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우편물이 대체 몇개야”…집집마다 대문 살피며 문제있나 확인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5일 16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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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전입 미신고 등 복지 사각지대 발굴 나서…관악구, 중구 등 서울 자치구들 복지 안전망 확충 힘쓴다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노원구 당고개역 인근에서 지역 통장들이 주택가를 돌며 우편함을 살펴보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노원구 당고개역 인근에서 지역 통장들이 주택가를 돌며 우편함을 살펴보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엄청 오래된 우편물들인데. 이게 대체 몇 개야. 이름도 다 다른데? 언니, 이 집 한 번 올라가봐야겠다.”

지난달 11일 서울 노원구의 한 빌라에서 정구순 반장(64)이 우편함에 한가득 쌓인 고지서를 가리키며 옆에 있던 권귀아 통장(65)에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권 통장은 해당 호수를 찾아 문을 두드리며 주변을 살폈다. 정 반장은 “낮 시간대라 아마 집에 사람이 없는 것 같다”며 “집주인한테 연락해 여기 누가 사는지 확인해봐야겠다”고 했다. 이날 권 통장과 정 반장은 서울 노원구에서 진행하는 ‘대문살피기 사업’에 참여해 지역 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구가 있는지 점검했다.

지난달 성남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모녀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전입 미신고로 인한 복지 사각지대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서울 자치구들은 실거주 복지 대상자 발굴을 위한 대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 “대문 살피며 실거주자 확인”


노원구의 대문살피기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는 구내 통장 715명과 반장 1721명이 지역 내 가구의 대문과 우편함을 살피며 고지서와 독촉서 등을 확인하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사업이다. 위기 징후가 포착된 경우 통장이 직접 해당 가구를 방문하거나 집주인에게 연락해 실거주자를 파악한다.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복지사각 지대에 놓인 가구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날 동아일보 기자가 약 1시간 동안 권 통장 및 정 반장과 동행한 결과 1건의 위기 징후가 포착됐다. 카드 고지서 등 우편물 30여 개가 무질서하게 꽂힌 고철 우편함에서 3명 이상의 이름이 확인된 것이다.

권 통장은 “집주인과 안면이 있는 통장들이 얘기하면 현재 거주자 이름을 쉽게 알 수 있다”며 “집집마다 살피다 이렇게 문제가 있어보이는 집을 발견하면 확인 후 동주민센터에 알리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통장이 매달 2번씩 살피는 가구 수는 200~300여 가구, 한 번에 시간은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파악된 위기 가구는 동주민센터와 연계시켜, 동주민센터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주민등록을 이전하지 않은 가구의 경우 대부업체 추심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법률상담 및 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 상담도 지원한다.
● 전월세 계약단계부터 위기포착

관악구는 ‘신통방통 복지 플랫폼 사업’을 통해 전월세 계약 단계부터 위기 가구를 발굴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구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와 지난해 12월 협약을 맺었다.

이 사업은 관내 공인중개사협회 소속 공인중개사 약 1000명으로 하여금 전월세 계약 상담을 하며 ‘복지 도우미’ 역할도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관악구는 이를 위해 17일 관내 공인중개사 60여 명을 대상으로 위기 징후 포착 요령 등을 교육하기로 했다.

관악구 관계자는 “공인중개사들이 전월세 계약을 상담하거나 집을 방문하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구를 발견하게 되면 동주민센터로 연락해 필요한 복지를 제공하는 방식”이라며 “전입신고 시점이 아니라 관악구에 실거주하거나 실거주하려는 시점부터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중구는 부동산 중개업소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종과 협약을 체결하며 위기 징후를 포착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특히 부동산 중개업소와 협의해 전월세 계약 단계부터 중구의 복지 서비스 정책을 안내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 매년 1회 실시하는 주민등록 사실 조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담당 공무원 및 통장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구 관계자는 “전입 미신고 가구 등 복지 사각지대를 파악하기 위해 전월세 계약 단계부터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더 촘촘한 복지 그물망으로 위기가구를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해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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