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시위’ 5년 만에 최다치 전망… 애꿎은 시민만 불편 가중

  • 동아경제
  • 입력 2022년 11월 28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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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불법 시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5년 만에 최다치 경신 전망이 나온다.

특히 지난 4월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로 불법적인 집회와 시위 건수가 증가세로 전환하고 있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 1~8월 중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위반한 불법 폭력 시위 적발 건수는 251건으로, 지난 4년 평균치인 246건을 이미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297건의 집시법 위반 사건으로 549명이 검거됐던 2021년을 넘어 최근 5년내 최다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법 테두리 내에서 특정 사안의 협상 당사자가 아닌, 제 3자나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고의로 야기하는 근거 없는 이기적 시위 역시 적지 않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이다. 장애인의 권리 예산을 요구하는 전장연은 출근길 열차 운행 지연으로 인한 다수 시민들의 불편 호소에도 아랑곳 않고 시위를 재개했다.

이와 함께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일부 주민들은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GTX-C 노선의 수정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국책사업 협의 주체가 아닌 기업인의 자택 앞에서 2주 넘게 민원성 시위를 이어가며 자택 인근 다수 시민의 극심한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은 국책사업인 GTX-C 사업의 담당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와 해당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이 아닌, 일반 주택가에서 무리한 시위를 벌이고 있어 사업과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볼모로 한 무리한 시위라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이달 6월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에 입점한 식당과 병원, 약국 등의 업주들은 로비를 점거한 채 대표 면담을 요구하는 노조로 인해 매출 감소, 소음, 흡연 피해 등 3중고를 겪고 있다며 경찰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피해를 호소했다.

과격한 집회의 가장 큰 특징은 북과 꽹과리 등 시끄러운 악기를 동원하거나 대형 확성기를 통해 고성을 지르고 장송곡을 재생하는 등 악의적 소음을 동원해 일반인들에게 2차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

집시법 시행령은 집회 및 시위로 인한 소음이 주거지역 등은 주간 65데시벨(dB), 야간 60데시벨, 기타지역은 주간 75데시벨, 야간 65데시벨을 넘으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집회 소음 관련 112 민원건수는 2만2854건으로 일평균 62건을 상회, 피해 지역도 도심과 주거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인천 영종 하늘도시 내 한 아파트 신축 건설현장에서는 자신들의 인력과 장비를 사용하라는 건설노조 측이 오전 6시부터 확성기와 음향기기를 동원한 집회를 벌였고, 인근 시민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와 자녀 육아 및 교육에 대한 악영향을 호소하며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일부 시위대는 1시간에 세 번 이상 소음 기준을 초과해야 경찰 개입이 가능하다는 규정을 악용해 1시간에 두 번만 기준을 초과하는 큰 소리를 내거나, 5분간 강한 소음을 내고 후 나머지 5분간 방송을 꺼버리는 식으로 단속을 회피하는 편법도 동원하고 있다.

욕설이나 입에 담기 어려운 모욕성 발언을 반복해 사생활을 해치는 ‘헤이트 스피치’로 인한 피해도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집시법에 따르면 ‘사람에 모욕을 줄 수 있는 구호나 낙서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규제가 가능하지만 기준이 애매하고 자의적 해석 우려가 있어 실제로는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서초사옥 앞 시위대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내뱉는 욕설과 장송곡이 사옥 1층에 위치한 어린이집까지 울려 퍼지는가 하면, 2년 전에는 한 시민단체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폭식 투쟁’이라며 삼겹살을 굽고 술판을 벌이는 등 기업과 기업인을 향한 조롱을 서슴지 않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집회와 시위가 타인의 기본권이나 중대한 공익을 침해하지 않도록 공권력이 미치는 범위를 확장하는 등 집시법 개정 등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지적하고 있다.

경찰의 소음 기준 유지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지만, 최근 6년 동안 형이 확정된 건 19건에 불과하고, 이중 대부분은 벌금 20~50만 원에 그치고 있다.

또한 시위가 예정된 종료 시각을 넘기거나 신고 장소를 벗어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아예 없어 경찰의 현장 통제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집시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은 ‘기준 이하의 소음이라도 악의적 표현으로 신체∙정신 장애를 유발할 정도라면 금지’하고 있고, 같은당 박광온 의원안은 ‘소음과 모욕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해치거나, 공포심을 유발하는 음향 및 영상을 반복 재생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집회의 자유와 다른 기본권 간 균형점을 찾기 위한 20여 건의 집시법 개정안은 여야 정쟁 속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반면 해외는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집회에 대해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는 집회 소음이 주변 배경소음보다 주간 5데시벨, 야간 3데시벨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소음 유발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소음을 발생시킬 경우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집회 및 시의를 위해 공공전기를 사용하려 할 때 관할 지자체와 사전 협의토록 하는 등 집회·시위 자유와 시민의 생활권을 함께 보장하는 방안을 시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량한 시민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기본권을 침해 받지 않도록 균형을 찾기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닷컴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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