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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는 게리 쿠퍼를 닮지 않았다

Posted May. 01, 2015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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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 여류 작가는 보지도 못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드는 대목이 있다. 그런 그가 현대의 남성 중에서 으뜸으로 꼽는 이는 미국 영화배우 게리 쿠퍼다. 잘 생기고 교양 있는 데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서부의 사나이 역할을 누구보다 멋지게 소화한 배우다. 미국이 세계의 선망을 받던 시절, 미국이 원하는 남성의 이미지 그 자체라고나 할까.

시오노 나나미는 아베의 꽤 열렬한 지지자다. 모든 것을 로마에 빗대기 좋아하는 그의 상상력은 간혹 황당해서 카이사르에서 아우구스투스로의 승계가 팍스 로마나의 시대를 열었듯이 고이즈미 준이치로에서 아베로의 승계가 일본을 구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했다. 그도 다만 아베가 직구만 던질 줄 알았지 변화구는 던질 줄 모른다는 데는 다소 불만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상하원 연설에서 에이브러햄 링컨과 게리 쿠퍼를 언급했다.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을 언급해 환심을 사려는 것이지만 두 사람 다 아베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아베는 시오노 나나미와는 달리 게리 쿠퍼와 동시대를 산 사람은 아니다. 게리 쿠퍼가 죽었을 때 아베는 고작 일곱 살이었다. 그는 미국 유학시절 하숙집 여주인이 사별한 남편에 대해 게리 쿠퍼보다 잘 생겼다고 자랑한 사실을 인용했을 뿐이다. 게리 쿠퍼를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이 눈은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게리 쿠퍼의 영화다. 하이 눈을 보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아베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나의 의문이다. 영국 리즈대 암피아 퀘쿠 교수는 반둥회의 60주년 모임에 참석한 아베를 쥐들의 회의에 간 고양이로 묘사했다. 한때의 제국()이 그의 침략과 식민지배로 고통 받은 국가들의 모임에 초청돼 와서는 한마디 사죄도 하지 않고 돌아간 고약한 고양이다. 그런 고양이가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게리 쿠퍼를 언급하니 진정성에 의심이 가는 것이다.

송 평 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