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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홍등 꺼진 ‘청량리 588’… 3월이면 역사속으로

입력 2017-02-16 03:00업데이트 2017-02-1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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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지정 23년만에 공사 착수
인적 끊기고 곳곳에 ‘×’자 표시… 동절기 끝나는 3월 본격 철거작업
일부 세입자 이주 거부… 충돌 우려
텅 빈 골목 15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 인근 일명 ‘청량리588’의 성매매업소 앞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이 일대는 도심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다음 달 본격적으로 철거가 시작된다. 그러나 남은 성매매업소 4곳은 이주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청소년 통행금지구역’ ‘불법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구역’….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 골목 어귀부터 각종 경고문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경고문이 낭떠러지라도 되는 듯 골목 앞까지 발길을 옮기지 않았다. 1980년대 200여 개 성매매업소가 자리 잡아 서울의 대표적 집창촌이었던 이곳은 번지수를 따 ‘청량리588’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다음 달 도심재개발사업에 따라 지도에서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청량리588을 포함한 청량리 4구역은 1994년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고수입을 보장하는 업소를 보유한 집주인들에게 재개발은 특별한 유인책이 되지 못했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고 경찰의 단속이 강화돼 수익이 줄기 시작하자 재개발 협상은 본격 재개됐고, 지난해 5월 이주가 시작됐다.

재개발사업자 측은 동절기(12∼2월) 강제철거를 금지한 서울시 조례에 따라 다음 달 본격적으로 철거 작업에 들어간다. 철거가 마무리되면 늦어도 2021년까지 청량리588 일대는 65층 주상복합건물 4개동과 호텔, 오피스텔, 백화점이 들어서는 신도심으로 바뀐다.

협상이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이날 이곳 인근에서 인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간간이 짐차들만 지나다녔다. 골목 입구 구멍가게에는 ‘철거’라는 빨간색 글자 위에 ×자 표시가 돼 있었다. 깨진 병과 쓰레기만 잔뜩 널려 있었다.

골목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자 흔적만 남은 성매매업소들이 나타났다. 깨진 유리미닫이문 너머로 업주들이 떠나면서 남긴 집기와 쓰레기더미가 보였다. 세면대와 거울도 대부분 금이 가거나 깨졌다. 해가 지기 전이었음에도 을씨년스러웠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골목 양쪽의 100여 개 ‘홍등(紅燈)’이 불을 밝혔다. 지금은 해만 지면 암흑천지가 된다.

이주를 거부하고 ‘영업’을 강행하는 업소는 8곳이다. 폐가 같은 업소와 달리 이 업소들은 해가 떠 있는 시간에도 붉은색 등이 켜져 있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몇 명이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이 가운데 4곳은 최근 이주 협상을 마무리해 조만간 떠난다. 청량리 4구역 전체 세입자의 60% 정도가 협상을 마쳤다. 노숙인 쉼터로 잘 알려진 가나안교회도 얼마 전 이주했다.

청량리588 일대는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2011년 집창촌을 철거한 용산역 일대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번듯한 복합문화콤플렉스 뒤편으로 집창촌이 남아 있는 영등포구나 성북구, 강동구 등과는 다를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여전히 이주를 반대하는 세입자도 상당수여서 충돌이 빚어질 확률도 있다. 실제 이날도 영업 중인 성매매업소 간판에는 ‘너희가 탄압이면 우리는 투쟁이다’ 같은 재개발 반대 구호가 적혀 있었다. 전국철거민연합이 참여하는 집회도 철거 현장과 동대문구청 앞에서 거의 매일 열린다. 지난해 12월 1일에는 사업자 측이 반대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무단 점유자 명도소송 강제집행을 시도하면서 육체적으로 충돌하는 일도 있었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재개발사업이 늦어지면서 건물은 더욱 낙후되고 안전문제가 심각해져 주민은 계속 불편을 겪었다”면서 “사업자와 세입자 간 원만한 이주 협상을 도와 집창촌 이미지를 벗고 사람들이 찾고 싶은 동네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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