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가 만든 음식, 집에서도”…코로나 시대 ‘호텔 패러다임’ 변신 중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30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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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업계가 내국인 고객을 공략하기 위한 다양한 투숙 상품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외국인 비즈니스 고객 수요가 바닥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8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6만8797명으로 지난해 동월 대비 95.7% 줄었다. 결국 내국인 투숙객이 유일한 활로로 떠오르면서 이들을 붙잡기 위한 호텔 패러다임의 변화는 업계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 재택근무, 사교육 수요 노린 상품 개발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A 씨(35·여)는 최근 한 달여 간 집 근처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버지가 올해 9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된 ‘호텔 살이’였다. 숙박료는 하루에 6만 원꼴. 장기 투숙 의사를 밝히자 정상가에서 50% 수준으로 할인된 금액을 제시받았다. 호텔 피트니스와 사우나, 주차는 무료로 이용 가능했다.

그는 “취사가 안 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호텔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며 “아버지가 최근 코로나19 치료를 받고 최종적으로 음성 판정을 받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돼 다행이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기분전환 차원에서 비정기적으로 장기 투숙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A 씨처럼 코로나19 이후 활성화된 재택근무 수요를 노린 장기 투숙, ‘재텔(재택+호텔·在tel)’ 또는 ‘대실(데이유즈)’ 패키지 상품 개발은 호텔 업계의 대표적인 변화 중 하나다. ‘워크케이션(Work+Vacation)’ 상품도 같은 맥락이다. 호텔은 잠을 자야하는 장소라는 기존의 틀을 깨고 언제든 들러서 일을 하고 나올 수 있는 공간,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를 꾀한 것이다.

부티크 호텔 레스케이프에서는 지난달 1일부터 12월 30일까지 두 가지 워크케이션 객실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오전 8시 체크인 해 당일 오후 8시 체크아웃이 가능한 업무형 상품과 업무를 마친 후 다음 날 낮 12시까지 머무를 수 있는 휴식형 상품이다. 각각 12시간, 28시간을 객실에 머무를 수 있어 투숙객의 목적에 따라 이용 가능하다. 레스케이프 영업지원팀 장경일 팀장은 “업무 공간으로서 호텔을 선택해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려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의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스위스 그랜드 호텔(구 그랜드 힐튼 서울)도 재택근무 직장인 및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객실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최대 11시간 객실에서 머무르는 패키지로 주중에만 활용할 수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타임스퀘어 호텔도 36시간 동안 재택근무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36시간 패스’ 패키지를 내년 2월까지 선보인다.

아예 투숙 기간을 늘려 호텔을 집처럼 만드는 장기투숙 상품도 나오기 시작했다. 앰배서더 호텔 그룹이 운영하는 ‘이비스 앰배서더 명동’과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서울 강남’도 각각 한 달 단위 장기투숙 패키지를 올해 처음 선보였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이비스 스타일 앰배서더 서울 강남의 경우 매년 방학 시즌 급증하는 전국 학생과 학부모의 사교육 수요를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전후해 열리는 대치동 대형 학원들의 각종 입시설명회 기간에는 장기 투숙 수요가 극대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 호텔 셰프가 만든 음식, ‘드라이브스루’, ‘배달’ 가능


다양한 ‘투고(TO GO)’ 메뉴 개발은 호텔 업계 변화의 또 다른 한 축이다. 호텔 셰프가 만든 요리를 배달이나 드라이브스루 등을 통해서 손쉽게 맛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배달 서비스 플랫폼을 통한 투고 메뉴 배달은 코로나19 시대에 호텔 매출 증대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특급 호텔과 모텔을 구분 짓는 기준이 됐던 ‘대실’ 도입에 이어 투고 서비스는 호텔 업계의 큰 변화 중 하나로 꼽힌다.

서울 중구에 살고 있는 회계사 이모 씨(42)는 최근 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집에서 치렀다. 메인 메뉴는 레스케이프 호텔 중식당 ‘팔레드 신’ 요리였다. 칠리 새우 등 중국 요리를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호텔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그는 이 식당의 드라이브스루 서비스를 이용했다. 이 씨는 “코로나19 감염 우려 없이 집에서 호텔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것에 대해 부모님께서 기뻐하셨다. 종종 이용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레스케이프 호텔은 올해 4월 테이크 아웃과 드라이브스루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고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여름 성수기에 테이크아웃 매출은 전체 매출의 7%를 차지할 정도다.

배달에도 적극적이다.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의 ‘타볼로 24’는 셰프의 홈 다이닝 세트를 담은 ‘JW 안식 투고’를 배달의 민족을 통해 호텔 기준 반경 3.5km 이내 거주하고 있는 고객에게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특제 소스를 더한 소, 돼지 양념구이 등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 있는 메뉴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글래드 여의도도 배달 서비스 플랫폼인 쿠팡이츠와 배달의민족을 통해 프리미엄 뷔페 레스토랑 ‘그리츠(Greets)’의 다양한 메뉴를 집에서 맛볼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츠 투고 박스’로, 양식 일식 중식 등을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치맥(치킨+맥주)’도 호텔에 등장했다. 서울드래곤시티는 호텔 셰프가 만든 치킨을 주문 후 픽업해 바로 객실에서 즐기는 ‘메가 치맥 박스’를 선보이고 있다. 객실에서 치킨을 전화 주문하면 상품이 준비된다.

● 요가, 다도 등 색다른 체험 제공

요가, 숲 산책 등 코로나19 사태 이후 핫한 키워드로 떠오른 ‘힐링’을 주제로 한 웰니스 상품도 경쟁적으로 출시되고 있다. 서울 신라호텔은 최근 요가·다도 프로그램을 담은 패키지 상품을 내놨다. 고객이 야외 공원인 ‘조각 공원’에서 요가를 하거나, 호텔 내 팔각정에서 차를 맛보는 상품이다.

8년차 직장인 서모 씨(31)는 이달 중순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신라호텔의 ‘다도 패키지’를 이용했다. 지난해 일본을 방문해 맛있는 음식과 이국적인 풍경을 즐겼던 기억을 잊지 못해 대안을 찾은 것이다. 서 씨는 “오전에 새 소리를 들으며 차분하게 여러 종류 차를 맛보니 마치 일본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며 “야외에서 진행되고 또 10명 이하 인원 제한이 있는 소규모 형식인 점 등 감염 우려가 적어 안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외여행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의 실험도 이색적이다.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해외 현지의 분위기를 자국 내 호텔에서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27일부터 JW 메리어트호텔 서울이 태국 호텔로 변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투숙객들이 마치 태국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호텔에 들어서면 태국 전통의상을 입은 직원들이 태국말로 인사한다. 객실도 태국풍으로 꾸민다. 수영장에서는 태국의 코코넛과 샐러드 등을 먹고 태국 요가도 할 수 있다. 같은 기간 인도네시아의 수도에 있는 ‘JW 메리어트 자카르타’는 ‘JW 메리어트 호텔 서울’로 변모한다.

특급 호텔들의 각종 변화는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수요에 기대 영업을 해왔던 특급 호텔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내국인 고객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내국인 중심 서비스를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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