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155마일을 가다]1부<2>철원 월정리역과 제2땅굴

동아일보 입력 2010-03-22 03:00수정 2010-03-22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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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잇장처럼 구겨진 열차 잔해… 60년전 폭격소리 들리는 듯

민통선 안 드넓은 철원평야
부서진 30, 40년대 건물 즐비
철원역엔 녹슨 신호기만…
北에도 군사적 요충지인 철원
2496m 제2땅굴이 말해줘
전쟁의 상흔 강원 철원군 민통선(민간인통제구역)의 월정리역에 남아 있는 6·25전쟁 당시 열차의 잔해. 금강산으로 향하던 중 폭격을 맞고 그대로 멈춰 60년의 세월을 견디어 왔다. 월정리역은 간이역의 낭만을 잃고 전쟁과 분단의 상징이 됐다. 철원=이훈구 기자
강원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 뼈대만 남은 노동당사 앞을 지나 민통선(민간인 통제구역)에 들어섰다. 드넓게 펼쳐진 철원평야. 그러나 평야 곳곳엔 온통 전쟁의 상흔이었다.

1946년 북한 정권은 이곳 철원에 노동당사를 지었다. 당시 철원은 북한 땅이었다. 광복 직후 분단과 함께 북한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북한 공산당이 노동당사를 지은 것은 철원 주민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대남 공작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공산당은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강제 모금까지 했다. 공산당에 협조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구금과 고문을 당해야 했다.

19일 오후 제6사단 민통선 안으로 들어갔다. 영하의 찬바람이 외투 깃을 파고들었다. 중부전선의 봄은 아직 멀었다. 철원평야 길을 따라가니 부서진 건물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철원읍 외촌리의 농산물검사소, 얼음창고, 철원 제2금융조합…. 1930, 40년대에 건축됐으나 모두 6·25전쟁 때 부서진 건물들이다. 제2금융조합 건물은 거의 다 부서져 건물 터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철원은 강원도에서 철도가 가장 먼저 들어선 곳. 일제는 1914년 9월 서울에서 원산까지 221.4km 구간에 경원선을 부설했다. 철원읍 외촌리 철원평야의 한복판에 있던 철원역은 경원선의 중심이었다. 또한 금강산행 전기 철도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금강산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전철을 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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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철원역은 80여 명이 근무했을 정도로 성황이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건물은 모두 파괴됐고 지금은 빈터만 남아 있다. 50m 정도의 철로와 침목이 놓여 있고 플랫폼에 사용했던 콘크리트 조각 몇 개, 녹슨 신호기가 외롭게 서 있을 뿐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철원은 북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지뢰가 많다. 철원역 터 바로 옆에도 섬뜩한 지뢰 경고판이 있다. 붉은색이 선명하다. 때마침 고라니 한 마리가 뛰쳐나와 쏜살같이 길을 건너 달아났다.

철원역 터에서 더 들어가면 월정리역이 나온다. 경원선의 간이역이었던 월정리역은 남방한계선 바로 앞에 있다. 1950년 6월 금강산을 향해 달리던 열차가 폭격을 맞은 채 멈춰 섰던 곳. 현재 여기엔 당시 폭격당한 열차의 잔해 일부분이 남아 있다. 종잇장처럼 무참하게 구겨진 철제 객실 차량. 그 처절한 잔해 틈새로 돌이 뒹굴고 거기 작은 나무들이 힘겹게 자라고 있었다. 그 옆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내용의 표지판이 쓸쓸히 서 있다.

철원지역 민통선 내부엔 6·25전쟁의 상흔이 많이 남아 있다. 1975년에 발견된 북한 제2땅굴 입구. 철원=이훈구 기자
철원은 6·25 최대 격전지였다. 그만큼 군사적 요충지라는 말이다. 제2땅굴이 이를 웅변한다. 요충지를 공략하기 위해 북한이 뚫었던 땅굴이다. 제2땅굴은 제1땅굴이 발견된 이듬해인 1975년 3월에 확인됐다. 지상으로 전해오는 미세한 진동을 포착하고 40여 개의 시추공을 판 뒤 북한의 두 번째 땅굴을 발견한 것이다. 병사들이 감지했던 진동은 북한군이 땅속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릴 때 발생한 것이었다. 북한 땅굴임을 확신한 병사들은 갱도를 파내려갔고 땅굴 안에 있던 북한군 소탕작전을 펼쳤다. 소탕작전 과정에서 지뢰가 터져 국군 병사 7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지표면으로부터 50∼160m 깊이에 판 이 땅굴은 총길이 2496m, 높이 2m, 너비 2m. 1시간에 약 3만 명의 병력이 통과할 수 있는 규모다. 땅굴 속에 들어가 보니 화강암 암반이 그대로 노출된 상태였다. 땅굴 속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비무장지대(DMZ)로 들어가는 셈이다. 지하수가 쉼 없이 흘러 물 흐르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땅굴 내부엔 평화통일 염원 우물이 나왔다. 북한군이 땅굴을 파면서 각종 장비를 식히기 위해 우물을 팠던 곳이다. 10여 분 걷자 철제문이 발길을 막았다. 군사분계선 300m 앞. 더는 들어갈 수가 없다. 철문 너머엔 폭약이 설치되어 있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것이다.

어둡고 습한 땅굴을 나와 탁 트인 평화전망대에 올랐다. 바로 앞에 남방한계선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는 DMZ이다. 6사단 병사들이 남방한계선 철책선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각각 2km 후방에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이 있다. 따라서 양측 경계초소(GP)의 초소 간 거리는 기본적으로 4km. 하지만 이 지역엔 양측 GP 사이의 거리가 900m에 못 미치는 곳도 있다.

평화전망대 서북쪽 DMZ엔 궁예가 태봉국을 꿈꾸었던 궁예도성의 터가 있다. 한가운데에 북한의 낙타고지가 있고 이 고지를 넘으면 북한의 평강 땅이다. 평화전망대 동북쪽은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60여 년 전 월정리역을 출발한 금강산행 열차는 이곳을 지났다. 월정리(月井里)는 ‘달빛 비치는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시정(詩情)이 넘치는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지금은 전쟁의 상흔이 깊이 새겨진 긴장의 땅. 월정리의 낭만을 느끼기에 이곳의 봄날은 여전히 차가웠다.

철원=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취재 협조: 육군 제6사단, 육군본부

▼ “실탄없어 탱크에 맨손 대적… 대검으로 더덕 캐 연명”
당시 6사단 참전 신원근 씨
“편지 써도 집에 배달안돼
아내는 내가 죽은줄 알기도”


“6·25전쟁 초기에는 M1 소총을 가지고 싸웠었지. 그러나 총과 실탄 모두 충분하지 못했어. 기본적으로 총은 비상시에만 써야 한다는 생각에 제대로 쏘지 못했어. 몇 발 쏘면 실탄이 없어서 퇴군하기도 했으니까….”

1950년 6월 25일 당시 육군 제6보병사단 7연대본부 소속 일등중사(하사)였던 신원근 씨(83·사진)는 서울 집에서 전쟁을 맞았다. 그는 6월 1일부터 병가를 받아 집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이날 오전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귀대 명령을 듣고 성동역에서 강원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춘천에는 26일 인민군이 들어왔지. 30일까지 춘천에서 버티다 7월 중순에는 홍천까지 밀렸어. 홍천에도 탱크가 많이 들어왔지. 8월에는 충북 충주로 빠졌고, 8월 말에는 급기야 음성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지.”

7연대는 음성에서 맨손으로 인민군 탱크부대와 맞서 싸워야 했다. 탱크 해치(뚜껑)를 열고 수류탄을 집어넣어 10여 대를 망가뜨리는 전과를 올렸다. 이에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7연대 전 장병을 1계급 특진시켰다. 대통령 부대 표창 1호였다. 신 씨도 일등중사에서 이등상사(중사)로 계급이 올라갔다. 그러나 이런 분투에도 불구하고 국군은 9월 초까지 낙동강으로 밀렸다.

“나도 1950년 10월 낙동강에서 올라가다 전투 중 허벅지에 파편이 튀어 부상했지. 대구 제1육군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했는데, 당시에는 빨리 전방에 가서 싸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하지만 이듬해 3월까지 보충대에서 쉬어야 했고 이후 중동부 전선에 다시 투입됐다 1951년 8월 얼굴 등에 파편이 박혀 다시 병원 신세를 져야 했지.”

신 씨는 부사관 신분이었지만 당시에는 장교가 부족해 소대장 임무를 맡았다.

“보급품 조달이 제대로 안 돼서 힘들었지. 주먹밥을 먹기도 하고 대검으로 더덕을 캐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어. 미군 보급품을 얻어먹고 그랬어. 군복도 따뜻한 것을 입어 본 적이 없었지. 정말 춥고 배고팠어. 야전삽도 우비도 없어 대검으로 흙을 파서 참호를 만들었지. 편지를 써도 집에 배달이 되질 않아 아내는 내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하더군. 주변에서 아내에게 재가하라고 권유를 많이 했대.”

신 씨는 고막 파열, 대퇴부 부상 등으로 상이군인 3급 판정을 받았다. 지금도 걸을 때는 다리를 전다. 신 씨는 “1953년 휴전을 맺을 때는 한국 정부가 휴전을 반대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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