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백의 발상의 전환]<5>위기의 체험: 차별과 분리가 초래하는 위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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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김영진 작가
믿기지 않는 재해가 지구의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평온한 휴양지에 느닷없이 쓰나미가 몰려오고 안전하게 여겨지던 고층 빌딩에 비행기가 날아와 박혔다. 대지진의 괴력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위기를 대체로 남의 일이라 느낀다.

안전하다고 확신하고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기에 우리는 오늘도 도시의 건물을 오간다. 그런데 만약 내 발 밑의 견고한 바닥에 갑자기 큰 균열이 생긴다면?

그런 위기를 체감하게 한 미술작업이 있었다. 2007년 영국 런던의 대표적 현대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의 콘크리트 바닥에 지진 같은 균열이 생겼다. 콜롬비아 작가 도리스 살세도의 ‘십볼렛(Shibboleth·2007년·그림)’은 미술관 입구의 거대한 터빈 홀 바닥에 167m 길이의 크랙을 만든 설치작업이다. 홀 전체에 넓고 깊게 퍼진 균열은 바닥을 도려내고 시멘트 덩어리로 다시 맞춘 것이다.

2000년에 설립된 테이트 모던은 21세기 미술계에 소위 ‘공장 리모델링’이란 유행을 이끈 파격적 건축이다. 하얀 벽과 고급스러운 내부구조가 특징이던 기존 미술관의 통념을 깬 셈이다.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철근과 시멘트의 골조가 유난히 든든한 건물이기에 살세도 작업의 충격은 더했다.

이곳에서 ‘십볼렛’은 6개월 동안 전시됐다. ‘십볼렛’이란 말의 출처는 성경의 사사기 12장이다.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계급, 인종을 구별 짓고 배척하는 데에 사용되는 말이나 관습을 지칭하는 의미라 한다.

살세도의 ‘십볼렛’은 경계의 깊은 골을 보여주고 이주(移住)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며 차별의 폭력을 폭로한 것이다. 서로 다르다고 구별하고 증오하는 것은 우리의 안전한 삶을 위협하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십볼렛’은 이러한 경계 짓기로 더욱 위험해진 오늘의 세계를 누구든 실감하게 한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전영백 홍익대 예술학과(미술사학) 교수
#재해#십볼렛#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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