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요리하고, 먹고, 위안 얻고…연희동 파란 담장 집 요리 교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5일 16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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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코 선생님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1층 요리 교실에서 요즘 사용하는 식재료를 보여줬다. 한국 이름이 그의 이름을 
한자음대로 읽은 ‘중천수자’여서 ‘수자 언니’로도 불린다. 올 3월 유튜브 ‘수자튜브’를 개설한 그는 “코로나 사태로 수업을 
못하게 되니 온라인 수업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히데코 선생님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1층 요리 교실에서 요즘 사용하는 식재료를 보여줬다. 한국 이름이 그의 이름을 한자음대로 읽은 ‘중천수자’여서 ‘수자 언니’로도 불린다. 올 3월 유튜브 ‘수자튜브’를 개설한 그는 “코로나 사태로 수업을 못하게 되니 온라인 수업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함께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도 같이 하는 요리 수업이 있다. 때로 와인, 사케 같은 술도 곁들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 추억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열고 위안을 얻는다. ‘히데코 선생님의 연희동 요리 교실’이다.

정확히는 한국에 귀화한 나카가와 히데코(中川秀子·53) 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운영하는 ‘구르메 레브쿠헨’이다. 레브쿠헨은 생강쿠키를 뜻하는 독일어로 그에게 맛의 놀라움을 깨닫게 해줬다. 구르메는 미식가다.

유명 요리 선생님으로, 일본 가정식 요리법을 담은 ‘히데코의 일본 요리교실’(맛있는 책방·4만5000원)을 최근 출간한 나카가와 씨를 4일 자택에서 만났다. 연희동 단독주택 골목에 자리한 파란색 담장의 2층 집이었다. 마당에는 빨간 장미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카가와 씨가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하며 요리 교실로 사용하는 1층으로 안내했다. 그가 얼음을 가득 넣은 녹차를 건넸다. ‘히데코의 일본 요리교실’은 계절별 음식을 실제 계절에 맞춰 각각 만드느라 요리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요즘은 365일 모든 식재료를 구할 수 있지만, 가급적 제철 재료를 사용해요. 맛이 훨씬 좋거든요. 수업할 때도 특별한 경우 외에는 제철 재료를 쓰려고 해요.”

‘히데코의 사계절 술안주’ ‘지중해 요리’ ‘셰프의 딸’ 등 여러 요리책과 에세이집을 낸 그는 이번 책을 숙성시키듯 만들었다고 했다.

“10년이 지나도 계속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담으려 했어요. 한국은 요리와 식재료의 유행이 아주 빠른데요, 오래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고민했죠.”

간장, 청주, 식초 등 기본 양념을 고르는 법도 정리했다. 요리에 얽힌 추억과 에피소드를 구어체로 실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일본에서 절인 매실을 만드는 ‘우메보시 담그기’는 한국의 김장과 같은 의미로, 일본에 계신 어머니는 이제 하지 않는데 한국에 있는 자신이 열심히 하는 게 묘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감자고로케(크로켓)를 소개할 때는 고교 시절 친구들과 고로케를 사서 후후 불며 먹은 기억을 곁들인다.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와 플로리스트인 어머니는 제가 셰프가 되길 원하셨지만 어릴 때는 음식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학에서도 언어학, 국제관계론을 전공했고요. 20대에 동독, 서독, 스페인에 살면서 각 나라의 요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비교언어학을 공부하기 위해 1994년 한국에 왔고 이후 연세대 국문과 석사를 마쳤다.

“동독, 서독에 살았기 때문인지 분단국가인 한국에 관심이 생겼어요. 저처럼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의 엄마가 됐죠. 기자, 번역가를 하다가 요리할 때 너무나 즐거워지는 스스로를 발견했어요.”

일본인으로는 처음 궁중음식연구원에서 3년간 공부했다.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는 걸 좋아하는 그는 지인의 권유로 2008년 요리 교실을 열었다. 지금은 한 해 수강생이 150여 명이나 된다. 한 번 수업을 들으면 짧게는 2년, 길게는 7~8년간 계속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수강 신청을 하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혼밥’ ‘혼술’의 시대라고 하지만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수강생들을 보며 확인할 수 있어요.”

그는 일찍 오는 수강생과 재료 다듬기를 같이 하고 설거지를 할 때는 와인 잔, 나무 도마 닦는 법도 하나하나 가르친다.

“요리법만 알려주기보다 요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익혀 스스로 요리를 즐기게 하고 싶거든요.”

수업은 학기제로 3~6월, 9~12월에 한다. 수강생은 한 달에 한 번 강의를 듣는다. 요리부터 뒷정리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 걸린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달부터 드문드문 수업하고 있다.

그는 요리를 하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늦은 시간 퇴근하셔서 훈제 연어, 바게트 등 간단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드시던 아버지가 생각나요. 어머니가 오랜 세월 묵묵히 해주셨던 집밥에 대한 그리움도 짙어졌고요.”

그는 아버지의 레시피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수업이 없는 기간에는 재료 산지를 다니고 음악가, 도예가 등과 협업하는 행사도 한다.

“셰프, 요리 연구가보다 ‘키친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어요. 부엌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다루니까요. 요리를 통해 다양한 분들과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그는 요리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정성껏 만든 요리는 모두를 평온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요리의 맛과 그에 담긴 마음이 국경, 이념, 세대를 초월해 계속 이어지는 데 제가 보탬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겁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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