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에게 학교는 친구라는 이름의 적이 득실대는 곳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지원군을 보내 준다고 약속한 지 열 달이 돼 가지만 이들의 하루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더 기다릴 수도, 버틸 수도 없다. 이들은 힘을 합쳐 일진들에게 맞서기로 했다. 왕따 저항군 리더 이윤석 군(17) 정소연(16) 조성미 양(가명17) 김성준 군(18)의 이야기다.
이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왕따들의 모임(왕모) 카페는 저항군의 전진 기지다. 2006년 처음 생겨난 이 기지에서 윤석이와 친구들은 전국에서 모인 이름 없는 왕따들과 함께 탈출 전략을 짠다. 하지만 하루 이기면 다음 날은 지기도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승리로 점철돼 있지 않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기 위해 발버둥치는 분투로 가득할 뿐이다.
왕따 저항군 리더의 바쁜 하루
리더 윤석이의 하루는 오전 6시 반 요란한 스마트폰 벨소리로 시작한다. 요즘엔 연일 A의 전화다.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다는 친구다. 어제도 학교에서 어떤 일진의 주먹이 더 강한지 직접 맞아 보고 점수를 불러야 했다. 일진들은 오늘 빨리 와라, 펀치머신이라고 A 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윤석이는 A에게 일진이 보낸 메시지를 저장해 두고 쉬는 시간마다 상담실에 가 있으라고 일렀다. 저장한 메시지는 피해 사실을 신고할 때 증거로 낼 수 있고, 일진들도 상담실까지 따라오진 않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을 때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왕모 카페에 들어가 회원 수를 확인한다. 매일 조금씩 늘어 이제 1282명이다. 힘을 합쳐 왕따에서 탈출하고 싶어요라는 신입의 글에 환영한다고 댓글을 남겼다. 카페 아이들은 영화 터미네이터의 로봇 군단에 맞서는 인간저항군과 닮았다.
윤석이는 자신이 다니는 경기 구리시 S고등학교에서 상담실 조수로 임명됐다. 선생님이 상담실을 비우면 윤석이가 친구들을 맞이한다. 친구들은 윤석이가 중학교 때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왕따인 친구들은 윤석이를 더 믿는다.
집으로 돌아가 스마트폰을 열면 하루 동안 카페 친구들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쏟아진다.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을 걸어 달라며 카페에 연락처를 남긴 뒤부턴 매일 2, 3명이 윤석이를 찾는다. 와이파이 셔틀(스마트폰의 핫스폿 기능을 항상 켜 놓아 일진이 와이파이를 쓸 수 있게 하는 것)로 찍혔다고 하소연하는 친구에게 요금 명세를 저장해 신고하라고 조언하고, 예전에 왕따였던 사실을 새로운 반 아이들이 알게 될 것 같다고 두려워하는 친구와 상담하다 보면 날이 어두워진다.
밤이 깊어지면 카페의 죽음 or 생명 게시판을 꼼꼼히 본다. 괴롭힌 아이들을 차례차례 찌르고 뛰어내리고 싶다는 거친 글들이 올라온다. 윤석이는 하나하나 댓글을 남긴다. 기껏해야 힘내라, 나도 똑같았다는 댓글이다.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윤석이는 힘없는 왕따들이 일진 터미네이터에게 반란을 일으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슈퍼 왕따에서 상담가로
조별 수업할 거니까 5명씩 모여라.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열여섯 살 소연이는 가슴이 서늘해진다. 중학교 1학년 때가 떠올라서다. 조를 짜고 나면 항상 혼자 남겨졌다. 지금은 따돌리는 친구들이 없지만 소연이는 그때를 자주 떠올린다.
처음엔 말 붙이는 친구가 없어서 심심한 게 다였다. 그런데 친구 없는 아이로 찍히자 소연이는 노는 아이들의 표적이 됐다.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있으면 아이들은 가위로 소연이 머리카락을 잘랐다. 소연이는 가위 소리를 듣고도 자는 척했다. 맞는 것보단 나았다. 괴롭히던 아이 한 명은 집을 구경하고 싶다며 집으로 쫓아와 소연이가 기르던 토끼를 집어던져 죽였다. 부모에겐 말하지 못했다. 일이 커지면 아이들이 복수할 것 같았다.
사람을 피했고 혼자 있는 시간엔 인터넷만 했다. 그러다 찾은 곳이 왕모 카페였다. 그곳엔 또 다른 나가 가득했다. 하소연할 곳 없는 왕따끼리 의지하며 괴롭힘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열네 살이던 2010년, 소연이는 반란에 나서 봤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저항하기로 결심한 것. 카페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친구들은 소연이에게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 요령을 알려줬다. 보복을 걱정하는 소연이를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나 신고하지 않으면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설득했다. 소연이는 맞아서 생긴 상처의 사진과 아이들이 보낸 욕설 문자를 모아 학교에 알렸다. 카페 친구들이 조언한 대로였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렸고 그때 처음 딸의 상처를 안 엄마는 학교에서 울었다. 아이들은 소연이에게 사과하고 반을 옮겨야 했다. 아이들은 눈에서 멀어진 소연이를 더는 괴롭히지 않았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소연이는 지금은 왕모 카페에서 왕따 친구들의 문제를 상담해 준다. 주로 보복이 무서워 참고 사는 아이들이다. 학교에도 친구가 생겼다. 미장원에서 머리카락을 자를 때마다, 토끼를 기르던 방 한구석을 가만히 바라볼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중학교 때의 아픈 기억은 조금씩 뜸해진다.
때론 쉬운 듯, 하지만 어려운 왕따 극복
열일곱 상미(가명)는 올해 7월 친구 앞에서 문구용 칼로 손목을 그었다. 사소한 오해였다. 친구가 왜 험담했느냐, 절교하자는 말을 꺼냈고, 그때 상미의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왼손목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 반 아이들은 상미를 친구로 대하지 않았다. 어깨를 부딪치면 어깨가 썩는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우연히 상미와 같은 옷을 입고 온 친구는 내가 거지와 똑같은 옷을 입고 왔다고 화내며 옷을 집어던졌다.
처음 손목을 그을 생각을 떠올렸던 건 2009년 3월이다.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 바뀐 반에선 새 친구들과 잘 지내 보려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미 왕따라고 소문이 퍼진 상미를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았다. 상미는 이때 처음 견디며 살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두 번째는 1년이 지나 다시 반이 바뀌었을 때였다. 한 친구에게 용기 내 다가갔지만 매몰차게 밀려났다. 희망을 가지려 했던 횟수만큼 상미의 마음엔 긁힌 자국이 깊게 패었다. 올 7월 상미가 자해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상미가 왕따였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고등학교로 진학해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떠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상미와 친구는 최근 화해했고 다행히 손목의 상처는 깊지 않았다. 상미는 다른 친구들이 보지 못하도록 손목을 가리고 다녔다. 손목 붕대를 풀 때쯤 담임선생님이 상미를 불렀다. 상미가 자살 시도 경험이 있다는 설문 항목에 체크해서였다.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상미를 돌려보냈다. 다음 날 반 아이들이 상미에게 몰려왔다.
너 손목 그었다면서? 한번 보여줘 봐.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비밀을 말할 줄 몰랐던 상미는 다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상미는 요즈음도 가끔 왕모 카페에 죽고 싶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학교폭력과의 전쟁은 학생만 치르죠.
열여덟 살 성준이는 왕모 카페 친구들과 활발히 어울리지만 학교에선 왕따다. 학교 아이들은 2월에도 성준이의 뒤통수를 때리고 욕을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속으로만 앓았지만 이번엔 학교에 알렸다.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언한 학교에 기대를 걸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선생님은 조용히 성준이를 불렀다. 학교폭력을 공연히 문제 삼으면 반 전체에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게 요지였다. 성준이는 수긍하면서도 선생님들은 인사고과에 좋지 않을까 봐 폭력 신고를 받아도 쉬쉬한다는 카페 친구들의 말을 떠올렸다.
반 아이들의 괴롭힘이 이어졌다. 성준이는 지난달 다시 용기를 내 학교에 알렸다. 성준이를 괴롭힌 아이들은 폭력이 아니라 장난친 것뿐이라며 빠져나갔다. 학교는 폭력 증거가 없다며 구두 경고 조치만 내렸다.
올해는 유난히 설문조사가 많은 해였다.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 특별 설문조사, 2차 전수조사. 첫 설문이 끝났을 때 선생님은 설문지를 뒤에서부터 걷어 오라고 했다. 피해 사실을 적은 성준이는 숨이 멎을 뻔했다. 설문지를 걷는 아이들은 성준이를 괴롭히는 패거리의 일원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성준이처럼 일진으로부터 맞았다고 적은 아이들은 몇 번이고 상담실에 불려갔다. 모든 학생은 누가 밀고자인지 알았고, 일진의 눈과 주먹은 다시 피해 신고 학생에게 집중됐다. 성준이와 왕따 친구들은 두 번째 설문부턴 아무도 똑바로 답하지 않았다.
올해 38월 학교폭력 가해 학생 1만7970명 중 3752명은 피해 학생에게 서면으로 사과했다. 사회봉사를 한 아이는 3076명, 특별교육은 2615명이다. 성준이는 성의 없이 갈겨쓴 사과문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일진들에게 봉사활동을 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을 뿐이다. 피해 학생 1만2017명 중 일시보호 조치를 받은 아이는 1030명뿐이다.
성준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상 편집 일로 돈을 벌어 왕따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고 싶다. 왕모 카페처럼 누구나 편하게 와서 쉬었다 가는 공간이다. 성준이는 손바닥 뒤집듯 단번에 왕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 편이 있다는 믿음이 확신으로 변할 때까지 상처와 싸우는 아이가 있을 뿐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