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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기둥 가야금이 팝송을 만났을 때

Posted November. 30, 2005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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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국악계의 화두는 퓨전 실내악이다. 타악그룹 푸리, 공명, 뉴에이지 그룹 그림(The), 월드뮤직 그룹 바이날로그, 가야금 앙상블로는 사계, 여울, 아우라. 이들은 국악을 세계 음악으로 키워나가는 새로운 실험과 창조의 주도세력이 되고 있다.

다음달 13일 오후 8시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공연하는 가야금 4중주단 여울은 국악기로서는 보기 드물게 전자악기를 선보인다. 일렉트릭 바이올린, 일렉트릭 피아노 등 현대화한 서양 클래식악기처럼 이들이 선보이는 것은 일렉트릭 가야금. 특히 18현 가야금을 개조해 만든 여울금은 클럽밴드 악기처럼 연주될 수 있어 가야금의 파격적 변신을 예고하고 있다.

비장의 무기 일렉트릭 가야금 전자 기타처럼 신나게

2003년 결성된 여울의 멤버 기숙희(27), 이수은(26), 안나래(25), 박민정(25)씨는 국악중고등학교와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선후배 사이로 맺어진 실력파 연주자.

28일 여울을 만난 곳은 경기 하남시의 국악기 연구소 연습실이었다. 이들은 한 달 째 합숙하며 연습 중이다. 이번 공연에서 이들이 선보이는 일렉트릭 가야금은 지난 1년 동안 준비해온 비장의 무기.

리더 기숙희 씨는 원래 가야금은 소수의 관객만을 위한 사랑방 악기였다며 대중 앞에서 연주하거나 크로스오버를 하기엔 음량이 너무 적어 마이크를 사용해야 하는 게 늘 불만이었다며 일렉트릭 가야금 개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어깨에 멜 수 있는 18현(여울금)과 받침대 위에 놓고 연주하는 25현 두 가지다.

수 십 대의 가야금을 부숴가면서 자체 개발한 이 악기는 이펙터의 조절에 따라 콘트라베이스처럼 한 옥타브 낮은 소리를 내기도 하고, 전자 기타처럼 여음()이 길게 유지되는 등 음역과 음색이 다양해졌다. 그러나 손으로 뜯는 수법은 그대로여서 가야금만의 청정한 음향은 여전히 살아 있다.

바이올린이나 기타는 비브라토를 해도 같은 음에서 떨리지만, 가야금의 농현은 위아래 움직이는 폭이 커 음이 달라질 정도입니다. 이 때문에 아무리 클래식이나 팝송이라도 가야금으로 연주하면 우리의 정서를 느낄 수 있죠.(안나래)

필 받으면 록 음악처럼 가야금 줄을 이빨로 뜯을 수도 있겠죠

이번 콘서트의 컨셉트는 밴드음악이에요. 이제 국악도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클럽 같은 곳을 찾아갈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박민정)

이번 공연에서 여울은 명상곡 한곡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든 곡을 일렉트릭 가야금으로 연주할 예정이다.

신() 영산회상(작곡 김대성)을 비롯해 레드 제플린의 록음악 스테어웨이 투 헤븐, 블루스 풍의 들고양이(Stray Cat), 삼바 리듬의 재즈곡 퍼피 러브, 크리스마스 캐롤(편곡 황병기) 등 동서양의 고전 현대곡을 총망라한 곡을 가야금으로 연주한다.

여울이란 이름은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이 국악계의 변화의 물살을 일으키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것. 이미 1970년대에 가야금을 활로 연주하며 미궁이란 파격적인 음반을 내놓았던 황 교수는 여울의 새로운 시도에 든든한 후원자가 돼 주었다. 그는 이번 공연을 위해 크리스마스 캐롤 모음곡도 편곡해주었다.

여울은 언제나 가야금을 받침대에 놓고 서서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서 연주하면 손도 자유로울 뿐 아니라 훨씬 동적인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혹시 록 음악을 연주하다가 흥이 나면 어깨에 멘 18현 가야금의 줄을 이빨로 물어뜯는 건 아닐까? 이수은 씨는 필(feel) 받으면 그럴 수도 있다. 그날 관객들 분위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1만5만 원. 02-543-1601



전승훈 raphy@donga.com