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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단독]탈북민 영어 구세주… 美서 달려온 소녀 선생님

입력 2017-08-04 03:00업데이트 2017-08-0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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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째 한국서 봉사활동 케이양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공원에서 미국 고교생인 케이 양(왼쪽)이 탈북자 여모 씨와 영어로 대화하고 있다. 케이 양은 매년 여름 한국을 찾아 탈북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한국 사람들은 다들 커피(coffee)라고 하는데 저는 ‘코피’ ‘코피’ 이랬죠.”

한국 생활 14년째인 탈북자 여모 씨(27)가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점원은 한 번 더 쳐다보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에 온 여 씨에게 영어는 ‘공포 그 자체’였다. 중고교 시절 영어시간에는 우스꽝스러운 발음과 억양 때문에 놀림거리가 됐다. 영어 단어를 말했다가 탈북자 출신이라는 게 탄로날까 봐 친구들과의 대화에도 잘 끼지 못했다. 결국 ‘영포자(영어를 포기한 사람)’의 길을 걸었다. 2011년 서울의 대학에 진학했지만 할 수 있는 영어는 인사말 정도였다. 여 씨는 “영어를 못해 한국 사회에 섞이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가 ‘오아시스’를 만난 건 2015년 여름이었다. 열네 살 금발 소녀 케이 영스트롬 양(현재 16세)이 그에겐 희망의 시작이었다. 고려대 국제하계대학 초빙교수인 부모(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심리학과 교수)를 따라 한국에 온 케이 양이 탈북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준 것이다.


9년째 여름방학마다 한국을 찾으며 북한과 탈북자 인권에 관심이 생긴 케이 양의 부모는 3년 전 국내 탈북자 인권단체인 피에스코어(PSCORE)의 회원이 됐다. 케이 양도 자연스럽게 이 단체 탈북자들과 어울리면서 영어에 대한 이들의 어려움, 두려움을 알게 됐다고 한다.

케이 양은 여 씨와 일대일로 수업하며 알파벳 발음부터 고쳐줬다. 케이 양은 “한국인에겐 일상인 영어 표현들을 탈북자들은 외계어처럼 느끼고 있었다. 발음과 억양을 교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케이 양은 3년째 여 씨를 비롯한 탈북자들에게 ‘영어 특훈’을 하고 있다. 여 씨는 “영어 실력이 늘면서 일상생활에도 자신감이 붙었다”며 “케이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평생 영포자로 살았을 것”이라고 고마워했다.

케이 양은 탈북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이분법적이고 단편적으로만 알던 북한 실상에 좀 더 접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케이 양은 “미국에서는 ‘북한’ 하면 평양을 떠올리는데 북한 주민 대부분이 평양에 접근조차 못 한다는 사실을 듣고 놀랐다”면서 “학교 친구들도 ‘북한은 악, 남한은 선’ 정도로만 알다 보니 북한 주민이나 탈북자의 아픔과 고통은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케이 양은 3년 전 교내에 탈북자 인권을 위한 동아리를 만들었다. 자선 바자 등 각종 모금 행사를 하고, 동아리 회원들이 한국의 탈북자들과 화상통화를 하는 기회도 마련했다. 전교생 400여 명 중 50명이 가입했다.

4일 미국으로 돌아가는 케이 양은 “처음엔 학교 친구들에게 ‘북한 스파이 아니냐’는 놀림도 받았지만 탈북자 인권에 관심을 갖는 친구들이 계속 늘고 있다”며 “한국에서 탈북자들을 만날 내년 여름이 벌써 기대된다”고 말했다. 케이 양의 증조부는 1950년 군의관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팔에 총상을 입은 국가유공자였다고 한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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