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더위 타고… 벌레가 몰려온다

김윤종기자 입력 2017-07-12 03:00수정 2017-07-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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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진 한반도, 벌레들의 습격
한반도,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 2010년 이후 벌레와 곤충 급증
살인진드기 환자 3년새 4.6배로… 충남-전북 아열대 병해충 골머리
전문가 “외래종 유입 철저히 막고 피해 분석으로 예방체계 세워야”
《 SF소설의 거장 로버트 A 하인라인(1907∼1988)의 1959년 작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 ‘스타쉽트루퍼스’는 벌레와 인간 간의 처절한 전쟁을 다루고 있다. 상상 속의 영화적 설정이지만 2017년 현실 속 ‘벌레들의 습격’ 역시 만만치 않다. 이른 폭염과 한반도 온난화로 치명적인 병을 옮기는 진드기가 늘고 있다. 농촌에선 아열대 곤충이 농작물을 훼손하고 소방관들은 불끄기보다 벌집 제거에 더 바쁘다. 한반도 기온이 올라가면서 벌레, 곤충이 가져오는 재해는 더욱 급증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우리를 습격하는 벌레와 곤충, 얼마나 많을까. 》
 

#상황 1: 지난달 초 A 씨(70·경북 경주시)는 여행을 다녀온 뒤 갑자기 온몸이 쑤시고 열이 났다. 숨쉬기조차 힘들어져 찾아간 병원에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는 며칠 뒤 신부전 등 합병증으로 숨졌다.

#상황 2: 4일 B 씨(61·강원 평창군)는 산행 중 갑자기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어지럼증과 호흡 곤란을 일으켰고 동료들이 병원으로 급히 옮겨 목숨을 건졌다.

#상황 3: 전남 영광에서 농사를 짓던 50대 C 씨는 옥수수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잎사귀가 갈기갈기 찢겨 1년 농사를 망칠 정도였다.

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은 무엇일까? A 씨는 ‘작은소참진드기’에게 물렸다. B 씨는 말벌에 허벅지를 쏘였다. C 씨의 농작물을 망친 주범은 ‘멸강나방’ 애벌레다.

주요기사
○ 2010년부터 급증한 벌레와 곤충

‘벌레의 반란’이 거세다. ‘설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름철 한때 생활에 불편함을 주는 정도를 넘어 막대한 피해를 줄 수준까지 개체수가 늘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감염질환 현황을 분석해 보면 ‘살인진드기’라 불리는 ‘작은소참진드기’가 옮기는 SFTS 환자는 3년 새 4.6배로 증가했다. 올해도 벌써 48명의 환자(7월 11일 기준)가 발생했고, 이 중 13명이 사망했다. 회사원 박정수 씨(43)는 “자녀들이 ‘캠핑을 가자’고 조르지만 살인진드기가 걱정돼 도심 놀이공원에 데려간다”고 말했다.

털진드기가 옮기는 ‘쓰쓰가무시증’ 환자는 2010년 5671명에서 지난해 1만1105명으로 2배로 늘었다. 참진드기가 옮기는 라임병 환자는 첫 환자가 발생한 2011년 2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7월 현재 벌써 28명이 걸렸다. 올해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6월에 일본뇌염 경보가 발령됐다.

전문가들은 “한반도가 아열대성 기후로 변해가면서 2010년을 기점으로 벌레, 곤충이 급증한 것 같다”고 말한다. 한반도 연평균 기온은 지난해는 기상청 관측 이래 역대 최고(13.6도)를 기록했다. 국내 폭염은 주로 6∼8월에 집중됐지만 최근 3년간 폭염특보 최초 발표일은 5월 19∼25일로 당겨졌다. 기상청 김성묵 전문예보분석관은 “향후 3월 혹은 10월이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아열대기후 조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통합적 벌레·곤충 방어체계 구축해야

농림축산검역본부 식물방제과 조규황 사무관은 지난달 말 경기도 일대를 돌며 깜짝 놀랐다. 미국선녀벌레, 꽃매미 등 아열대 병해충이 평년보다 이른 시기에 많아진 것이다. 갈색날개매미충의 알 발생 면적(5037ha·2017년 상반기 기준)은 지난해보다 59.3% 증가했다.

산과 농촌에는 아열대성 벌레가 극성이다. 지난달부터 충남, 전북 등 곳곳에서 멸강나방 애벌레가 벼, 옥수수 등을 먹어치우고 있다.

조 사무관은 “전북 익산, 완주 등에서는 갈색날개매미충 등 아열대 병해충이 확산 중”이라며 “이른 폭염으로 출현이 빨라졌고 성충으로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아열대 병해충의 발생 면적은 3년 새 5배로 급증했다.

소방관들은 요즘 화재보다 ‘벌’ 때문에 바쁘다. 더워진 도심 속에서 벌들의 생육 환경이 좋아지면서 주택가에 벌집이 자주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아열대성 외래종 ‘등검은말벌’이 활개치고 있다. 국민안전처 소방119구조과 강복식 주임은 “벌집 신고가 평년보다 일찍 시작돼 출동하느라 정신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벌레, 곤충 피해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벌레는 무척추, 변온동물로 따듯하고 습할수록 번식력이 강해진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2050년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현재보다 4도 상승하고, 폭염 일수는 5.8일 더 많아진다.

국립생물자원관 김태우 연구사는 “어떤 벌레가 어떤 피해를 주는지를 분석하고, 주요 출몰 지역의 출몰 시기를 예측하는 등 벌레 방어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가 아열대 벌레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된 만큼 전염병을 옮기거나 국내 생태계를 파괴할 외래종의 국내 유입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질병관리본부 조신형 매개체분석과장은 “지자체별로 해를 주는 지역 내 벌레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 노형일 재해대응과 팀장은 “농림, 환경, 산림, 질병 등 분야별로 나눠진 벌레 대처를 통합해 대응하는 체계를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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