의 포위를 뚫고 광희문 밖 어느 암자로 갔는데 원래 삼판통 집에서 맨발로 뛰어나온지라 돌사다리 같은 험산 산길이요, 사면에 눈과 얼음이 있어 발바닥이 만신창이가 됐으므로 할 수 없이 암자에 애걸해 양말 한 켤레를 얻어 신고 아침밥을 좀 달라고 하니 밥이 미처 되지 않아 끓지도 않은 생 쌀밥 한 술을 냉수에 풀어 들이마시고 다시 왕십리 모처로 가서 하루 저녁을 자고 19일 저녁 시내 효제동 73 이태성의 집에 가 전영진이란 이름으로 유숙하게 됐다.



김상옥의
최후 1막
시내 효제동에서
접전하던 참극

이러는 동안 경찰당국은 범인이 양주로 도주했다는 말이 있어 경관 수십 명을 풀어 망우리 고개를 수색하고 한편으로 김상옥의 친족이 사는 포천 읍내 김응집 외 여러 사람의 집을 수색한 뒤 경계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사복형사 수백 명을 동원해 동대문 밖 김상옥의 집 부근과 동대문 안 모모처, 왕십리 광희정 일대를 경계하며 김상옥의 가족은 물론 먼 친족까지 불러 엄중히 취조하고, 혐의자를 체포해 취조하는 동시에

김상옥의 부하로 일하던 전우진 외 몇 명을 붙잡아 엄중히 심문하니 전우진은 김상옥을 효제동 이태성의 집에 소개했던 사람이라 어찌하다 누군가의 입에서 김상옥이 이태성의 집에 있다는 말이 나왔다. 경찰서에서는 지난 번 삼판통에서 김상옥을 놓친 경험이 있는지라 그때처럼 어설프게 하지 않으려 했던지 무장경관 수백 명을 풀어 효제동 주위를 수십 겹 둘러싸고 우마노 경찰부장이 총지휘관으로, 후지모토 보안과장이 부지휘관으로

이태성의 집을 에워싸고 지붕을 넘어 들어가 권총을 쏘며 김상옥에게 항복을 권하고 한편으로는 집안사람들의 가슴에 권총을 겨누며 “김상옥을 끌어내라”고 하자 그들이 “김상옥도 권총을 가졌는지라 끌어낼 수 없다”고 해 동대문경찰서 쿠리타 경부보가 권총을 발사하며 선두로 들어가다 김상옥의 총에 맞아 넘어졌다.

김상옥은 여러 형사가 주저하는 틈에 다락 속의 널빤지를 뚫고 나가 세 집을 전전하며 쫓기면서도 3시간 이상을 격렬하게 맞서 싸웠으나 기어코 경관 수십 명의 일제 사격으로 빗발 같은 탄환 속에 총에 맞아 죽게 됐다.

김상옥은 이 와중에 총을 쏘다 옆집에 들어가 “나에게 이불을 좀 주시오. 이불을 주시면 그걸 쓰고 탄환을 좀 피해 몇 명 더 쏘아죽이고 죽을 테니” 했으나 집주인이 말을 듣지 않아 그대로 싸우다 죽었는데

총에 맞아 숨이 멎은 뒤에도 권총에 건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쥐고 펴지 않았고, 숨이 넘어가는데도 손가락을 당기는 시늉을 했다고 한다. 김상옥은 원래 날쌔 일찍이 모 청년회 운동부장을 한 일도 있었다.


폭탄 사건과의 관계는
아직 판명되지 않았다고
경무국 야마구치 고등과장 얘기

김상옥 사건은 별항 기사와 같거니와 이에 대해 경무국 야마구치 고등과장은 “사건이 발생한 지는 이미 오래 전이나 그동안 신문의 기재를 금지한 것은 범인을 수색하는 관계상 장애가 있을 것이므로 지금까지 발표하지 못했습니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범인이라면 김상옥인지 아닌지 아직까지 판명하지 못했지만, 처음에는 김상옥이 던진 듯한 흔적이 있었으나 김상옥이 이미 사망한 까닭에 확실한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관공서 폭파 계획 발각
북경의열단, 두 곳에서 체포
경성 내에서도 오늘 아침 연루자 수 명 체포
동시에 폭탄 10여 개와 권총도 압수

북경의열단 일파가 조선에 있는 관공서를 폭탄으로 파괴해 인심을 동요케 할 계획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경무국에서는 그 후 비밀리에 수색하던 바, 안동현경찰서와 신의주경찰서가 협력해 국경 방면을 감시하던 중

어젯밤 국경 쪽에서 범인 수 명을 체포하고 폭탄 10여 개와 불온문서 다수를 압수하고 경기도 경찰부에서도 오늘 날도 채 밝지 않은 아침에 경성부 내 모처에서 그 연루된 범인 수 명을 체포하고 폭탄 수십 개와 권총, 탄환 기타를 다수 압수했다.(15일 경무국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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