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처럼 죽은 동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박제사 오동세·오정우 부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31일 10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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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손길을 거치면 죽은 동물이 살아났어요. 마치 아버지가 손끝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듯했죠.”

어릴 적 아버지는 꼭 ‘마법사’ 같았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 죽은 새가 다시 살아나 날개를 활짝 펼쳤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연문화재연구실에서 천연기념물의 사체를 박제하는 오정우 실무관(39)의 꿈은 아버지처럼 박제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 오동세 국립중앙과학관 자연사연구실 실무관(63)은 40년 박제 경력을 자랑할 뿐 아니라 2000년 국내 처음 도입된 ‘국가공인 문화재수리기능자 박제표본 자격증’을 1호로 취득한 전문 박제사로 손꼽힌다. 2007년 대전 서구에 문화재청 천연기념물센터가 건립될 때부터 2017년까지 문화재청에서 박제사로 근무했다. 2012년부터 그 자리를 아들이 잇고 있다.

문화재청 천연기념물센터 수장고에서 아버지 오동세 실무관(왼쪽)과 아들 오정우 실무관(오른쪽). 수장고에는 이들 부자가 제작한 박제 표본 450여 점이 보존돼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국내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물의 사체를 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국가공인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 박제사는 54명. 전문 학원이나 교육과정 없이 도제식으로 소수에게만 전해진다. 이마저도 기관에 소속돼 실제 활동하는 박제사는 10명 내외. 이들 부자야말로 천연기념물인 셈이다.

현재 문화재청 천연기념물센터 전시실과 수장고에 있는 천연기념물 표본 550여 점은 모두 이들 부자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났다.’ 이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고사하거나 자연사한 천연기념물 사체를 수거해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27일 대전 서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연문화재연구실에서 만난 이들은 “우리는 한국 자연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있다”며 웃었다.

“아이들에게 한반도에 이런 천연기념물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이잖아요. 동물의 털끝 하나까지 섬세하고 정확하게 보여줘야죠.” (아들 오 실무관)

27일 대전 서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내 박제실에서 아버지 오동세 실무관(왼쪽)과 아들 오정우 실무관(오른쪽)이 천연기념물 박제 작업을 하고 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아버지는 자신의 뒤를 이은 아들에게 늘 “겉모습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을 처리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아버지 오 실무관은 “동물의 내장과 지방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얼마 못가 표면이 변색되거나 봉제선 사이로 지방이 흘러나오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표본 하나를 만들 때마다 약 이틀 동안 사체의 속을 온전히 제거하고 동물의 깃털이나 털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데 쓴다.

“동물의 습성을 관찰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라”는 것 역시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수한 가르침이다. 이날 연구실에는 아들 오 실무관이 최근 작업하는 천연기념물 매 암수 한 쌍 표본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편 수컷이 오른발에 움켜 쥔 먹이를 바로 아래 날아오는 암컷의 왼발에 건네는 역동적인 찰나를 재현한 것이다.

“매는 수컷이 새끼에게 줄 먹이를 사냥해 암컷에게 공중에서 발 사이로 직접 전해주는 ‘공중급식’ 습성을 지녔어요. 살아 있는 동물의 습성을 보여주고 싶어서 실제 동물 사진을 붙여놓고 똑같이 만들곤 합니다.” (아들 오 실무관)

문화재청 천연기념물센터에 전시 중인 천연기념물 박제 표본.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아버지에 뒤를 이어 문화재청의 유일한 박제사가 된 오 실무관은 “문화재청에 단 1점뿐인 흑비둘기 표본을 만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2019년 6월 천연기념물 생태 환경을 둘러보기 위해 찾아간 울릉도에서 흑비둘기 사체를 발견한 것. 울릉도와 독도 일대에 서식하는 흑비둘기는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초여름 가져간 짐도 버거웠지만 그가 차마 사체를 버려두고 올 수 없었던 이유다.

“혹시라도 사체가 훼손될까 2박 3일 출장 내내 얼음 팩으로 돌돌 말아 이고 지고 연구실까지 가져왔어요. 일주일간 공들여 만든 표본의 깃털에서는 오묘한 무지갯빛이 반짝였습니다. 언젠가 멸종되더라도 아이들이 이 귀한 자연유산을 만날 수 있겠구나…. 고생한 보람이 있었죠.”

2019년 오정우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소속 실무관이 직접 제작한 흑비둘기 박제 표본. 문화재청 제공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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