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물고문 알린 東亞 1면 평생 못잊어”

조종엽 기자 입력 2020-07-01 03:00수정 2020-07-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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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100주년 ‘동감_백년인연’
검안 후 진실 증언한 오연상 원장
6월 민주화운동 도화선으로, 고교생 때는 동아일보에 격려광고
1987년 박종철 열사의 시신을 검안하고 경찰의 물고문 흔적을 증언했던 오연상 오연상내과 원장이 30일 서울 종로구 신문박물관에서 그해 1월 19일 동아일보 지면을 가리키고 있다. 오 원장은 “저 날의 신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윤상삼 동아일보 기자(1957∼1999)가 마지막에 ‘조사실 바닥에 물기가 있었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답했더니 그대로 신문에 실리더군요.”

1987년 박종철 열사를 검안했던 오연상 원장(63·오연상내과)은 그해 1월 15일 근무하던 중앙대용산병원 진료실에 찾아온 윤 기자를 떠올렸다. 오 원장은 당시 윤 기자에게 경찰의 물고문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증언을 했고, 동아일보가 이를 보도하면서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경찰의 거짓말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로써 6월 민주항쟁의 서막이 올랐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소중한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동감_백년 인연’의 일환으로 오 원장에 대한 감사 행사를 30일 열었다. 오 원장은 1987년 당시 언론 보도 등이 전시된 서울 종로구 신문박물관을 둘러봤다.


당시 박 열사의 시신을 검안한 뒤 오 원장은 기자들 앞에서 “복부 팽만이 심했으며, 폐에서 수포음(水泡音)이 들렸다”고 증언했다. 오 원장은 이날 “의학적으로는 수포음이 물고문과 직접 관계있는 건 아니지만 일반인에게는 물고문을 연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했던 말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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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청 동아일보 부사장은 본보가 오 원장을 1987년 12월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던 지면과 오 원장의 과거 사진이 담긴 액자, 창간 100주년 기념 오브제 ‘동아백년 파랑새’ 등을 증정했다.

오 원장이 고교 3학년 시절 유신정권의 언론 탄압을 겪던 동아일보에 낸 격려광고도 액자에 담았다. 이 격려광고 문구는 ‘둔마(鈍馬)의 채찍은 국민이!’, 명의는 ‘중앙고 광고 낸 반’이었다. 오 원장은 “‘중앙고 3학년 7반’이라고 내려다가 혹여 담임선생님이 고초를 겪을까 걱정돼 익명으로 했다”고 회고했다. 본보는 당시 격려광고를 냈던 시민들에게 제공한 기념 메달을 복원해 오 원장에게 선물했다.

유심히 신문박물관의 여러 전시물을 관람하던 오 원장의 발걸음이 1987년 1월 19일자 동아일보 지면 앞에서 멈췄다. 1면 톱 제목은 ‘물고문 도중 질식사’. 동아일보가 6개 면을 고문 관련 고발 기사로 가득 채운 날이었다. 오 원장은 “저 날의 신문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고 했다. 이후 본보는 대대적인 고문 추방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사건의 축소 은폐 조작을 고발했다.

“내가 박종철 열사를 살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죄책감이) 커요. 그 일에 관해서는 의사로서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해 6월 29일까지 사태는 수많은 우연들이 거의 기적처럼 진행됐고, 그분의 죽음은 우리나라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의 순수한 의지가 모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동아일보#박종철#윤상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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