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휴교령 즈음에 쓴 듯
“날 제물로 요구한다는 것 알아”
홍일식 前고대 총장이 발견해 보관
탄생 100주년 맞아 학교에 전달
“고려대에 내려진 휴업령 철회가 본인을 제물로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1965년 9월 당시 고려대 문과대 교수였던 시인 조지훈(1920∼1968)은 200자 원고지에 비장한 각오로 글을 써 내려갔다. 모두 181자 분량의 ‘사퇴이유서’였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조 시인의 자필 사직서가 세상에 공개됐다. 고려대는 “조 시인의 제자인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84)이 11일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조지훈 탄생 100주년 추모 좌담회’에서 사퇴이유서를 학교에 전달했다”고 16일 밝혔다.
당시 대학가는 6월 군사정부의 한일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반대 시위가 이어지던 상황. 조 시인 역시 학생들과 뜻을 같이했다. 황순원 박경리 등 당대 문인들과 반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군사 정부는 8월 시위대 진압을 명목으로 무장군인을 대학에 투입했다. 9월 6일부터는 고려대에 무기한 휴교령까지 내렸다. 조 시인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학생들이 하루빨리 공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직하는 것이)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다”라고 썼다.
이 사직서는 1968년 5월 조 시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고려대 연구실에 그대로 남겨졌다. 그대로 묻힐 뻔했던 이 자필 서류는 홍 전 총장이 연구실을 정리하다 발견해 50년 넘게 보관해 왔다고 한다. 11일 좌담회에서는 “이 사직서는 제자들을 위해서는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조 시인의 결연한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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