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달러면 논문 등재” 한국 교수에 손뻗치는 온라인 학술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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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검증 저널 ‘검은 유혹’

‘친애하는 ○○○교수님, 단돈 99달러로 세계적인 권위의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 보세요. 논문을 투고하고 송금하시면 온라인 출판사 ‘글로벌 사이언티픽’에서 내는 나노과학 온라인 학술지에 15일 내로 등재됩니다.’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 A 교수는 최근 이런 내용의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매년 논문 실적에 쫓기던 A 교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정교수 신분이지만 1년에 3건 이상의 논문을 발표해야 연구실적 점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A 교수는 “내 이름과 e메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면서도 “나뿐만 아니라 교수라면 누구나 유혹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A 교수가 받은 것과 비슷한 내용의 e메일이 지난해 말부터 국내 대학교수들에게 날아들고 있다. 인도 미국 중국에 위치한 온라인 출판사들이 보낸 영문 e메일이다. 모두 ‘오픈액세스저널’에 돈을 내고 논문을 실으라는 내용이다. 하루 걸러 한 통씩 마치 스팸메일처럼 반복적으로 발송되기도 한다.

오픈액세스저널은 온라인 학술지를 말한다. 원래는 이용자가 무료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한다는 긍정적 목적을 갖고 등장했다. 세계적 과학저널인 네이처나 사이언스도 온라인에 오픈액세스저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은 물론 학계에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오픈액세스저널이 우후죽순 만들어지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오픈액세스저널은 대부분 ‘글로벌(Global)’ ‘세계적인(World)’ ‘국제적인(International)’이라는 단어로 이름을 만들고 표지를 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도의 한 오픈액세스저널 출판사인 ‘힌다위(Hindawi)’는 온라인 학술지를 무려 405개나 발간하고 있다. 학술지 종류에 따라 최소 400달러를 내면 논문을 등재할 수 있다. 중국 기반의 오픈액세스저널인 ‘OALib 저널’도 99달러에 논문을 실을 수 있다.

오픈액세스저널은 최근 한국 대학사회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는 연구의 질보다 양에만 무게를 둔 한국 대학의 교수 평가 시스템 영향이 크다. 예컨대 학술지의 수준이나 평판에 관계없이 논문을 싣기만 하면 양적 평가에서 점수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질적 평가에서도 연구실적을 인정받는다.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이나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SSCI)급 등재 때보다 낮은 점수지만 교수들은 이마저도 아쉬운 처지다.

이와 관련해 한양대 배영찬 교수 연구팀은 최근 힌다위의 오픈액세스저널에 등재된 국내 논문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논문 총 18만8221편 중 한국 논문은 4936편이었다. 대학별로는 경희대(337편) 서울대(301편) 연세대(274편) 경상대(233편) 경북대·부산대(각 216편) 등이었다.

유명 의대 소속 B 교수는 “솔직히 나도 250만 원을 지불하고 논문을 등재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은 뒤 “요즘 의학 계열 쪽은 국제적으로 경쟁이 심해 SCI급 학술지에 내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대 C 교수는 “학교에서 1년에 SCI급 논문 3편을 내라고 요구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한 편은 제대로 쓰고 나머지 두 편은 오픈액세스저널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내고 등재하는 게 관행”이라고 언급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 사립대 명예교수는 “돈을 내고 논문을 심사해 달라는 것은 연구자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면서도 “정교수까지 가기 위해 살인적인 논문 수를 채워야 하는 대학 내부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힌다위의 오픈액세스저널을 분석한 배 교수는 “해외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라면 무조건 좋다는 편견을 버리고 대학이 논문의 질적인 면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언급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논문#등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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