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4월 9일 18시 3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존 웨인이 출연했던 ‘역마차’같은 초기 서부영화들에는 인디언이 도끼를 휘두르며 백인을 괴롭히는 존재로 흔히 묘사됐다. 비교적 최근작인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춤을’에서는 인디언을 백인들로부터 핍박받는 선량한 족속으로 그렸다.
어느 쪽이 인디언의 본래 모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잔인한 구석이 있었던건 분명한 것 같다. 적의 머리가죽을 벗겨 승리를 자축하는 관습이 있었을 정도니까. 백인들은 인디언의 이같은 행위를 ‘스캘프(scalp)’라고 지칭했고 그런 인디언들을 ‘스캘퍼(scalper)’라고 불렀다.
스캘퍼라는 단어는 그 뒤 여러 가지 의미로 확장되면서 오늘날에는 데이트레이더를 뜻하는 용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머리가죽을 벗기는 인디언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증권가에는 스캘퍼의 세력이 점점 불어나는 추세다.
주식시장의 스캘퍼는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씩 주식을 사고 판다. ‘몰빵’이나 미수거래를 밥먹듯이 할 정도로 대단히 공격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매일 평균 100번 이상 주식을 사고 판다는 한 스캘퍼는 “주식을 사는 즉시 팔 시점을 정한다”고 털어놨다.
요즘같은 증시 침체기에도 스캘퍼들의 활동은 줄어들지 않아 기관투자가들은 울상이다. 기관들은 올들어 정부의 증시 안정 대책에 부응해 주식 편입 비중을 높여 놓은 상태.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 단기매매 말고는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지만 기관의 특성상 그럴 수는 없다. 결국 스캘퍼들의 초단타 매매로 편입 주식들의 주가가 크게 출렁여도 하릴없이 바라만볼 뿐이다.
상황이 이렇자 증권사를 비롯한 일부 기관들이 전문 데이트레이더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정식 직원으로 채용을 하지 않더라도 이들을 끌어들이면 약정을 높이고 수수료 수입을 불릴 수 있다는 속셈이다. 한 증권사 직원은 “시장에서 이름난 데이트레이더를 데려오면 손님들이 함께 따라오니까 증권사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털어놨다. 또 이들의 초단타매매에 따른 수수료 수입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최근에는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데이트레이딩 기법 강의도 크게 늘었다. 일부 인터넷 증권정보 사이트들은 데이트레이딩용 종목을 별도로 추천해주고 있다. 증권사들도 데이트레이더용 사이버트레이딩 시스템(HTS)을 개발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정부는 주가의 변동성을 높혀 시장을 교란한다는 이유로 데이트레이딩을 규제하겠다는 방침을 지난해 밝힌바 있다. 이에 대해 시장의 활기를 유지하기 위해선 스캘퍼같은 존재가 있어야한다는 반박이 제기됐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정부는 데이트레이딩을 규제하는 구체적 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요즘같은 침체장에서도 그나마 일정한 거래량이 유지되는건 데이트레이더 덕택이라는 말도 나온다.
데이트레이딩이 시장에 악영향만을 끼치는지, 순기능도 하는지는 쉽게 결론이 나기 어려운 사안이다. 어쨌든 데이트레이딩은 이제 대중적인 투자기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여의도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지금 이 순간도 스캘퍼들은 ‘다른 사람의 머리가죽을 벗겨가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과거 인디언과 다르다면 도끼를 휘두르는 대신 마우스를 클릭한다는 것 정도랄까.
<금동근기자>gold@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