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부 ‘눈 가리고 아웅’식 인증서 발급에…기업들, 싼 값에 RE100 달성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3일 1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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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프리미엄’ 올해 540억 원 수익 내고도 용처조차 미정
기업, 적은 비용으로 신재생에너지 기업활동 인증 효과

김정일 산업통상자원부 신재생에너지정책단장이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에너지공단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RE 100 도입을 위한 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9.07.11.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김정일 산업통상자원부 신재생에너지정책단장이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에너지공단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RE 100 도입을 위한 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9.07.11.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정부가 기업에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이행 실적을 인증해주는 확인증을 발급하는 사업으로 2년간 689억 원을 벌었지만, 정작 사용처조차 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국민의힘 노용호 의원실이 산업통상자원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전력공사는 민간 기업 또는 공공기관들로부터 일정 비용을 받고 인증서를 발급해주는 ‘녹색프리미엄’을 운영해왔다. 이들이 사용한 전기료에 웃돈(프리미엄)을 지급하면 재생에너지를 사용한 것으로 간주하고 인증서를 발급해준 것. 이렇게 축적된 재원은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을 위한 재투자에 활용하게 돼 있지만 정부는 아직 용처조차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 정부의 ‘눈 가리고 아웅’ 식 인증서 장사에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싼값에 RE100 이행 실적을 달성했다는 확인증을 받았다.

● 올해만 542억 원 수익…용처는 미정
녹색프리미엄은 시행 첫해인 지난해 민간과 공공에서 각각 상반기 35개, 하반기 25개 기업이 참여해 약 147억 원의 수익을 냈다. 올해 상ㆍ하반기에는 각각 75개와 26개 기업이 참여해 542억 원을 벌었다. 2년간 689억 원이 마련된 것. 하지만 지난해 조성된 재원 중 직접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에 사용된 금액은 태양광 설치 지원사업에 사용된 32억 원에 불과했다. 나머지 금액은 금융지원ㆍ기반 구축ㆍ운영비 등 재생에너지 확대와는 다소 거리가 먼 곳에 사용되거나 이월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조성한 542억 원의 용처 역시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지난 2년간 재원 조성 현황을 살펴보면 △100억 원 이상 구매 2곳 △10억 원 이상~100억 원 미만 9곳 △1억 원 이상~10억 원 미만 17곳 △1000만원 이상~1억 원 미만 29곳 △1000만원 미만 34곳 등인데, 이 중 공공기관이 총 5억 520만 원, 민간기업은 684억 원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 목적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수익금을 집행하는 한국에너지 공단이 기업과 공공기관들로부터 거둬들인 돈을 쌓아 놓고만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 기업들도 ‘싼값’에 RE100 달성
결과적으로 기업 입장에선 실제 재생에너지 사용이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설비투자와 무관하게 적은 비용으로 RE100 이행 실적을 인정받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형 RE100 참여 이행 수단은 녹색프리미엄을 비롯해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가 생산한 전력을 전기 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전력거래계약(PPA)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지분투자 △신재생에너지설비로 직접 전력생산 등 5가지다.

이중 녹색프리미엄은 올해 상반기 평균 10.9원/kWh에 낙찰가가 형성됐다. 반면 REC 현물가격은 지난달 29일 기준 kWh당 64원으로, 녹색프리미엄보다 6배 가까이 비싸다. 올해 8월 기준 신재생에너지 판매업자가 한전에 전기를 판 가격은 kWh당 221원으로 기업으로서는 kWh당 110원대인 산업용전기요금에 웃돈을 얹는 것이 재생에너지 생산자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에서는 2023년까지 녹색프리미엄 만으로 RE100을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세웠고, 한국가스공사도 2025년까지 본사 전력 사용량의 92.5%를 녹색프리미엄으로 충당해 RE100을 이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노 의원은 “결국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사용한다고 불가능한 것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국민 혈세와 기업의 돈을 모아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입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실체 없는 녹색프리미엄 제도를 폐기 또는 전면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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