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지나 연출이 그린 마지막 조선시대 ‘잃어버린 얼굴1895’·‘곤 투모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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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0월 21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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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서울예술단 제공
사진제공=서울예술단 제공
조선왕조 막바지를 배경으로 한 이지나 연출의 두 작품이 동시에 무대에 올랐다. ‘잃어버린 얼굴 1895’와 ‘곤 투모로우(Gone Tomorrow)’다. 두 작품은 모두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 시절에 있었던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서울예술단과 함께 하는 ‘잃어버린 얼굴 1895’는 후대의 명성황후 사진의 진위 여부와 을미사변 당시 민비가 아닌 궁녀가 죽었다는 야사에 착안해 만든 작품으로 2012년에 초연에 이어 세 번째 막을 올렸다. ‘곤 투모로우’는 ‘김수로 프로젝트’ 19탄으로 오태석의 원작 ‘도라지’를 이지나 연출이 각색해 완성한 작품이다.

두 작품은 외형적으로는 무대 위 ‘명성황후’의 존재의 유무와 고종을 향한 이지나 연출의 다른 시각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각각의 작품에는 지금까지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보지 못했던 명성황후의 고뇌가 들어갔고, 나라의 또 다른 내일을 기다렸던 한 혁명가의 꿈을 그렸다.

● 김선영이 새로 그린 명성황후 ‘잃어버린 얼굴 1895’

세 번째 막을 올린 ‘잃어버린 얼굴 1895’의 가장 큰 변화는 주인공이다. 그동안 ‘명성황후’를 맡아온 차지연은 임신 중이라 이번 공연에는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서울예술단은 타이틀롤 캐스팅에 주력했고 뮤지컬스타 김선영이 새로이 타이틀롤을 맡았다. 김선영 역시 출산 후 첫 작품이다.

지금까지 드라마, 뮤지컬 등 여러 장르가 각자의 시선으로 ‘명성황후’를 다뤄왔다. ‘잃어버린 얼굴 1895’ 역시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그렸지만 이지나 연출가는 또 다른 명성황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지나 연출이 프레스콜에서 “명성황후의 개인의 고뇌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듯,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대립하는 모습과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을 통해 기존에 우리가 봐왔던 명성황후의 모습도 보이지만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주인공의 내면을 더 다뤘다.

명성황후의 사진을 찾는 명성황후의 동생 민영익의 등장으로 시작하는 극은 어린 민자영이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궐로 들어가는 모습부터 죽는 모습까지 담는다. 출산 후 김선영이 연기하는 명성황후는 차지연이 표현하는 명성황후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동안 차지연이 모든 감정을 쏟아내는 편이었다면, 김선영은 억누르는 편을 택해 차이를 보인다.

또한 여태껏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이미지는 없다. 앞서 말했듯, 명성황후의 겉모습보다는 그의 복잡했던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새야새야’, ‘갑신정변’, ‘악몽’ 장면 등은 당시 시대와 맞물려버린 그의 내면을 다양하게 표현해냈다. 특히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악몽을 꾸며 그가 죽인 김옥균과 민초들이 나오는 장면은 오롯이 명성황후의 관점에서 무대를 꾸몄지만 미화하지 않은, 적정한 수준에서 만든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김선영은 프레스콜에서 “명성황후가 순종 이전에 아이를 두 번 잃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상상만 했을 텐데, 만 7개월 둔 아이를 둔 엄마로서 명성황후를 보니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 말했듯, 아이를 잃은 명성황후가 액자에 있는 아들 사진을 보는 잠깐의 장면은 극의 인상적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잃어버린 얼굴 1895’를 통해 관객들은 그동안 몰랐던 명성황후의 또 다른 모습을 찾게 될 수도 있다.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사진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사진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주)

● ‘명성황후’ 아닌 개화파 ‘김옥균’에 주목한 ‘곤 투모로우’

지난해 프로젝트박스 시야 리딩 공연 당시 있었던 ‘명성황후’ 캐릭터를 뺀 ‘곤 투모로우’는 고종, 김옥균 그리고 홍종우 등 주요캐릭터를 모두 남성으로 채우고 느와르 옷을 입혔다.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단 한 장면만 나왔던 김옥균 캐릭터를 중심에 두고 갑신정변(1884), 이후 홍종우의 김옥균 암살, 그리고 김옥균의 뒤를 이어 개화파를 이끄는 홍종우의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잃어버린 얼굴 1895’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조선 말기다.

‘곤 투모로우’는 액션 느와르를 입힌 시대극이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1막 갑신정변 장면과 2막에 일본제국을 대항하는 개화파 젊은이들의 대항 등 액션 장면은 장르물로서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슬로우 모션’을 홍종우를 맡은 배우가 직접 연기로 해 신선함도 돋보인다. 하지만 정교함이 더해졌다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여전히 평가가 엇갈리는 김옥균을 혁명가로 표현한 것도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그는 혁명가보다 친일파로 인식된 것이 사실이다. 이지나 연출가는 프레스콜 당시 “고증에 집착하면 다큐, 영화, 드라마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 오태석 선생님의 원작 자체가 역사를 비튼 것”이라고 밝히며 그가 혁명가로 표현된 이유를 밝혔다. 무대에서는 김옥균과 홍종우의 등장이 주로 이뤄지지만 작품 속 안에는 역사책에 이름 하나 새겨지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짙게 깔려있다. 극 중에서 “내가 (혁명을 일으키는 중심의 인물이) 아니면 또 어떤가”,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하는 날까지”라는 대사만 보더라도 이지나 연출가가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곤 투모로우’는 장르물로서, 한 시대를 다른 주제로 풀어냈는데, 성공적인 시도로 보인다. 다만 초연이라 무대나 극의 흐름은 어색한 곳이 있어 수정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또한 의상 감독이 ‘잃어버린 얼굴 1895’와 같은 감독이라 보는 재미는 덜해 아쉬움이 있다. 11월 6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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