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매’ 못 든다는데, 우리 아이 어떻게 키울까[박성민의 더블케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3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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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민법 915조에 명시된 부모의 자녀에 대한 징계권의 한 구절이다. 이 조항은 자녀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선 ‘사랑의 매’를 들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받아들여져 왔다. 아동보호 기관 등에서 “체벌에 관대한 문화가 아동학대의 시작”이라며 삭제를 요구해 온 조항이기도 하다.

이달 13일 국무회의에서 이 징계권을 삭제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공은 국회로 넘어왔다. 큰 이변이 없다면 민법 제정 62년 만에 부모의 징계권은 사라진다. 체벌 금지를 명문화 한 세계 61번째 국가가 되는 것이다. 아시아에선 몽골, 네팔, 일본에 이어 4번째다.

하지만 징계권을 없앤다고 하루아침에 체벌이 사라질까. 전문가들은 체벌을 없애는 첫 발을 떼었을 뿐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은다. ‘사랑의 매’를 옹호하는 부모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익숙한 훈육 방식을 바꾸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체벌을 금지한 뒤에도 가정 내 체벌이 크게 줄어들지 않은 나라도 있다.

체벌 금지법이 통과된 뒤 스웨덴의 체벌에 대한 인식(왼쪽 그래프)과 체벌 부모 비율은 크게 낮아졌다.
체벌 금지법이 통과된 뒤 스웨덴의 체벌에 대한 인식(왼쪽 그래프)과 체벌 부모 비율은 크게 낮아졌다.


● 체벌 근절, 입법화 이후가 더 중요

눈여겨봐야 할 사례는 세계 최초로 체벌을 금지한 스웨덴이다. 1979년 스웨덴 의회는 아동 체벌금지를 명문화한 ‘어린이와 부모법(Children and Parents Code)’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259표, 반대 6표, 기권 3표.

금지된 것은 매를 들거나 손찌검을 하는 신체적인 체벌만이 아니었다. 폭언이나 위협 등 정서적 학대로 여겨지는 행위도 포함됐다. 이를 어기면 최대 10년의 징역형 등 무거운 처벌을 받도록 했다.

법 개정의 효과는 컸다. 체벌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모의 비율은 1960년대 50%대에서 2010년대엔 10% 아래로 떨어졌다. 실제 체벌을 하는 가정도 1960년대 90%대에서 1970년대 약 50%, 법 시행 직후인 1980년대는 30%대로 감소했다. 2010년대 조사에선 10% 초반까지 급감했다.

이는 스웨덴 정부가 법을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부모의 인식 변화에 적극 나선 덕분이다. 스웨덴 정부와 국제 아동권리보호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이 2014년 펴 낸 ‘체벌 폐지 후 35년’ 보고서를 보면 당시 TV와 인쇄물 등 이용 가능한 모든 홍보 수단이 동원됐다. 아침 식탁에 오르는 우유팩에는 법 개정의 목적을 알리는 만화가 실릴 정도였다. 독일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홍보 책자도 발행돼 체벌 금지 필요성을 널리 알렸다.

‘체벌금지를 위한 국제계획(Global Initiative to End All Corporal 
Punishment of Children)’이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담긴 체벌 금지 국가 현황. 노란색이 체벌 
금지국가(58개국), 하늘색은 체벌 금지 입법화를 준비 중인 국가(30개국)다. 짙은 파란색은 일부 영역에서만 체벌이 금지된 곳,
 보라색은 체벌이 금지되지 않은 국가다.
‘체벌금지를 위한 국제계획(Global Initiative to End All Corporal Punishment of Children)’이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담긴 체벌 금지 국가 현황. 노란색이 체벌 금지국가(58개국), 하늘색은 체벌 금지 입법화를 준비 중인 국가(30개국)다. 짙은 파란색은 일부 영역에서만 체벌이 금지된 곳, 보라색은 체벌이 금지되지 않은 국가다.


법으로 체벌을 금지했어도 효과가 적었던 나라도 있다. 오스트리아(1989년)와 독일(2000년)도 비교적 일찍 체벌을 금지한 나라다. 하지만 체벌의 위험성을 알리는 등 부모에 대한 홍보와 교육은 스웨덴만큼 적극적이지 않았다. 2009년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얼굴을 가볍게 때리는 체벌 경험은 스웨덴이 14%였던 반면, 오스트리아는 50%, 독일은 약 43%로 높게 나타났다. 체벌 금지 입법만큼이나 그 필요성과 체벌 없이 아이를 기르는 법을 부모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스웨덴의 높은 복지 수준이 체벌 금지가 정착되는데 도움이 됐다는 의견도 있다. 2016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스웨덴의 강력한 아동학대 금지정책’ 보고서는 △최대 480일의 유급 육아휴직 △18세 미만까지 지원되는 아동수당 △아동 양육 가정에 지급되는 주택보조금 등 긍정적인 육아 환경이 아동 체벌을 줄인 것으로 분석했다. 아동 학대 방지의 책임이 부모뿐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 모든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 자녀 정신건강 해치는 ‘사랑의 매’

하지만 부모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경제적 여유가 생기더라도 체벌은 근절되지 않는다. 유미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정신적,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안 때리고, 그 반대라서 체벌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체벌의 가장 큰 원인은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과 ‘수평적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부모의 훈육 방법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유 교수는 자녀와의 경험을 소개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이 어느 날 “학교가 재미없다”며 무단으로 조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와 싸워서 혼난 게 서러웠고, 학교에서 시시하게 캐스터네츠 치는 법을 배우는 것보다 혼자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돌출 행동에 화가 났지만 유 교수는 딸을 혼내는 대신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OO이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거구나. 훌륭한 사람이 되겠어. 아빠도 회사에 가서 친구들과 지내지. 그런데 모든 친구들과 잘 지낼 수는 없겠지. 학교에선 마음이 안 맞는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도 배우는 거란다.” 유 교수는 “아이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수평적 대화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체벌은 훈육 효과가 있다는 고정관념도 바뀌어야 한다. 지난해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설문조사에서 ‘죽고 싶은 생각을 한다’고 답한 아동의 비율은 체벌 경험이 있는 아동(15.3%)이 체벌 경험이 없는 아동(7.7%)의 두 배 가까이 많았다.

2016년 미국 텍사스대 엘리자베스 거쇼프 교수가 체벌 효과를 분석한 1961~2013년의 111건을 분석한 결과도 흥미롭다. 유의미한 연구 79건 중 78건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체벌을 받았을 때 인지 능력과 자존감이 낮아지고, 반사회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 “감정 격해졌을 땐 열까지 세어 보자”

체벌을 금지시킨 뒤에는 이런 질문이 남는다. “그럼 아이가 혼날 만할 잘못을 저질렀을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조사마다 다르지만 대개 부모의 70% 이상은 자녀 훈육을 위해선 체벌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체벌을 일찌감치 금지시킨 나라에서 강조하는 것이 ‘긍정적 훈육(positive parenting)’이다. 당장 아이의 행동을 교정시키려는 단기적 목표가 아니라 장기적 목표, 즉 ‘아이가 어떤 성인이 되기를 바라는지’에 집중하는 훈육이다. 아이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이 때 필요한 게 부모의 인내와 절제다. 긍정적 훈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백지은 숲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은 “감정이 격해졌을 때 아이를 나무라는 것을 피해야 한다”며 “이는 훈육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감정적 대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신 크게 심호흡을 하거나 세수를 하면서 화를 다스리는 것이 좋다. 잠시 밖으로 나가거나,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숫자 열까지 세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부모의 감정적 대응이나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 있어 정답은 없다. 다만 ‘때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는 많은 나라들이 공감하고 있다. 도미향 남서울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부모가 되면 아이는 당연히 기를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부모가 되는 것도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운전면허를 딸 때 안전교육을 받는 것처럼 출생신고 등 일정 시점에 체벌 없이 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의무교육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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