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부패 없는 유능한 정부 이끈 리콴유와 함께 한 시대가 가다

부패 없는 유능한 정부 이끈 리콴유와 함께 한 시대가 가다

Posted March. 24, 2015 07:14,   

日本語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한 1965년 8월, 리콴유() 총리는 TV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자서전에 싱가포르가 정당한 이유도 없이 저항도 못하고 탈퇴를 강요당했다고 썼다. 말레이시아와의 민족적 정치적 갈등 끝에 형식은 분리 독립이지만 사실상 추방당한 것이었다. 당시 싱가포르는 부존자원은커녕 물도 부족해 말레이시아에서 갖다 먹어야 하는 가난한 어항()이었다.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 511달러에 불과했던 싱가포르가 지난해 5만6000달러가 넘는 아시아 1위, 세계 8위의 부국()이 됐다.

동남아의 작은 섬나라 싱가포르를 제3세계 속의 일류국가로 만든 리 전 총리가 어제 향년 91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31년간 세계 최장수 총리로 재임하며 싱가포르를 글로벌 금융과 물류의 중심지로 탈바꿈시켜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안정을 이끌었다. 그의 싱가포르 모델은 박정희 모델과 함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대표한다. 그가 자서전에서 한국인은 강인하고 험난한 역경을 이겨내는 데 탁월한 힘을 지녔다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강성 노동조합과 고위층의 부패 척결문제를 언급한 것을 보면 오늘의 한국이 겪는 상황까지 예견했던 거인()의 혜안이 놀랍다.

효율적인 정부를 통해 고속성장과 깨끗한 사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그의 리더십은 집권 3년차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 정부에도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총리 직속의 부패행위조사국을 만들어 부패를 끝까지 추적했고, 측근 비리를 용납하지 않는 솔선수범을 했으며 공직자들에게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충분한 대우를 해준 것이 성공 비결이다.

1990년대 싱가포르와 한국은 홍콩, 대만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주목받았으나 2000년 일본을 추월한 싱가포르와 딴판으로 한국은 아직도 국민소득 2만 달러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94년만 해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까진 카지노 안 된다던 리 전 총리가 2004년 세계적 카지노 개발에 나설 만큼 그는 글로벌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실용주의로 일생을 살았다.

아시아적 가치를 내세워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한 것이나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통제 등은 그가 남긴 그늘이다. 리 전 총리의 장남 리셴룽() 총리가 이끄는 인민행동당(PAP)의 부자 장기 집권에 염증을 느끼고 언론자유 확대와 정치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올해 독립 50주년을 맞는 싱가포르 안팎에서 그의 타계는 한 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상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조국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은 걸출한 지도자의 타계는 새로운 시대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