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09>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한왕 유방이 위급한 병줄에서 놓여나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은 성고(成皐)에 이른 지 이레 만이었다. 그러나
- 2005-11-10
- 좋아요 개
- 코멘트 개
한왕 유방이 위급한 병줄에서 놓여나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은 성고(成皐)에 이른 지 이레 만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대왕을 이대로 두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성고(成皐)로 모셔 상처부터 다스려야 할 것 같으니 선생
‘이상하다. 틀림없이 가슴께로 날아간 것 같은데 발가락을 맞혔다니. 그만한 거리에서 그만큼 강한 쇠뇌로 그토록
남의 신하 되어, 특히 군막에 남아 주책(籌策)을 펼치는 모사(謀士)로서 철저하기는 장량도 그 임금인 한왕 유방의
“너는 항복하면 살려준다고 속이고 사로잡은 진나라의 젊은이 20만을 신안(新安)에서 산 채로 땅에 묻었다. 그러고도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과인은 오중(吳中)에서 몸을 일으킨 뒤 크고 작은 싸움을 일흔 번이나 치렀으되
패왕 항우는 그날로 군중(軍中)에 명을 내려 그 살이 5백 걸음이나 날아간다는 강한 쇠뇌 석 장(張)을 거두어들이게
다시 초나라와 한나라가 동서 광무 꼭대기에서 서로 마주 버텨 서서 노려보는 사이에 열흘이 훌쩍 지나갔다. 손뼉
항탁(項卓)이 세 번씩이나 약을 올리며 싸움을 걸자 어지간히 참고 있던 한나라 진채에서도 마침내 움직임이 있었다.
“포악한 진나라가 망한 지도 3년, 아직도 세상이 이리 흉흉한 것은 모두가 그대와 나 두 사람 때문이다. 바라건
“대왕, 천하의 일은 아직 어찌될지 알 수 없으니, 얻기 어려운 볼모를 함부로 죽여서는 아니 됩니다. 거기다가 한
패왕은 한왕 유방의 아버지 태공(太公)을 망보기 수레(巢櫓) 위에 높이 매달았다. 망보는 수레는 새집같이 높다란
“오는 길에 군량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무어라? 군량을 빼앗겼다고? 그 장수가 누구냐? 어느 미련한 물건
“변화라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는데 변화는 무슨 변화란 말이냐?” 패왕이 퉁명스레 되물었다.
섣달의 눈보라가 온 천지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광무산의 두 봉우리 위에 세워진 한군(漢軍)과 초군(楚軍)의 진채도
한왕 유방은 막상 패왕과 마주치기만 하면 흠씬 두들겨 맞은 개처럼 꼬리를 사리고 도망쳤지만 돌아서면 그뿐이었다. 며칠
“만약 너까지 유방에게 빼앗겼다면 항양(項襄)은 말할 것도 없고 죽은 조구(曹咎)조차 용서받지 못했을 것이다.
“서광무(西廣武)는 무엇이며 혈창(穴倉)은 무엇인가? 또 산봉우리가 높아도 치고 올라가면 될 것이고, 산성이 가로막아
패왕 항우가 군사를 몰아 형양 동쪽에 이르렀을 때 이미 한왕 유방은 광무산으로 물러난 뒤였다. 앞서 살피러 보낸
“그렇다면 성고로 돌아가 항왕과 싸워보잔 말이오?” 장량의 말을 들은 한왕이 왠지 질린 듯한 얼굴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