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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밥에 혹한 건달, 진짜불교를 찾다

Posted May. 03, 2014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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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아문()이란 말이 있다. 고타마 붓다의 말씀을 기록한 불교 경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말이다. 초기 불교경전을 기록한 산스크리트어로는 에밤 마야 슈르탐.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란 뜻이다. 유교경전의 공자님 가라사대인 자왈()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왜 이런 말로 경전을 시작했을까. 초기 불교에서 붓다의 설법은 암송으로만 전승됐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지난 뒤 각자 암송한 내용이 맞는지 서로 맞춰볼 필요가 있었다. 붓다가 숨진 뒤 200여 년간 4차례의 결집이 이뤄졌다. 이때 암송에 나선 고승들이 전 이렇게 들었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던 것이다.

다른 모든 종교와 마찬가지로 불교도 창시자의 말씀을 가장 중하게 여겼다. 문제는 33세에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50년 가까이 펼친 설법을 몽땅 암송해 기록하다 보니 방대해진 데다 들은 사람에 따라 종류도 여럿이 됐다. 기독교 신약성경에서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가 네다섯 종에 불과하지만 한문으로 번역된 불교 경전은 전체 10부 중에서 1부에 해당하는 아함부(붓다의 직접 설법을 담은 초기 경전)만 2000종에 이른다. 10부의 불교 경전은 다시 붓다의 설법을 담은 경장, 붓다가 정한 계율을 담은 율장, 붓다의 말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생긴 여러 분파의 이론을 정리한 논장으로 분류된다.

서유기의 삼장법사를 기억하는가. 그는 대당서역기를 쓴 당나라 고승 현장이 모델이다. 하지만 삼장법사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경칭이다. 경, 율, 논 세 종류 경전에 두루 통달한 고승이란 소리다. 백제 때 유교의 다섯 경전에 정통한 유학자를 오경박사라 칭한 것과 같다.

원래 불교에선 부처님의 말씀과 그를 둘러싼 해석을 중시했다. 한국에선 조선시대 들면서 사라진 교종()의 전통이다. 즉 경전공부와 치열한 논리싸움을 중시하는 주지적 요소가 강했다. 그런데 직관적 깨달음을 강조하는 선불교 위주의 한국불교에서 이런 이론적 전통이 탈각됐다.

불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처님 가르침은 동네 막걸리집 욕쟁이 할머니 수준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저자(40)는 서른한 살의 나이에 불교를 배우러 대학에 재입학한다. 해외 유학을 보내준다는 말에 혹해 국내에 딱 네 개밖에 없는 불교학과에 들어간 것. 하지만 거기서 통념과 다른 불교를 만나면서 충격과 경악을 거듭하다가 급기야 일본 도쿄대 인도철학-불교학과 대학원에서 7년째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를 배우며 불교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저자가 굉장한 선지식 같지만 그렇지 않다. 경상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구사하는 그는 불교를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능청맞은 구라를 풀어낸다. 이를 위해 백수건달로 편하게 살겠단 속셈으로 불교학에 뛰어들었다가 한문은 물론 산스크리트어, 팔라어, 티베트어, 일본어까지 공부하며 곡소리 내기 바쁜 자신을 희화화한다. 불교 하면 떠오르는 인도나 중국과 한국의 학자가 아니라, 유럽과 일본 학자들이 주름잡는 불교 연구의 현실도 꼬집는다.

소승과 대승, 유식불교와 중관불교, 교종과 선종, 다양한 불교용어와 개념의 기원과 변천 과정도 풀어준다. 사고뭉치 문제아였다가 성철 스님을 만나기 위해 일주일간 매일 3000배를 하고 나서 공부벌레가 돼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뒤 화려한 여성 편력을 접고 승려가 된 사촌형의 흥미로운 실화도 곁들여 책을 잡으면 쉬이 놓기 어렵다.

입신출세를 비는 가짜 불교가 아닌, 치밀한 논리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비의 윤리를 구현한 진짜 불교를 맛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